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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게임은 나도 무서워”…회사 2조원에 매각한 22세 오큘러스 창업자

  • 류현정 기자
  • 입력 : 2015.04.20 03:00

    “저…, 손 좀 잡아주세요.”

    기자가 가상현실(VR) 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Oculus)의 ‘크레센트 베이(Crescent Bay)’을 머리에 썼다가 바로 ‘구조 요청’을 했다. 앞에는 검은 망토를 걸친 괴기스런 거인이 가로 막았고, 도망가려고 뒷걸음쳤더니 바로 아래가 수백 미터 협곡이었다. 나 홀로 낭떠러지에 서 있는 신세. 저 멀리 산풀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데 갑자기 외로움에 사무쳤다.

    크리센트 베이는 눈앞에 입체 영상을 보여주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다. 오큘러스 VR 한국법인은 17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 2층에 체험관을 마련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상으로 시연에 나섰다.

    19세에 세계적인 가상 현실 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를 창업한 팔머 럭키 창업자가 지난 17일 개발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 창업과정과 VR 전망에 대해 밝혔다./이진한 기자
    19세에 세계적인 가상 현실 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를 창업한 팔머 럭키 창업자가 지난 17일 개발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 창업과정과 VR 전망에 대해 밝혔다./이진한 기자
    이날 행사가 열린 호텔에서 팔머 럭키(Palmer Luckey) 오큘러스 창업자를 만났다. 그는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유나이트 서울 2015’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16세에 집에서 VR 기기를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고 19세에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의 이름대로 ‘럭키’한 순간이 별안간 찾아왔다. 회사 세운 지 2년 만인 2014년 페이스북이 이 작은 회사를 무려 2조원에 인수했다. 오큘러스는 상용 제품을 내놓은 적도 없는 회사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가 그런 것처럼 올해 22세인 럭키 창업자도 행사 내내 짙은 청색 ‘후드 티’를 걸치고 돌아다녔다. 인터뷰 때도 마찬가지였다.

    - 어린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살면서 세 여동생과 함께 홈스쿨(재택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부모님이 홈스쿨링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하셨다. (그의 아버지는 자동차 딜러였고 어머니는 가정 주부였다.) 나이 들어서도 홈스쿨링을 계속했다. 덕분에 내 취미나 관심 분야에 더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0대 들어서 PC 게임과 비디오 게임 광(狂)이 됐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 ‘포켓몬’ ‘마리오 시리즈’ ‘크로노 트리거’ 등 거의 모든 게임을 즐겼다.”

    - 돌이켜 보면 남달랐던 부분이 있었나.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하드웨어 분야 천재라고 한다.

    “천재(genius)라니……. 아니다. 내가 VR 기술과 관련해 특별하고도 유일한 돌파구를 찾은 적도 없다. 80, 90년대에도 VR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다만, 당시 기술 수준이 VR의 비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도 다른 사람이 전자공학을 이해하는 만큼 이해할 뿐이다. 다만, 더 이상 누구도 VR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에도 나는 끝까지 VR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온통 머릿속에는 VR 생각뿐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10대 때 PC 게임을 엄청 좋아했다.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최신 컴퓨터를 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좀 더 적극적인 친구는 최신 부품을 사는 데 열심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없었던 방법으로 게임을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을까, 그런 하드웨어를 만들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새 비디오 게임 기기를 구매하는 것보다 차고(車庫)에 처박혀 전자제품을 연구하고 전자공학 같은 것을 배워서 기존에 없었던 방법으로 새 게임기를 직접 구현해보는 데 열중했다.

    2000년 후반 들어 컴퓨터 성능이 좋아졌고 센서 기술이 발달했으며 디스플레이도 매우 선명해졌다. 갑자기 상상했던 것을 값싸게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VR 게임과 기존의 비디오 게임, PC 게임, 모바일 게임과는 무엇이 다른가.

    “디스플레이로 게임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게임 안에 들어가 ‘체험’하는 것이 VR 게임이다. 비디오 게임, 모바일 게임도 아름답고 실감나는 그래픽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공룡을 집채만 한 크기 그대로 눈앞에서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없다.

    친한 개발자가 공포 장르의 VR 게임(horror game)을 만들어 보여줬다. 난 호러물은 정말 싫어한다. 그 게임에는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계속 “노노(No, No)”라고 했다. 정말 무서웠다. 이것이 VR 게임과 기존 게임과의 차이다.”

