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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혁명의 맛

  • 윤예나 기자

  • 입력 : 2015.01.31 09:19

    [북리뷰] 혁명의 맛
    가쓰미 요이치 지음|임정은 옮김|교양인|352쪽|1만6000원

    미식가의 나라 중국. 그 중에서도 매운 맛으로 유별난 두 지역이 있다. 쓰촨(四川)과 후난(湖南)이다. 쓰촨 사람이 “매운 맛은 무섭지 않아(不辣)!”라고 하자, 후난 사람이 “나는 맵지 않은 것이 무섭다!(辣不)”고 응수했다는 우스개소리가 전해질 정도다.

    중국의 매운 맛 문화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매운 요리는 즐기지 않던 베이징(北京)에도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 식당가가 생겼다. 저자가 중국 기관의 협조로 진행한 ‘베이징 맛집 베스트 10’에서도 쓰촨 요리나 맵게 만든 지방 요리 가게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상하이(上海) 등 다른 지역에서도 매운 맛이 대세다.

    그 매운 맛 뒤에 두 명의 거물 정치가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문화혁명을 이끈 후난 출신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경제를 부흥시킨 쓰촨 출신 덩샤오핑(鄧小平)이다. 원래 이 두 지역 요리도 다 맵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운 맛을 유달리 좋아했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이후 입맛이 달라졌다.

    저자의 이력부터 예사롭지 않다. 요리 평론가에 미술 감정가를 겸했다. 포르투갈 리스본,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과 미학을 가르쳤다. 파리에선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미슐랭 가이드북 제작에 참여했을 정도로 미식가다. 그는 외국인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던 1968년부터 중국을 드나들었다.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때였다.

    외국인은 국영 식당만 갈 수 있던 시절, 그는 식량 배급표를 몰래 손에 넣어 베이징 뒷골목 요리를 맛봤다. 마을 자치회 식당인 거민위원회 식당에서다. 메뉴는 소박했다. 몇 번이고 다시 데웠을 배추와 당면볶음, 멀건 국, 찐빵 하나.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혀를 도려내는 것처럼 초라하고 빈곤한 그 맛에 나는 남몰래 ‘문화혁명의 맛’이란 이름을 붙였다. 왠지 몰라도 똑같이 맛없는 음식이 전국에 퍼져 있었다.”

    책은 각양각색의 진미로 유명한 중국 요리의 진화 과정을 역사와 함께 조명한다. 미식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송나라 때부터 식문화사를 훑었다. 저자는 왕족이 바뀌고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중국 요리도 변했다고 쓴다.

    중국 요리가 꽃핀 때는 청나라 시절이었다. 한족과 만주족의 문화가 격렬히 뒤섞였다. 중국 각지 요리사들이 수도로 몰려와 조정이나 환관에게 고용됐다. 이름난 요리사들은 제각기 요리 비결을 자랑했다. 여기에 미식가로 유명했던 6대 황제 건륭제(乾隆帝)가 등장한다. 그는 만주족이면서도 한족 요리를 즐겼고, 특히 강남 요리를 편애했다. 각 민족의 진미 150가지를 한 상에 올리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1949년 이후, 화려했던 식문화는 급변한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민간에서 고급 식자재가 자취를 감춘다. 경제 부흥을 서두른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대기근이 중국을 덮쳤다. 1950~1960년대에는 경영난을 겪던 요식업계에 합병 바람이 불었다. 따로 운영하던 여러 음식점이 합병됐고, 요리 수준은 떨어졌다.

    그리고 문화혁명 시대. 저자는 1970년대 중국 거민식당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오쩌둥의 석고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 들어가려면 석고상이나 포스터를 마주보고 아침에는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을, 저녁에는 그날 하루 자신이 한 혁명적 행동을 바로 선 채 보고해야 했다. 식당에 들어가면 벽과 탁자를 커다란 국자로 탕탕 치며 위협하는 거민위원회 아주머니가 ‘마오쩌둥 어록’을 암송하라고 채근하곤 했다. 아무리 초라한 식사라 하더라도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영도자 마오쩌둥 동지 덕택이다. 또 초라한 음식을 먹을수록 부르주아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행동이기 때문에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러니 절대로 맛있는 음식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 대신 매운 요리는 급성장했다. 마오쩌둥은 고추를 매끼 먹다시피 했다. 고추는 인민공사가 자랑하는 ‘모범 작물’이었다.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마오쩌둥 사후에도 매운 맛 열풍은 잦아들지 않았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덩샤오핑이 집권한 뒤에는 한층 더 매워졌다. 저자는 자주 드나들던 ‘쓰촨반점’의 음식 맛을 통해 그때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그 뒤 마오쩌둥이 죽어도, 문화혁명이 끝나도 쓰촨반점의 매운 맛은 그대로 유지돼 바뀌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국가를 이끌게 되고 개방 정책을 내걸고서 베이징 거리가 활력을 되찾았을 때 별안간 표변해 심하게 매워졌다. 먹어보면 땀과 눈물이 솟구치고 의식이 몽롱해질 만큼 매웠다. 쓰촨반점이 확실히 쓰촨 출신인 덩샤오핑 편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 책은 극심한 혼란기였던 중국의 근현대를 ‘음식’에 초점 맞춰 생생히 살려낸다. 그저 음식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맛있다’는 수식어만 가득한 맛집 소개 책자가 아니다. 30년간 중국을 드나든 저자는 중국에 갈 때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1997년 홍콩 반환 같은 역사적 순간을 조우했다. 역사의 현장, 그리고 그 변화를 체험한 저자의 ‘혀’로 본 중국의 모습이 흥미롭게 읽힌다.

    한국어판에 특별히 추가했다는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도 재미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 고추가 도착했다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고추의 지위’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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