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점심 시간이라고 하기엔 다소 이른 오전 11시20분부터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태블릿 PC를 손에 든 학생부터 30~40대로 보이는 직장인들까지 속속 자릴 잡고 앉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준비된 50여개의 좌석이 모두 채워졌다.
20일 열린 ‘테헤란로 런치 클럽’의 모습이다. 테헤란로 런치 클럽은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진행하는 모임으로,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벤처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자리다. 이날은 쿠팡, 배달의민족, 잡플래닛 등에 투자한 김한준(한킴·Han Kim) 알토스벤처스 대표와 박희은 수석 심사역이 세션을 진행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의 소개로 등장한 김 대표는 “스타트업도 네이버, 다음카카오와 경쟁해 이길 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나 카카오가 스타트업과 경쟁하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한 조직과 달리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대신 잘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를 통해)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부딪혀 경쟁해도 이길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업체들은 카카오와의 경쟁 상황에 놓여 있다.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인 비바리퍼블리카는 카카오의 뱅크월렛, 리모택시는 카카오 택시와 경쟁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선호하는 창업가 유형에 대해서 김 대표는 “사업 설명을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야라도 1년~4년 동안 깊게 파고드는 사람들 선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설립자(파운더)들이 되도록 오래 회사를 경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 시스코(Cisco)의 사례를 선호한다는 것.
한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전망에 대해선 긍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무조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년 한국 이커머스 시장 규모가 40조~50조원 정도로 작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이커머스 규모가 130조~150조원 수준이고, 인도 이커머스 시장을 보면 5년 후에 예상 규모가 20조원에 그친다”며 “정확한 숫자를 보고 들어가면 의외로 큰 시장이 많다”고 했다.
김 대표는 투자하면서 속이 쓰렸던 경험도 공유했다. 미국에서 투자한 회사들 중 기업가치가 1조원까지 갔다가 투자 회수(캐시아웃)를 못하고 망한 사례가 있는데, “아예 생각을 안하려고 한다”고 하자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 대표는 이어 “투자를 안해서 속이 쓰렸던 사례는 카카오였다”며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몇 번의 기회를 줬음에도 여러 이유로 안해서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 출자자(LP) 중 카카오, 네이버도 있다”며 “LP가 출자한 돈으로 LP와 경쟁하는 셈인데, 경쟁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네이버나 카카오에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후속 펀드를 만들어 1년에 6~8개 정도의 한국 스타트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