    VR 기기 제조업체들은 이런 실재감을 구현하기 위해 ‘360도 헤드 트래킹(현실 공간처럼 머리를 상하좌우로 돌릴 때마다 다른 장면이 나타나는 기술)’, ‘좌우 시차를 이용한 3차원(D) 시야’, ‘110도 이상의 넓은 시야각’, ‘사용자 위치 파악 기술(Positional Tracking)’, ‘사용자 위치에 따른 소리 구현 기술(Positional Sound)’ 등을 이용, 정교하게 통합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팔머 럭키 창업자./이진한 기자
    팔머 럭키 창업자./이진한 기자
    - 2012년 스타트업을 세우고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업체 ‘킥스타터’에서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에는 킥스타터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개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밸브(Valve), 에픽게임스(Epic Games), 유니티(Unity) 등 게임 업체들이 입소문을 내주면서 킥스타터에서 한 달 만에 240만 달러 이상 자금을 모았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고 킥스타터 모금 기록 중 최고 수준이었다.”

    그는 킥스타터에서 최소 300달러 이상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오큘러스 VR 시제품을 보냈다. 사람들은 이 시제품을 이용해 별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킥스타터의 투자자들에게 지분까지 나눠 준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불법이다. 럭키 창업자가 지분 희석 없이 개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큘러스는 2012년 8월 첫 번째 개발자 버전 ‘오큘러스 리프트 DK1’을, 2014년 7월에는 두 번째 개발자 버전 ‘오큘러스 DK2’를 내놓았고 2014년 9월에는 세 번째 시제품 ‘크리센트 베이’를 내놓았다. DK1과 DK2는 개발자용이고 크리센트 베이는 몇 가지 개선 작업을 거쳐 소비자용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DK1과 DK2 가격은 300~350달러였는데, 최소 20만대 가량이 팔려 나갔다.


     오큘러스의 신형 VR헤드셋 '크레센트 베이'/사진=오큘러스 제공
    오큘러스의 신형 VR헤드셋 '크레센트 베이'/사진=오큘러스 제공
    - 페이스북과의 인수 협상은 어떻게 시작됐나.

    “처음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를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2014년 1월 그가 우리 회사에 직접 찾아왔다.

    그는 오큘러스 CEO인 브랜든 이리브(Brendan Iribe)와 함께 회사를 둘러봤다. 저커버그가 “하이, 난 마크야”라고 말을 걸었고 나는 “하이, 난 팔머야. 그런데 바빠, 일하러 돌아가야 해”라고 답했다. 마크가 “어…오케이.”라고 했고 나는 일에 몰두했다.

    그 때는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없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마크 저커버그의 이상(理想)이 우리의 이상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14년 3월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약2조15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오큘러스 커뮤니티의 팬들이 격렬히 항의했다.

    일부는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에 인수되면 오큘러스 특유의 실험 정신이 없어질 것이라 비난했고, 또다른 일부는 개발 자금을 댔는데도 지분이 없어 돈을 벌지 못했다고 배 아파했다.

    “나도 오큘러스를 페이스북에 매각한 것에 대해 몇몇 사람들이 불쾌해(not happy)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가 독립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제품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페이스북에 인수된 후로는 페이스북 인력이 법적인 문제, 고용 절차 문제, 건강 보험 문제를 관리해준다. 우리는 기술 개발에만 매진하면 된다.

    (오큘러스 커뮤니티에서 비난이 일었던 것은) 이런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내년, 내후년에도 비난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 게임 외에 다른 분야에서 VR을 이용한 사례는.

    “외과 의사가 VR로 수술하는 방법을 의대생에게 가르치는 것을 직접 봤다. 너무 실감나서 역겨울 정도였다.

    의료계뿐만 아니다. 교육계에선 VR을 이용해 학생들을 역사 현장에 데려갈 수도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지구에서 공룡이 활보하던 선사 시대에 가 볼 수도 있다.

