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미래] "사피엔스는 이제 神이 되려 한다"

조선비즈
  • 전병근 기자
    입력 2015.05.06 08:00 | 수정 2015.05.06 15:55

    유발 하라리 교수 /Rami Zarneger
    “나는 우리가 직면한 주요 쟁점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인간이 자신을 어떤 우월한 종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려 들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처럼 바꾸려고 할 것이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다.

    인간은 그전까지 전통적으로 ‘신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돼온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조만간 생명체를 자의에 따라 설계하고 만드는가 하면, 자기 마음 속에서 직접 가상의 현실을 옮겨다니고, 수명을 극적으로 늘리며,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몸과 정신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성(humanity)만큼은 불변이었다. 하지만 수십년 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 자체가 급격한 혁명(radical revolution)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와 정신도 유전 공학과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기회와 더불어 경악할 만한 새로운 위험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현실주의자(realist)가 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상과학소설(SF)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지금 정부나 시민 개개인이 걱정하는 다른 대부분의 문제들은 하찮게 보일 정도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두고 세계 지성계를 강타한 책이 있다. 지난 2월 영미권에 출간된 ‘사피엔스(Sapiens)’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대서사를 지식융합적으로 종횡무진 써내려간 책이다. 단번에 26개국어로 번역되면서 국제적인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국내에는 김영사가 올 하반기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히브루대 역사학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원래 중세사를 전공했다. 어쩌다 이런 인류 역사를 포괄하는 책을 쓰게 됐나?

    10대 시절 나는 세상 일이 이해가 안 돼서 고민이 많았다. 왜 세상 일들이 지금 같은 건지, 인생의 목표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부모님과 선생님, 다른 어른들한테 물어봤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 역시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의아했던 것은 그들이 그런 걸 몰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돈과 경력, 주택대출금,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인생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완전히 태평이었다. 나는 혼자 다짐했다. 내가 크면 일상적인 세상사에 함몰되지 않고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이 책은 어떤 면에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책을 쓰면서 내가 세운 목표는 역사적 사실이나 명칭, 날짜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심층적인 메커니즘을 풀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 현실이 어떻게 지금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숱한 신들(gods)과, 개인주의, 인권 같은 것들을 믿게 됐을까? 어쩌다 지금 같은 민족국가에 살게 됐을까? 어쩌다 자본주의가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 체제가 됐을까?

    -당신은 책에서 생물학과 역사학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했다. 이런 접근법을 취한 이유는?

    역사의 큰 질문에 답하려면 생물학도 감안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도 결국 하나의 동물이기 때문에 생물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세계 대전이나 세계 경제 위기를 생물학의 용어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물학은 역사의 기초에 해당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먼저 요약한다면?

    인간은 힘을 얻는 데는 극도로 우수하다. 하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능력은 힘을 얻는 능력보다 훨씬 못하다. 오늘날 우리는 선조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다지 더 행복하지는 않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었나?

    호모 사피엔스 한 명을 침팬지 한 마리와 맞붙이면 침팬지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10대 10으로 대결시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000대 1000으로 맞붙으면 사피엔스가 쉽게 이길 것이다. 인간이 가진 진정한 이점은 대규모 집단을 이뤄서도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미나 꿀벌도 대규모로 협력하지만 이들은 아주 경직돼 있다. 침팬지와 늑대는 개미보다는 훨씬 탄력적으로 협력하지만 서로 친밀한 소규모 그룹 내에서만 그럴 수 있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혈족 아닌) 이방인들이 무리를 이뤄서도, 극도로 탄력적인 방법으로 협력을 할 수 있다. 월가나 톈안먼 광장에 침팬지 10만 마리가 있으면 난장판이 되고 말지만, 사피엔스 10만 명은 주식 거래망을 운영하고, 정치 집회나 스포츠 대회를 연다. 이것이 바로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반면 침팬지는 동물원과 실험실에 갖힌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사피엔스는 이방인과도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었나? ‘집단 협력 본능’이 인간의 유전자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령 신이나 민족(국가), 돈, 인권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수백만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이 동일한 상상의 이야기를 믿으면 동일한 규칙을 따를 수가 있게 된다. 침팬지의 경우에는 설득을 통해 지금 내게 바나나를 주면, 죽고 난 후에 돌려받을 수 있고, 그런 선행 덕분에 너는 침팬지 천국에 가서 바나나 무더기를 받게 될 거라고 믿게 할 수가 없다. 오직 사피엔스만 그런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또 믿을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비결이다.

    -인간이 그런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에 종교도 포함시켰는데?

