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경상북도와 공동으로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 구미에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었다. 두 기관은 창조적인 중소기업 육성 사업 일환으로 '스마트 기기 액세서리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16일 수상작을 발표했다. 하지만 주요 수상작은 이미 다른 공모전에서 장관상까지 받은 재탕 아이디어이거나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을 일부 개선한 것도 있었다. 이 때문에 '창조경제'에 동참한다는 홍보에만 급급한 주먹구구식 전시 행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우수작 10개 팀을 선발해 총 30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수여하고, 아이디어 상품화를 위해 팀당 5000만원의 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했다. 제품이 완성되면 삼성전자가 세계 유수 전시회에 선보이고, 온·오프라인 판로(販路)까지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대상은 '8컵스(Cups)'란 스마트 물병을 제안한 벤처기업 '젤리코스터'에 돌아갔다. 물병에 수위(水位)를 측정하는 센서를 달아, 이용자가 마신 물의 양과 빈도를 스마트폰을 통해 알려주는 제품이다. 제품명은 하루 8잔의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여준다는 뜻. 젤리코스터는 대상 상금 1000만원과 상품화 지원금 5000만원 등 총 60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미 작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의 '사물인터넷(IoT)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젤리부스터'란 유사한 팀명으로 똑같은 스마트 물병 아이디어를 냈었다. 당시 정부로부터 450만원의 개발 지원금과 특허·디자인·창업 전문 교육까지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작년 11월 정부가 주관한 '사물인터넷 경진대회'에 출품했고, 미래부 장관상과 상금 500만원도 추가로 받았다.

그런 회사가 수개월 만에 또 삼성전자와 경상북도의 아이디어 공모전에 똑같은 아이디어를 제출해 6000만원을 타낸 것이다. 젤리코스터 주정인 대표는 "작년에 장관상을 받은 것과 같은 아이디어이지만 아직 상품화는 하지 못했고, 삼성전자가 주는 혜택이 커서 다시 지원했다"며 "참가 규정에도 다른 공모전 수상작을 제한한다는 조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프트웨어(SW)와 달리 하드웨어(HW)는 사업화 예산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복 수상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스마트 물병이란 아이디어는 작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벤처기업이 '베슬(vessyl)'이란 이름으로 먼저 선보였다. 물을 마신 양뿐 아니라 병에 담긴 음료 종류까지 감지해낼 수 있는 기술의 제품으로, 작년 6월 국내외 언론에 다수 소개된 바 있다.

다른 수상작 역시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유사한 상품이 수두룩하게 나올 정도다. 우수상을 받은 '휴대용 스마트폰 살균기'는 이미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3만원 안팎에 팔리는 제품이다. 삼성전자 측은 "기존 살균기는 인체에 유해한 단(短)파장을 쓰는데 이 제품은 인체에 무해한 장(長)파장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 참가 팀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작인 사물인터넷 기반 교육용 블록 완구도, 작년 미래부의 지원사업에 선정됐던 아이디어와 유사한 개념이다.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벤처기업도 많다.

공모전 심사에는 대학교수 3명과 삼성전자의 임원 3명이 참가했다. 삼성전자 측은 "수상작은 혁신성과 논리성, 실현 가능성을 기준으로 심사했고 상품화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타 공모전 수상 여부와는 관계없이 진행했다"고 밝혔다.

벤처업계에서는 '왜 기업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가 무조건 창업만 강조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현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갑자기 창업 관련 '눈먼 돈'이 넘쳐나자 이를 목표로 하는 '상금 및 지원금 사냥 벤처'도 적지 않다. 또 취업 이력서에 한 줄을 써넣기 위한 '스펙용 창업'까지 판치고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창조경제 활성화를 외치면서 돈만 자꾸 쏟아붓는데, 스스로 도전할 생각은 안 하고 남의 것을 베끼는 모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무슨 창조가 있고, 혁신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조덕희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이제 화려한 이름의 정책과 추가 자금 지원보다는 질(質) 위주 벤처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