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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스토리] 美유학시절 록밴드서 기타·보컬… 밴드서 리더십 길렀죠

  • 최규민 기자

  • 입력 : 2015.04.29 03:05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맥쿼리코리아 워커 회장의 '음악'

    밴드에 맞는 노래 고르고 다양한 연주자들과 소통하며 직접 작사·작곡까지 도맡아
    한국에서도 직장인 밴드 결성, 독거노인들 찾아 자선공연도… 사업 안풀릴땐 음악통해 힘얻죠

    돌아보면 내 인생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나는 호주 시골에서 세 명의 동생들과 함께 자랐는데 가족 모두가 악기를 하나 이상씩 연주했다.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 같았다.

    어머니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능하셨고, 아버지는 아코디언과 하모니카를, 남동생은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두 명의 여동생은 기타와 피아노를 다뤘다. 장남인 나는 이 모든 악기를 조금씩 배웠고, 특히 기타와 피아노를 즐겨 연주했다. 우리 가족은 틈만 나면 각자 악기 연습에 몰입했는데, 형제가 넷이나 되다 보니 서로 연습할 시간을 할당받느라 경쟁해야 했다. 경쟁 속에서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방법을 이때 배운 것 같다.

    어린 시절, 호주 음악학교에서 음악을 배울 때 시험 통과를 위해 지독하게 연습했고, 커서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록밴드를 결성해서 기타리스트와 보컬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지금은 은행가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음악을 통해 나름대로 사회 공헌에 힘쓰고 있다. 인생 전반에 걸쳐 음악을 배우며, 음악과 함께 지금까지 왔고, 음악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와 깨닫지만 어린 시절 음악을 가르쳐주신 부모님은 내게 엄청난 보물을 주신 거나 다름없었다.


    27일 서울 중구 맥쿼리코리아 사무실에서 존 워커 회장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27일 서울 중구 맥쿼리코리아 사무실에서 존 워커 회장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며 틈틈이 자선 공연을 펼치는 워커 회장은“사업이 잘 안 풀릴 때 음악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한번은 남동생과 함께 어려운 호주 작곡가의 작품을 듀엣으로 연주하기 위해 아버지가 엄청나게 연습을 시켰던 때가 있었다. 정말 빠른 손가락 기교가 필요해서 나는 동생이 무대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문득 이건 동생을 위한 걱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관객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동생보다 내 걱정이 앞섰던 것이 부끄러웠고, 듀엣곡의 완성을 위해서는 결국 내가 동생을 잘 리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생이 긴장을 풀고 자신을 믿으며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내 책임이고, 또한 우리가 성공적으로 듀엣 연주를 하는 것은 우리 둘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즐겁게 연주했고,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음악과의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에도 이어졌다. 1970년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샐리스 (Salis)'라는 록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이 록밴드 활동으로 번 돈으로 나는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밴드에서 나는 작사·작곡도 맡았는데, 밴드의 성공을 위해서는 밴드에 적합한 노래를 선택하고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팀에 맞는 테마와 선곡이 아니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팀이라도 성공할 수 없다. 또 개별 연주자가 훌륭하더라도 다양한 연주자와 악기를 적합하게 배합하는 능력이 없으면 그 밴드는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회사 내에서의 팀 구성과 이를 리드할 수 있는 적절한 계획, 그리고 리더십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맥쿼리가 인프라 투자 쪽에서 성공한 것처럼, 창의적이면서 틈새를 공략하는 제품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도 이때였다. 그 당시 샐리스는 우리와 비슷했던 수많은 다른 학생 밴드나 전문 밴드와 경쟁하기보다는 다른 밴드들이 하지 않는 음악을 지향했고, 우리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 관객들이 샐리스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성공했다. 이때 작곡했던 '내 마음속의 고속도로 (Highway of my Mind)'라는 곡은 최근 발매한 앨범에도 실렸다.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지만, 음악을 전문적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희생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밴드 하는 친구들과 같은 집에서 살다 작은 아파트로 독립하니, 작곡하고 공연에서 번 돈으로 집세를 내고 나면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할 수 없이 빵집에서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주일에 몇 번은 공사장에서 지붕 타일과 벽돌을 날랐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정말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마음 한편에는 좀 더 진중한 일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나는 결국 공무원 채용 기회를 접하고 응시했다. 공무원 초년병 시절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어 밴드를 하기도 했지만 승진하면서 결국 기타에 거미줄이 생겼다.

    정부 관료에서 은행원으로 변신한 것은 1998년이었다. 다른 쪽 언덕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한국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나라에 오니 다시 음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직장인 밴드를 시작했고, 이 활동은 회사일을 하는 데도 큰 활력이 되고 있다. 사업이 잘 안 될 때 음악을 통해 힘을 내고 버틸 수 있었다. 또 음악을 통해 많은 한국 사람과 친해진 덕분에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 밴드는 틈틈이 어르신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하고 있다.

    음악은 내게 인내하며 배우는 법, 남과 조화를 이루는 법, 경쟁하고 협상하는 법, 팀을 꾸리고 리드하는 법,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법, 그리고 나누며 사는 법을 가르쳐줬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이 왜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께서 그렇게 중시하던 음악과 음악 교육이 나에게 무엇을 안겨주었는지 정말 명확해진다.


    [존 워커 회장은]


    존 워커(60) 맥쿼리코리아 회장은 지난 2000년 직원 3명과 함께 한국에 맥쿼리 지점을 열고 생소한 분야였던 대체투자를 한국에 소개한 인물이다.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인천대교 등 대형 민자사업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해 사세를 키웠다. 현재 직원 수는 240명, 자산은 200억 호주달러(약 17조원)에 이른다.

    워커 회장은 외국 기업인 중 대표적인 친한파로 통한다. 호주·한국경제협력위원회 부회장과 호주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의 반달곰을 소재로 한 영어 동화책 '우라의 모험'과 '우라의 꿈'을 출간해 수익금 전액을 환경단체에 기부했고, 2014년에는 자작곡 앨범 '12개의 다리'를 발표해 수익금을 한국의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등에 기부했다. 호주 뉴잉글랜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호주 연방정부 차관 등을 지내다 맥쿼리로 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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