    종교는 허구에 기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중요했으며 세계 정복의 열쇠였다. 내가 말하는 종교는 꼭 ‘신에 대한 믿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초인간적인 법칙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사회 규범이나 가치 체계라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힌두교 같은 일부 종교들은 이런 초인간적인 법률이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불교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다른 종교는 그런 법률이 자연적인 법칙이라고 믿는다. 어떤 류의 법을 믿든 모든지간에 종교는 동일한 기능을 한다. 인간의 규범과 가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가와 기업 같은 인간 사회의 제도에 안정을 준다. 어떤 류의 것이든 종교가 없으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대에 와서는 신적인 법을 믿는 종교들은 점점 퇴조하는 반면, 자연법칙을 믿는 종교들은 힘을 얻어가고 있다. 후자는 앞으로 더욱 더 힘을 얻을 것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오늘날 새로운 기술-종교들(techno-religions)이 자라는 온상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기반으로 한 지구 상의 낙원을 약속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상에 번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다른 큰 동물들을 멸종에 이르게 했다. 가령 4만5000년 전 사피엔스가 호주에 상륙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대형 동물 90% 이상이 멸종됐다. 또 1만5000년 전 사피엔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했을 때도 이 지역 대형 생물의 70% 이상이 멸절했다. 사피엔스가 맨처음 밀을 경작하기 전에 이미 지구상의 대형 포유류 절반 가까이가 멸종됐다.

    오늘날 지구상의 대형 동물 90% 이상은 사피엔스이거나 우리가 길들이고 노예화한 농장 동물들이다. 이 동물들은 종종 공장 같은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고, 신체도 산업적인 필요에 맞춰 주형된다. 이들은 평생을 거대한 생산 라인의 톱니바퀴로 살아간다. 이들의 수명과 삶의 질은 기업의 이윤과 손실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동물들 중에서 단연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 혁명이 인간 불행의 씨앗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가?

    흔히 농업 혁명이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었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인류의 집단적 힘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보면, 평균적인 개인의 삶은 그로 인해 사실상 더 힘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그 전까지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수렵과 채집에 적응해서 살아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가젤라를 좇고, 사과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르고, 버섯을 찾아 숲속에서 냄새를 맡고 다니는 데 적응했다.

    반면, 농부의 삶은 오랜 시간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강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뙤약볕 아래에서 추수하는 것이 주를 이루게 됐다. 이런 삶의 방식은 인간의 등과 무릎, 관절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도 마비시키는 측면이 있다.

    식습관만 해도 수렵채집 시절 인간은 잡식성이었다. 수십 종의 과일, 견과류, 채소, 버섯, 포유류, 생선, 새, 파충류, 곤충, 벌레 같은 것을 먹는 데 익숙했다. 반면 농부는 쌀이나 밀 같은 단일 식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그로 인한 영양 부족 외에도, 농부들은 질병 감염에도 훨씬 더 많이 노출됐다. 대부분의 질병은 동물들이 가축화한 후부터 인간에게 감염되기 시작했다. 농업은 또한 사회 서열화와 착취, 가부장제의 길을 열었다. 심지어 오늘날 사회에서도 고대 수렵채집자들보다 일은 더 열심히 하지만 만족도는 더 낮은 삶을 사는 사람이 허다하다.

    -인류 역사의 경로를 결정지은 세 가지 중요한 계기로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을 꼽았다. 이 중에서도 과학 혁명을 가장 중시했는데?

    왜냐하면 과학 혁명은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생물학 자체와 우주의 생명 경로 자체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이래 40억 년 동안 자연선택의 법칙이 지배했다. 바이러스건 공룡이건 자연 법칙에 따라서만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제 과학은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지적 설계(intellectual design)로 대체하려고 한다. 유전 공학과 나노 기술, 인공지능의 도움에 힘입어 이제 과학자들은 사이보그(유기체와 비유기체를 결합한 존재)를 개발하거나 완전히 비유기적인 존재를 고안해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과학 혁명은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다.

    -과학 혁명의 위대함은 ‘무지(Ignorance)의 혁명’에 있다고 봤다. 무슨 뜻인가?

    대부분의 전통 문화에서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 이미 해답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이슬람교도들은 쿠란에 답이 있다고 믿었다. 반면, 근대인은 많은 질문들에 대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에 대한 답은 어떤 고대 경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찰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성직자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많은 중요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과학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역사의 주요 엔진이라고 했는데?