    낙하 훈련을 하려면, 낙하산 장비 구매부터 보험 가입까지 비용이 정말 많이 든다. 한국에서는 VR을 통해 낙하 훈련을 하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엄청난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오큘러스에는 여러 분야 개발자를 상대하는 DR(Developer Relation)팀이 별도로 있다. 각 산업에서 VR을 활용하고 싶다고 문의가 오면, 최고의 VR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같이 궁리도 한다. 우리가 VR 생태계를 키우는 한 방법이다.”

    - 한국 지사는 언제 만들었나.

    “오큘러스를 설립할 때인 2012년 한국 지사를 만들었다. 삼성전자(005930)라는 대형 전자 기업이 있고 수많은 부품 업체와 실력 있는 게임 개발자들이 많아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다.

    덕분에 삼성전자와 협력해 ‘기어 VR’을 내놓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와 일을 해보니) 그 규모에 놀랐다. 오큘러스는 VR 하나에만 신경을 쓴다. 그런데 한국 회사는 오디오팀, 디스플레이팀, 유통팀 등등 굉장히 많은 팀이 거대한 하나의 회사에 있다. 서로 경쟁도 한다.”

    저커버그 CEO는 2014년 10월 한국 방문 당시 삼성전자를 방문해 가상현실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삼성전자와 오큘러스는 ‘기어 VR 이노베이터 에디션’을 미국과 한국에 출시했다. 이 기기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 4’와 연동된다. VR에 포함된 통합형 터치패드와 트래킹 센서를 활용하면 몰입형 VR 체험을 할 수 있다.

     삼성전자, 가상현실 헤드셋 '기어 VR'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가상현실 헤드셋 '기어 VR' /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와 협력해 내놓은 ‘기어 VR 이노베이터 에디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기어 VR 이노베이터 에디션은 일종의 특별판이다. 개발자나 하드코어 게이머들,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 대상이다. 일반 소비자용은 아니다.

    개발자로부터 평가는 좋은 편이다. ‘그동안 VR기기를 들고 다닌 적이 없다. 그런데 기어 VR을 이용하면 기차, 비행기 탈 때 여행 갈 때 들고 갈 수 있다’ 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현재 피드백을 수집 중이고 제품 개선에 반영하고 있다. 올해 말에는 일반 소비자용 기어 VR이 나올 것이다.

    기어 VR 이노베이터 에디션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삼성전자한테 직접 물어봐야 할 것이다.”

    - 오큘러스 본사에서 계속 사람을 뽑고 있다. 어떤 사람을 채용하나.

    “VR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면 언제나 환영이다. 대부분 회사의 VR 개발자나 연구원들은 주어진 업무를 한다는 식이 많다.

    수 년 전에는 스마트폰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제는 평범한 엄마도 스마트폰을 지니고 다닌다. VR기기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으면 채용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3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F8’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3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F8’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페이스북에서 문자를 공유했는데, 이제는 사진과 비디오를 공유하고 있으며 앞으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블룸버그
    -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와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우리의 비전은 누구든 언제든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The vision is to allow anyone in the world to experience anything with anyone at anytime).

    가령 나는 미국에 있고, 너는 한국에, 또다른 친구는 영국에 있다고 치자. 우리가 같은 가상공간에 있다면 같은 경험을 같은 시간에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지겨운 사무실에서 벗어나 해변에도 갈 수 있다.

    저커버그는 VR기기가 TV처럼 많이 보급되면, VR이 차세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자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늘 말한다. PC가 혁명이었고 휴대전화가 새로운 컴퓨팅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 PC 혁명과 스마트폰 혁명에 이어 VR 혁명이 온다는 뜻인가.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렇게 한번 상상해보라. 이만한 VR 헤드셋이 안경처럼 작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안경은 매일 써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VR기기가 그렇게 가볍고 작아진다면? (참고로 오큘러스 VR 기기 무게는 대략 440g, 안경 무게는 30g이다.)

    우리는 그 작은 안경을 통해 모든 것을 가상으로 보여줄 수 있다. 프로젝터가 될 수도 있고 엄청난 TV를 대신할 수도 있다. 가상공간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다.

    그 어떤 기술도 모든 것을 눈앞에서 구현하는 VR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VR이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자 최후의 컴퓨팅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오큘러스는 시각과 청각 외에 촉각 기술까지 더해 몰입감과 실재감을 더하는 VR 기기를 내놓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생생한 이미지·영상·음성 등을 통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기술.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할 만한 입체 영상을 보여주면 두뇌가 실제로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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