개개인에 맞춘 '1人 임상시험' 시대

조선일보
  • 박건형 기자
    입력 2015.05.22 03:04

    현재 임상시험, 부작용 없다는 점에 초점 맞춰 효과 적어

    '스타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약물이다. 고지혈증 치료제 90%가 스타틴 계열이다.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스타틴 계열의 약물을 복용한 사람 중 뚜렷한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 효과가 나타난 경우는 5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치료 효과를 보는 사람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과학계가 제약산업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나섰다.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달 말 '1인(人) 임상시험 시대'라는 특집기사에서 "수천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쳐 등장한 약물들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임상시험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이미지
    Getty Images / 멀티비츠
    네이처는 약물 효과의 문제가 스타틴 계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흔히 의약품의 치료 및 예방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NNT(Number Needed to Treat·필요 치료 환자 수)라는 수치가 사용된다. NNT는 1명이 치료 효과를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약물을 복용했는지 보여주는 숫자다. 어떤 약물의 NNT가 10이라면 10명에게 약물을 투여해야 효과를 보는 사람이 1명 나타난다는 의미다. 즉 NNT 숫자가 클수록 거품이 많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인 조현병(정신분열병) 치료제 '아빌리파이'의 NNT는 5다. 아빌리파이는 2013년 한 해 동안만 65억6000만달러(약 7조1800억원)어치가 팔렸다.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속쓰림 치료제 '넥시움'은 NNT가 무려 25다.

    과학계에서는 일부에게만 효과가 있는 약물이 판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임상시험 방식에서 찾고 있다. 현재의 임상시험은 누구나 부작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필수이지, 누구에게나 치료 효과가 있음을 알아내는 것은 아니다. 이전보다 효과를 보는 사람이 많으면 된다. 대부분의 약물은 투여받는 사람에 따라 효과의 차이가 있고, 부작용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현재의 임상시험은 이런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는다. 미국 크레이그벤터 연구소의 니컬러스 쇼크 박사는 "하나의 약물이 집단 전체에 같은 효과를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필라델피아 전좌'라는 염색체 이상을 보유한 환자들에게 투여하면 다른 집단보다 생존율이 두 배 이상 높아지지만 어떤 집단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다.

    1인 임상시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되는 방법이다. 미국 보건당국은 올해 초 "의사들이 개별 환자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밀(精密) 의학' 연구에 2억1500만달러(약 2356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밀 의학의 핵심이 바로 1인 임상시험이다. 네이처지는 "사실 이미 수많은 의사들이 1인 임상시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에게 처음 혈압약을 처방하는 경우, 한 가지 약물을 처방하고 일정 기간 모니터링한 뒤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약으로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1인 임상시험은 환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충분한 기간에 걸쳐 충분한 치료 효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최종적으로는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1인 임상시험을 위해서는 특정 환자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야 한다. 호주의 한 연구팀은 골관절염 환자 132명에게 3년간 여러 가지 약물을 투여하면서 관찰했다. 12주 동안 한 가지 약물을 복용하거나 중단하게 한 뒤, 2주마다 한 번씩 증상을 측정해 약물 투여 전후의 데이터를 비교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초기 비용은 기존 치료법에 비해 많이 들었지만, 환자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약물을 찾을 수 있었다.

    수많은 1인 임상시험의 결과들을 모으면 결국 대규모 임상시험의 결과로 쓸 수 있다.
    그래픽 미국 내 10대 판매 약품 실제 효과
    쇼크 박사는 “1인 임상은 기존에 있던 약물을 다른 증상에 시험하는 ‘약물재활용’이나 신약 개발은 물론,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용량을 찾아내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면서 “어떤 환자가 질병이 발병할 위험을 미리 알아채는 데도 개인의 의료기록을 기반으로 한 개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현재 진행되거나 준비 단계인 다양한 1인 임상들을 소개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다양한 말기암 환자 1000명을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치료법을 시도할 계획이다. 그룹은 증상이나 암 종류가 아니라, 환자의 유전자 변이를 기반으로 나뉜다. 연구소 측은 25개 약물을 각기 다른 그룹에 투여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유전자 변이가 약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밝혀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1인 임상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벽이 많다. 제약사들은 수백만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번에 돈을 벌 수 있는 약물에만 집중한다. 또 1인 임상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 약물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미국의 암치료 전문업체인 ‘파운데이션 메디슨’은 환자의 암세포 유전체를 분석, 적절한 치료방법을 조언하면서 개인당 5000~7500달러를 받는다. 쇼크 박사는 “1인 임상은 재발성 질환의 관리, 만성 질환 치료, 부적절한 약물 남용 예방 등을 막으면서 궁극적으로 보건의료비를 대폭 절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제약사들 역시 신약개발 투자에 대한 수익률이 형편없기 때문에 1인 임상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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