    세 가지는 서로서로를 떠받쳤다. 먼저, 과학과 자본주의는 제국의 확장을 위한 도구와 자금을 지원했다. 만약 근대 영국에 증기 기관과 증권 거래소가 없었다면 인도를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제국과 과학은 자본주의의 등장에 필수적이었다. 자본주의는 부단한 경제 성장 위에 기초하고 있다.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확장과 과학의 발견 덕분이었다. 제국은 새로운 시장과 원자재를 공급했고, 과학은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와 재료와 생산물을 제공했다. 지난 200년 동안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원자 물리학부터 생명공학, 컴퓨터 과학에 이르는 일련의 과학적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과학에 필요한 자금을 대고 지원했다. 과학은 아주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정부와 민간 기업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과학은 결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과학을 위해 필요한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제공했고, 그 반대 급부로 과학이 발견하고 발명한 것으로 무엇을 할지를 결정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싫어할 수 있지만 그것 없이 살 수는 없다고 썼는데?

    자본주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는 어떤 현실적인 대안도 알지 못한다. 가장 최근의 진지한 대안이었던 공산주의는 스스로 완전히 파산했기 때문에 다시 시도할 배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주된 도전이라면 현실적인 대안의 공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뭔가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필요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지금 자본주의는 정말이지 큰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21세기에 직면하게 될 가장 주된 경제 문제가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를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알고리듬은 점점 더 많은 인지적 영역에서 인간을 따라잡고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의식에 관한 한, 유사한 어떤 것도 개발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 보이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의식까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능만 있으면 된다.

    의식은 없어도 지능이 뛰어난 자율주행차나 의사봇이 인간 운전수와 의사보다 일을 더 잘 하면 지구상의 수백만 운전자와 의사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의 ‘쓸모’는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무용해질 수십억 명의 인간을 어떻게 할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경제 모델도 갖고 있지 않다.

    -당신은 신화가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회 질서를 위해서는 ‘고상한 거짓말(noble lie)’이 불가피하다는 뜻인가?

    어떤 류의 신화나 그 비슷한 것이 없으면 사회 붕괴나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별 혼돈 없이 신화적인 믿음이 포기될 수도 있다. 그 전에 수세기 동안 많은 사상가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범죄와 폭력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은 세속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큰 혼란이 없다. 오히려 신을 두려워하는 중동 지역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질서가 있다.

    하지만 어떤 류의 관습적인 믿음 없이는 대규모 인간 사회가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화폐나 국가, 기업 같은 것에 대한 어떤 상상의 이야기들이 없다면 복잡한 인간 사회는 작동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도구일 뿐이다. 그게 우리 목표이거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이 허구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는 현실에 대한 접점을 잃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전면전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미친 짓이다. 기업, 돈, 국가, 민족은 우리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봉사하게 하기 위해 만든 발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 교수 /Ilya Malnikov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신화는 뭔가?

    아마 자본주의의 성장 신화일 것이다. 경제 성장이 최상의 선이라는 생각,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 다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순전히 신화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당신은 종교가 과거 인류의 진보에 크게 기여했다고 썼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묶고 단결시키지는 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종교의 미래는 어떨 것이라고 보나?

    오늘날 종교적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중동 지역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들은 단순한 기기나 알고리듬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테크노-종교들(techno-religions)이다. 이들은 옛 종교들이 했던 모든 약속들, 행복, 정의, 번영, 영원한 삶 같은 것들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도움으로 사후에 그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여기 지상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죽음만 해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 내내 형이상학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왔다. 우리가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했거나 우주 혹은 대자연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죽음을 기술적인 문제로 재정의하게 됐다. 전통적으로 죽음은 성직자와 신학자의 전문 분야였다면 이제 그 문제는 엔지니어들이 넘겨 받고 있다. 2년 전 구글은 캘리오(Calio)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세웠는데, 이 회사의 목표는 죽음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완전한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인류 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AI 위협론에 관한 견해는?

    인류를 가장 놀라게 만들 발명이 ‘의식없는 지능(non-conscious intelligence)’이라는 데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식은 없어도 지능은 고도로 높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한다. 수백만 년 역사 속에서 고등 지능은 발달된 의식과 나란히 갔다. 오직 의식 있는 존재들만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업무, 가령 사냥이나 체스 게임이나 질병 진단이나 논문 쓰기 같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지능은 점차 의식과 분리되고(decoupling) 있다. 우리는 인간보다 체스도 더 잘 두고 질병 진단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의식없는 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둘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인가? 지능인가 의식인가?

    두 가지가 함께 나란히 진행되던 과거에는 이런 질문은 철학자들이나 한가롭게 고민할 문제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 이 문제는 급박한 정치적 경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지능은 필수적인 반면, 의식은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그런 관점에서는 우리 인간은 조만간 쓸모없고 무기력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도 기술의 힘으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거칠게 말하면, 나는 우리가 직면한 주요 쟁점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인간이 자신을 어떤 우월한 종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려 들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처럼 바꾸려고 할 것이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다. 인간은 그전까지 전통적으로 ‘신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돼온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조만간 생명체를 자의에 따라 설계하고 만드는가 하면, 자기 마음 속에서 직접 가상의 현실을 옮겨다니고, 수명을 극적으로 늘리며,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몸과 정신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성(humanity)만큼은 불변이었다. 하지만 수십년 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 자체가 급격한 혁명(radical revolution)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와 정신도 유전 공학과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기회와 더불어 경악할 만한 새로운 위험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현실주의자(realist)가 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상과학소설(SF)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지금 정부나 시민 개개인이 걱정하는 다른 대부분의 문제들은 하찮게 보일 정도다.

