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투자자문·기자가 맥주로 의기투합한 이곳

조선비즈
  • 송병우 기자
    입력 2015.02.15 12:58 | 수정 2015.02.15 13:40

    [크래프트 비어펍을 찾아서] 이태원 더부스

    더부스가 자체 개발한 수제맥주 ‘빌스 페일 에일(Bill's Pale ale)’과 홍대 몬스터피자의 페퍼로니 피자. /송병우 기자

    “한의학적으로 맥주는 성질이 차가워요. 많이 먹으면 배가 나오고 건강에도 안 좋아요. 그래도 먹고 싶은 것 참느라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덜 해롭죠.”

    더부스를 운영하는 3명 중 한의사 출신 김희윤 사장의 맥주에 대한 평가다.

    한의사와 금융사 직원, 그리고 영국인 기자가 모여 이태원 경리단길에 만든 수제 맥줏집 더부스(The Booth). 12일 오후 8시쯤 찾은 더부스에선 마크 론슨(Mark Ronson)의 ‘업타운 펑키(Uptown Funk)’가 흘러 나왔다.

    사람들이 12일 저녁 이태원 경리단길 더 부스(The Booth)에서 수제맥주와 피자를 즐기고 있다. /송병우 기자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은 현란한 그라피티(Graffiti)와 환한 조명 아래서 맥주와 피자를 즐기고 있었다. 직원들은 음악에 어깨를 들썩이거나 손을 흔들며 주문을 받았다.

    더부스 사장은 3명이다. 모두 맥주와 관계없는 경력을 가졌다. 김희윤(28) 사장은 2012년 한의대를 졸업하고 1년 넘게 한의사로 일했다. 맥줏집을 차리려고 2013년 병원에 사표를 냈다. 양성후(28) 사장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창업 전까지 투자자문사에서 3년간 일했다.

    다니엘 튜더(Daniel Tudor·33) 사장은 영국 옥스퍼드대를 나왔다. 이코노미스트지 기자(한국 특파원) 출신이다. 그는 2012년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기사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다니엘은 2013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란 책에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더부스의 양성후 사장(왼쪽)과 김희윤 사장. 둘은 지난해 결혼했다. /송병우 기자

    사장 3명은 원래 친구였다. 그들은 각자 직업에 대해 심각한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 있었다. 2013년 2월 술을 마시다 누군가 “우리 수제 맥주나 같이 팔아 볼까?”라며 제안을 했다. 이후 3개월 만에 더부스를 오픈했다.

    당시 김 사장은 하루 종일 병원에 앉아 일해야 하는 것을 지겨워하던 차였다. 한의원 원장은 김 사장의 마음을 이해하고 격려했다. 김 사장은 “병원장이 대학교 선배였는데 내가 의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려는 것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회상했다. 양 사장도 자신의 일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다니엘은 기자란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회사는 다니엘에게 자극적인 기사를 원했고 다니엘은 이에 지쳤다. 다니엘은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면 북한의 전략적 도발이라고 판단했지만, 회사는 ‘북한이 나쁘다’는 주제의 보도를 원했고 회사 의도대로 기사를 써야했다”며 “내 생각과 다른 것을 딱딱한 기사로 쓰는 일에 회의를 느꼈다”고 전했다.

    서울 크림 스타우트(Seoul Cream Stout)와 피자. 이 맥주는 이태원 더부스와 릴리스 탭 하우스(Lily’s Tap House)가 함께 만든 밀크스타우트이다. /송병우 기자

    경리단길에 더부스를 여는데 인테리어 공사·권리금·보증금 등 총 1억원이 조금 넘게 들었다. 3명이 각자 3000만~4000만원씩 투자해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동업자로 부대끼던 김 사장과 양 사장은 지난해 결혼했다. 부부는 다음달 더부스 바로 윗층으로 이사온다. 두 사람은 맥주 투어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 양조장만 3000개가 넘는 미국 전역에서 원없이 맥주를 맛보고 왔다. 양 사장은 “신혼여행에서 250종이 넘는 맥주를 아내와 함께 경험했다”고 말했다.

    더부스의 강점은 전문성과 엄격한 관리다. 최고의 맥주를 직접 만들기 위해 6개월 전 판교에 ‘더부스 브루어리’를 열었다. 한 달 후면 더부스만의 자체 브루잉·레시피로 만든 맥주가 나온다.

