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갉아먹는 수수료… 매년 0.5% 떼어가

조선일보
  • 이경은 기자
    입력 2015.03.04 03:04

    IRP 계좌 금리 年 2.15%… 정기예금보다 높아보여도 수수료 제하면 수익률 역전
    소비자 불만 목소리 커져도… 금융사 "시스템 유지비 때문"

    종업원 4명을 두고 연 매출 30억~50억원인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권모 사장. 그는 최근 퇴직연금 결산 내역서를 받아 보고 화들짝 놀랐다. 2년 전 회사 책임형(DB형) 퇴직연금에 가입해서 종업원 퇴직금 4억5000만원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 운용하고 있는데, 연 2.4% 금리에 수수료로 0.8%를 떼여 실질 금리는 연 1.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퇴직연금 성과가 일반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것보다도 못하니 황당하다. 초저금리 시대에 수수료 0.8%는 과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초저금리로 수수료 체감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퇴직연금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과거 고금리 시절에 책정해뒀던 수수료 체계를 저금리 시기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퇴직연금은 운용·자산 관리 수수료 명목으로 계좌 평가 금액의 연 0.3~0.8%에 이르는 비용을 매년 지불해야 한다.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는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수수료는 옴짝달싹하지 않으니 소비자들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퇴직연금 종류별 수수료 내역. IRP에 300만원 넣은 직장인 H씨의 손익 계산서.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퇴직연금은 거의 매년 법률 개정이 되고 있어서 시스템 변경을 자주 해야 하고 이에 따른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 "적정 마진을 확보하지 않으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게 되고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해 결과적으론 소비자에게 손해"라고 반박하고 있다.

    ◇초저금리가 자극한 수수료 불만

    퇴직연금은 지난 2005년 도입 이후 9년 만에 107조원 시장으로 성장했다. 금융업계에선 앞으로 10년 내에 30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IRP(개인형 퇴직연금) 300만원 추가 세제 혜택이 생겼고,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체는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될 예정이다.

    하지만 저금리 장기화로 퇴직연금 수익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가입자의 92.2%가 가입 중인 원리금 보장 상품(예금·보험 등)은 2012년만 해도 수익률이 연 4~5%대에 달했지만 연 2%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퇴직연금 성과가 부진해지자, 고금리 시절엔 너그러웠던 가입자들이 예민해지고 있다.

    퇴직연금 수수료는 회사 책임형, 개인 책임형(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종류에 따라 납입 주체가 달라진다. 통상 DB형은 회사가, DC형은 회사 또는 개인, IRP는 개인이 내야 한다.

    회사원 이정희씨는 "세제 혜택을 받으려고 지난달 은행에서 IRP 예금을 알아봤는데, 금리는 2.15%인데 수수료로 연 0.5%를 뗀다는 얘기에 망설였다"면서 "같은 은행 예금에 가입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 왜 수수료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IRP 계좌로 펀드 투자하면 수수료 이중으로 물어야

    퇴직연금 수수료는 언뜻 생각하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중도 해지할 수 없어서 돈을 찾지 못하고 계속 쌓아가야 하는 퇴직연금이란 특성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수료가 계좌 평가 금액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DB형과 일부 DC형은 회사가 수수료를 내니까 종업원은 큰 부담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회사가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 급여를 책정하게 되므로 결국 개인 몫으로 남게 된다.

    회사원 김성은씨는 "세제 혜택이 있다고 해서 300만원씩 넣어볼까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1억이 쌓이면 계좌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중에 50만원씩 수수료로 나가게 되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엔 숨어 있는 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이른바 '웃돈 금리'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시중 대형은 창구에서 판매하는 일반 정기예금 금리는 1년에 2%인데, 퇴직연금에서 파는 정기예금 금리는 2.15%다. 퇴직연금 점유율을 높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웃돈 금리를 주는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웃돈 금리를 받는다고 해도 수수료를 떼이기 때문에 세제 혜택을 받지 않고 이자 수익만 따진다면 손해일 수 있다.

    올 초 IRP에 가입한 회사원 김정훈(42)씨는 "단 0.01%라도 수익을 더 내려고 펀드에 가입한 건데 펀드 비용에다 IRP 수수료까지 이중(二重)으로 나간다는 얘길 들으니 황당하다"면서 "은행원이 따로 설명을 해주지 않아 몰랐는데 펀드 성과가 마이너스가 되어도 이중 수수료를 내야 한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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