    -이제는 죽음을 기술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신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불멸에 이를 수 있다고 믿나?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을 불멸로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바로 그 지식이 동시에 인간을 불필요한 잉여의(redundant) 존재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멸을 추구함으로써, 인류는 자기 자신의 멸종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닥칠 비극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오랜 조언이야말로 가장 좋은 조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우리의 심신까지 바꾸는 능력을 포함한 유례없는 힘을 갖게 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알 수 있나? 나는 신체의 감각에서 시작하고 싶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인간은 점점 신체와 유리된 존재(disembodied being)가 돼왔다. 이 과정은 지난 20년 사이 정보 혁명의 결과로 점점 더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의 가상 세계에 연결돼 있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직접적인 감각 세계에서는 절연된 채로 지낸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침묵의 가치,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의 가치, 지금 여기에서 실제로 느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가치를 배우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그 자체에 어떤 목표나 방향이 없다고 했는데?

    역사에 어떤 명확한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의 무작위적인 흐름에 의해 이리저리 밀려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정치인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세기만 해도 상당 기간 정당들은 인류의 미래에 관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비전이 있었다. 공산주의, 파시스트, 자유주의 같은 비전들이 서로 경쟁했다. 오늘날은 어떤 정당도 이렇다 할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앞서가는 리더이거나, 비전을 제시하는 선견지명의 사람(visionary)이 아니라 행정가로 전락했다. 거의 모든 정치적 논쟁들은 전략적 딜레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단기적 전술적 불일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들이다.

    오히려 오늘날 인류의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일한 집단은 기업가들인 것 같다. 가령 구글이나 애플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옛 세계를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고 하는, 마치 과거 레닌이나 마오 같은 혁명가는 누구인가?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 창업자)과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다. 내 말은 이들의 비전이 레닌이나 마오의 것처럼 가혹하거나 살인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전 세상의 판을 다시 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들의 과감함과, 아주 처음부터 새로운 인간 사회를 건설하려는 구상의 크기로 둘을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로서는 미래에 관한 결정을 소수 엘리트 기업인과 엔지니어들 손에 맡겨두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현대 역사가들이 인류가 더 행복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우리의 힘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우리 삶도 과거에 비해 분명히 더 안락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만큼 선조들보다 훨씬 더 행복한가? 그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었던 것에 비하면 아마 지금 우리는 낙원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설명은,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에 의존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기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대치는 조건에 곧바로 적응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는 다시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진다고 해도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불만족스런 상태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설명은, 우리의 기대와 행복감은 우리 신체 내부의 생화학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생화학적 체계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우리의 생존과 재생산의 확률을 높히기 위한 진화에 의해서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원리는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든, 영원히 불만족스런 상태로 남게 해서 그것을 더 추구하게 할 뿐이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쾌락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기본적인 반응은 만족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추구하게 돼 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든지간에 상관없이, 만족이 아니라 갈망을 키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세상을 정복하는 데는 그토록 성공적이었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던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가 누구이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가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 실수에서 배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각자는 특정 규범과 가치의 체계, 특정한 경제 정치 질서에 의해 지배받는, 특정한 세계 속으로 태어난다. 그 결과,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접한 주변의 현실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아는 세계가 역사적으로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그것들이 우리의 기술,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방식까지 조건지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덜미를 잡혀 우리 눈은 오직 하나의 가능한 미래로만 향하게 된다. 심지어 태어나는 순간부터 과거의 손아귀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이런 손아귀를 느슨하게 하고 우리 머리를 좀 더 자유롭게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가능한 미래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의 우연적인 것들을 우리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민족주의, 개인주의, 인권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가 최근에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 DNA에는 아무런 (천부의) 권리도 새겨져 있지 않다.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런 모든 인간적인 창조물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역사가 그토록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역사를 알려는 것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유발 하라리 교수 /Rami Zarneger
    ◆유발 하라리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히브루대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세 전쟁사로 학위 논문을 받은 후 세계 역사 연구로 확대. 그의 세계사 강의가 유튜브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책으로 낸 ‘사피엔스’가 맨처음 이스라엘에서 출간되고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후, 세계 30개국어 가까이 번역되면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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