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일본 재계단체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ㆍ經團連)는 여러모로 닮을 꼴이다.

실제 5·16 직후인 1961년 만들어진 한국경제인협회를 모태로 한 전경련은 창립 때부터 게이단렌을 롤모델로 삼았다. 게이단렌이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경제의 재건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전경련도 당시 정부의 국가 재건 사업에 기업인들이 기여하겠다는 취지에서 창립됐다.

게이단렌과 전경련 모두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민간경제단체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2014년 12월 1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진행된 '제24회 한일재계회의'에 참석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사카키바라 경단련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두 단체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본 게이단렌 회장은 ‘재계의 총리’로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한국의 전경련은 2000년대 이후 회장 임기가 끝날 때마다 구인난(難)에 시달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경련은 지난 10일 총회를 열고 허창수 GS회장의 3연임을 확정 지었다. 하지만, 선임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지난 2011년부터 4년 동안 전경련을 이끈 허 회장이 고사(苦辭)한다고 밝혔음에도 마땅한 후임이 없다는 이유로 3연임이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전경련이 위상 추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게이단렌의 위기극복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게이단렌은 전통적으로 정치자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들의 정치헌금을 자민당 등 보수 정치권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고, 이는 자민당 55년 집권의 자양분이 됐다.

이 정치헌금이 각종 비리 스캔들로 이어졌고,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게이단렌은 비리구조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1990년 7대 게이단렌 회장으로 취임한 히라이와 가이시(平岩外四) 전 도쿄전력 회장이다.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가 시작될 무렵 회장을 맡은 그는 1993년 게이단렌이 정치헌금을 알선해 온 관행을 과감히 폐지했다. 또 전후 일본 최초의 비(非) 자민당 정부인 호소카와 정권에서 경제구조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히라이와 리포트’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대담한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구축을 제창한 이 리포트는 이후 고이즈미 정권이 추진한 개혁의 출발점 역할을 했다.

그는 또 버블 붕괴 직후인 1991년에는 회원 기업의 행동지침을 정한 ‘기업 행동 헌장’을 내놓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게이단렌이 사회공헌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책임의 실현에 관심을 쏟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사회공헌위원회는 도요타, 미쓰비시 등 일본의 주요 대기업 100여곳이 속해 있다. 최근 게이단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 86%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사회공헌활동에 나선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게이단렌이 우주개발추진회의, 방위생산위원회 같은 24개 상설 위원회를 두고 정부와 정책 대화에 나서고 각종 사회 현안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이런 변화가 밑바탕이 됐다.

지난해부터 아베 신조 총리의 임금인상 요청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집권 후 새해를 맞을 때마다 기업들에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내수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의 임금소득이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6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경제 3단체의 신년회에서도 "(기본급 인상을) 한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노력해줬으면 한다. 큰 결단을 갖고 노력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게이단렌은 이에 화답해 지난해 회원사들에 임금인상을 용인한다는 임금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봄 일본 대기업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2.28%로 2013년의 1.83%보다 올라갔다. 게이단렌 자체 조사에서도, 작년 여름 보너스 상승률이 전년대비 7.2%로 2013년의 5%보다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