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의 韓銀] [上] 올 들어 11개國 줄줄이 금리 인하… 불붙은 通貨전쟁, 한국만 뒷짐

조선일보
  • 이진석 기자
    입력 2015.03.02 03:03

    [세계경제 흐름과 거꾸로]

    소비 증가율 3년새 반토막, 가계 利子 부담 덜어줘야 수요 늘려 경기 활성화 기대
    금리 인하국은 증시 급등세… 코스피는 수년째 제자리걸음
    원화 가치 상승률 세계 최고, 수출 경쟁력 떨어질 우려
    韓銀 "환율전쟁 표현 부적절" 정부·산업계와 정반대 입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취임 후 총 11번의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했고, 두 번만 금리를 인하했다. 전임자인 김중수 전 총재는 무려 15개월간 금리를 동결하기도 했다. 사진은 이 총재가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마친 직후 모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취임 후 총 11번의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했고, 두 번만 금리를 인하했다. 전임자인 김중수 전 총재는 무려 15개월간 금리를 동결하기도 했다. 사진은 이 총재가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마친 직후 모습. /김지호 기자

    "한국은행 복도에는 물가 안정이라는 유령(幽靈)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일 한은이 4개월째 기준 금리를 연 2%로 동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물가 상승을 막는 투사)라는 전통적인 역할을 벗어던지고 불황 파이터, 실업 파이터로 변신하고 있는데 한은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고 말했다.

    주요국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이에 따라 높아지는 환율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통화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28일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작년 11월에 이어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행동에 나섰다.

    일본은행(BOJ)은 작년 10월 추가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선언하고 앞서가고 있다. 올 들어서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 19개국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1월 총 1조1400억유로(약 1400조원) 규모의 양적 완화를 발표했고, 호주·캐나다·덴마크·터키 등 11개국도 금리 인하 등을 단행했다.

    통화 전쟁에 뒷짐 진 한은, 경제 침체 방관하나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리를 낮춰서 가계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소비 증가율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소비 증가율은 지난 2010년 4.4%에 달했지만 2013년 2%로 반 토막이 났다. 또 지난해까지 2년 연속 1.3%에 그친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가상승률 하락이 소비 위축, 세수 감소 등으로 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은 수요를 늘려서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 것인 만큼 한은도 수요 확대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금리를 인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등을 단행한 주요국들은 경제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증시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최고가 신기록까지 갈아치우는 중이다. 신한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세계 증시의 시가총액이 지난 25일 기준 67조5826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15년 만의 최고권을 보이고, 호주는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의 경우 독일이 사상 최고치, 프랑스는 7년 만의 최고치다. 이런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리거나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코스피가 2000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수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주요국 중 환율 절상 최고…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

    정부는 금리 인하 경쟁에서 뒤처져 원화 가치만 나 홀로 상승하는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원화의 실질 실효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화 전쟁이 환율 전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주요국의 지난 2년간 실질실효환율 절상률 그래프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1월 원화의 실질 실효 환율은 114.41로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인 2008년 2월(118.79) 이후 6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질 실효 환율은 세계 61개국의 물가, 교역 비중을 고려해 각국 통화의 실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다. 100을 넘으면 기준연도(2010년)보다 고평가, 100보다 낮으면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최근 2년간 상승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베네수엘라·홍콩·아랍에미리트에 이어 넷째로 높다. 금융연구원은 "베네수엘라 등 상위 3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가 아니어서 실제로는 원화의 가치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 총재, "환율 전쟁이라는 표현 부적절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환율 문제 등에서 정부와 정반대 입장에 선다. 지난 1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4개월째 기준 금리 동결(연 2%)이 결정된 뒤 그는 각국의 금리 인하 경쟁을 '환율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각국의 금리 인하는) 경기 회복세를 높이고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것인데, 그 결과 환율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환율 전쟁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환율 전쟁이 벌어진 것이 아닌 만큼 고환율을 위해 금리를 낮출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취임 후 작년 8월과 10월 금통위에서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해 기준 금리를 역대 최저인 연 2%로 낮췄지만 추가 금리 인하에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정부와 산업계에서는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관계자들은 "한은은 기준 금리를 연 2% 이하로 낮추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주요국은 양적 완화와 마이너스 금리까지 감행하고 있다"면서 "한은이 세계경제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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