    사람들이 12일 저녁 이태원 경리단길 더 부스(The Booth)에서 수제맥주와 피자를 즐기고 있다. /송병우 기자

    더부스 자체 맥주는 빌스 페일 에일, 호핑쉽, 서울크림 스타우트 등이다. 호핑쉽(Hopping sheep)은 국내 최초의 더블 IPA다. 2015년 양의 해를 기념해 부산의 갈매기 브루잉과 함께 한정판으로 만들었다. 풍선껌·시트러스·복숭아 향으로 씁쓸하고 몰티한 풍미가 난다. 이 제품은 출시 일주일 만에 다 팔렸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빌스 페일 에일은 빌(Bill)이 만든 정통 미국식 페일(Pale) 맥주다. 빌은 홈브로잉의 대가이자 ‘경리단·해방촌 맥주 축제’를 시작한 인물이다. 시트러스가 풍부한 상쾌함과 깊은 향이 강점이다.

    더부스의 자랑거리 미켈러도 있다. 미켈러는 ‘집시 브루어리’로 불리며 한해 평균 80종의 새로운 맥주를 개발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양조장이 있다. 대부분 한정판으로 만들고 실험적 제조법으로 유명하다.

    맥주 평가 전문사이트 ‘레이트 비어’는 미켈러를 올해 전 세계 3대 브루어리로 선정했다. 레이트 비어는 세계 맥주 마니아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맥주 평가 기관이다. 태국 방콕의 미켈러 바는 문을 열자마자 ‘아시아 10대 바’에 뽑혔다.

    더부스 매장 내 벽면은 다양한 그라피티(Graffiti)로 가득 차 있다. 김희윤 사장의 아이디어다. /송병우 기자

    이블 트윈도 빼놓을 수 없는 명품 수제맥주다. 이블 트윈은 미켈러의 쌍둥이 동생 제프가 연 브루어리다. 에블 트윈은 레이트 비어 7위에 올랐다. 동생 제프가 문을 연 바 ‘토스트(TØRST)’는 수년째 미국 뉴욕 바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더부스는 이 외에도 110여종의 수입 맥주를 판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국내에선 유일하게 24시간 냉장 유통 방식을 고집한다. 다품종 소량 수입을 시작한 것도 국내에선 더부스가 처음이다.

    양 사장은 “고급 수제맥주는 상온에서 홉 향이 금방 죽는 탓에 냉장 콘테이너로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며 “상온 보관하던 맥주를 냉장·냉동실로 갑자기 차게 한 후 손님에게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부스가 오는 5월 선보일 대동강 맥주의 이미지. 자체 레시피에 덴마크의 미켈러 브루어리가 양조를 돕는다. /더부스 제공

    더부스는 국내 최초로 미켈러를 유통했다. 품질 관리를 위해 극소량만 들여왔다. 업계는 더부스를 국내 수제맥주계의 진정한 스타트업으로 평가했다. 현대백화점·호텔신라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그 점을 인정하고 판매를 도왔다.

    더부스는 현대백화점(069960)본점에 미켈러·이블트윈을 독점 공급한다. 호텔신라(008770)도 서울 장충동 호텔 내 보틀라운지(바)에서 미켈러를 판매한다. 더부스가 굳이 영업을 하지 않았지만 대기업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입소문 덕이었다.
    지도의 빨간 원이 ‘더 부스(The Booth)’ 위치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입구에 있다. /네이버맵 캡처

    더부스는 5월 대동강 맥주를 내놓을 계획이다. 자체 레시피에 덴마크 미켈러 브루어리가 양조를 돕는다. 사장 3명은 다음주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미켈러와 대동강 맥주의 개발을 직접 협의·관리하기 위해서다. 양 사장은 “국민들이 정말 맛있는 우리 맥주 ‘대동강’에 흠뻑 취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눈 앞에 맥주잔이 열잔 가까이 쌓였다. 젊은 사장들의 맥주와 인생 이야기는 미켈러 풍미만큼 깊고 매력적이었다. 안주로 먹은 몬스터 피자도 일품이었다.

    다니엘 튜더는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기사로 국내 맥주업계를 뒤집어 놨다. 그가 한국 친구 2명과 곧 수제맥주 ‘대동강’을 내놓는다. 그 맛이 궁금하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더부스 브루어리. /더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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