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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공기업]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 정수기 거치자 맑게… 주민 "오십 평생 이렇게 맛있는 물 처음"

  • 호찌민(베트남)=이동휘 기자

  • 입력 : 2015.03.09 03:04

    환경기술 수출의 현장, 베트남을 가다
    가장 위험한 물질 1위 비소
    베트남, 국민 10명 중 7명 이상 오염된 물 마시는 식수 빈국
    국내 환경기술 현지에 맞게 개량…베트남·필리핀 등 4개국 지원

    이동휘 기자.
    이동휘 기자.
    지난 2000년 초반만 해도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던 우리의 환경 기술은 이제 '환경기술 수출국'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정부는 2001년부터 환경 관련 연구개발(R&D) 사업에 약 1조원을 투입했고, 10여년 만에 선진국 대비 최고 80% 수준까지 국내 환경기술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개발한 환경기술들을 환경산업 유망시장인 개발도상국으로 '수출'에 나서 성과들을 내고 있다. 지난 2006년 27억원 규모의 중국 산둥성 오수(汚水) 재이용 프로젝트 수주를 시작으로 지금은 전 세계 75개국과 해외진출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용 비소 정수기를 개발도상국 현지 사정에 맞게 개량해 지원하는 등의 '환경분야 적정기술 보급지원사업'이다.

    이런 '환경기술 개발 및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을 주도하는 기관은 바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이다. 본지는 지난 1월 환경기술 수출의 현장인 베트남을 찾아가 현지를 살펴봤다.
    지난 2월 필리핀 일로일로 섬의 한 마을을 찾은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이 아이들과 빗물을 정수해 만든‘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국내 환경 기술을 활용해 하루 60)의 빗물을 정수할 수 있는 설비를 주민들에게 설치해줬다.
    지난 2월 필리핀 일로일로 섬의 한 마을을 찾은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이 아이들과 빗물을 정수해 만든‘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국내 환경 기술을 활용해 하루 60)의 빗물을 정수할 수 있는 설비를 주민들에게 설치해줬다./한국환경산업기술원 제공
    지난 1월 17일 오전 베트남 경제 수도 호찌민시(市)에서 차를 타고 3시간 달려 닿은 붕따우성(省) 빈 짜오(Binh chau) 마을. 이 마을에 사는 다섯 살 린(Linh)양이 마을 어귀에 있는 우물을 찾았다. 린 양은 진흙이 섞여 벌겋고 뿌연 물을 우물에서 한 바가지 뜨더니, 모래가 든 항아리에 옮겨 부었다. 항아리 속 모래가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해 거르기 전보다는 맑은 색깔의 물이 흘러나왔지만, 여전히 마시기는 힘들어 보였다. 린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더니 자리를 떴다.

    이날 린양이 마신 물은 '마시면 안되는' 물이다. 지난해 8월 기술원이 이 우물의 수질을 검사한 결과, 우물물 1리터당 0.12㎎의 비소(As)가 들어 있었다. 한국 음용수 기준의 12배였고, 알루미늄(Al)의 농도는 더 심해 한국 허용치의 30배에 달했다. 하지만 이 마을 주민 99%가 이 우물물을 마신다.

    비소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매년 내놓는 '가장 위험한 물질' 조사에서 10년째 1위에 올라 있는 물질이다. 체내에 상당량이 들어올 경우 신체 마비 증상과 함께 심혈관 질환, 피부암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마을 레 김 류(Le Kim Luu) 면장은 "우리도 물에 비소가 많이 섞여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래로 거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식수를 구할 다른 방법도 없어 살기 위해서 이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베트남 붕따우성 빈 짜오(Binh chau) 마을의 우물가에 모래가 든‘간이 정수통’이 놓여 있다. 비소와 진흙으로 오염된 우물물 때문에 통 속의 모래가 붉게 변해 있다(왼쪽). 이 정수통으로 걸러 나온 누르스름한 물이 양동이에 담겨 있다. 제대로 정수되지 않아 비소(As)·알루미늄(Al) 등이 허용치보다 많은 이 물을 주민들이 식수로 쓴다(오른쪽).
    지난 1월 베트남 붕따우성 빈 짜오(Binh chau) 마을의 우물가에 모래가 든‘간이 정수통’이 놓여 있다. 비소와 진흙으로 오염된 우물물 때문에 통 속의 모래가 붉게 변해 있다(왼쪽). 이 정수통으로 걸러 나온 누르스름한 물이 양동이에 담겨 있다. 제대로 정수되지 않아 비소(As)·알루미늄(Al) 등이 허용치보다 많은 이 물을 주민들이 식수로 쓴다(오른쪽)./한국환경산업기술원 제공
    비소로 오염된 물을 마시는 곳은 이 마을뿐이 아니다. 베트남은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비소로 오염된 물을 마시는 '식수 빈국(貧國)'이다. 베트남의 농어촌 지역 상수도보급률은 28%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지역이 지하 광물에서 녹아 나온 비소가 섞인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탁, 위이이잉, 주루루룩".

    같은 날 오후 인근 푸억부우(Phouc Buu) 마을 주민 쯔언 민 푹(Truong Minh Phut)씨가 방금 전 설치한 '비소 정수기'의 버튼을 눌렀다. 수도꼭지에서 나온 흙탕물이 금세 맑은 물로 정수돼 아래에 받쳐 놓은 플라스틱 통으로 흘러나왔다. 쯔언씨는 "오십 평생 이렇게 맛있고 깨끗한 물은 처음이다. 물맛이 참 좋다"며 연신 물을 들이켰다. 50년간 비소가 섞인 물을 마시며 살아온 그다.

    이날 300가구에 보급된 가정용 비소 정수기는 베트남 현지 사정에 맞게 만들어진 정수기였다. 비소흡착제 등이 들어 있는 필터 성능을 대폭 개선해 필터 교체 주기를 2배로 늘렸고, 필터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 공정은 현지화해 단가도 낮췄다. 정수기를 이용하면 물속의 비소가 세계보건기구(WHO) 허용 기준인 10ppb 이하로 낮아지고, 카드뮴(Cd) 등 유해물질도 걸러진다. 응우옌 하이 라(Nguyen Hai La) 푸억부우 면장은 "이 정수기는 그냥 정수기가 아닌 '생명 정수기'"라고 말했다.

    기술원은 이렇게 국내 환경기술을 현지에 맞게 개량해서 총 4개국에 지원했다. 베트남 외에도 지난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본 필리핀 섬 지역에는 총 60t 규모의 빗물 활용 설비를 지원했다. 캄보디아에는 메콩강 유역 주변에 비소 등으로 오염된 지하수를 마시는 학생들을 위해 하루 지하수와 빗물 15t을 정수할 수 있는 시설을 지원했다.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이들 국가에 대한 기술 지원은 인도적 차원 외에도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도움을 줄 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라며 "장차 한국의 환경기술들이 개도국 시장에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의미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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