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정은(24)씨는 얼마 전 일본의 '러쉬(영국의 목욕용품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스크 팩 3개를 주문했다. 여성들 사이에서 '슈렉 팩'이라 불리며 인기를 끄는 '매그나민티' 팩 250g짜리를 그는 한 통에 980엔에 샀다. 현재 엔화 환율을 적용하면 8900원 정도인 이 팩을 한국에서 2만700원에 판다. 미국의 러쉬 사이트 가격은 용량이 약간 큰 315g짜리가 24.95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2만7000원이다. 김씨는 "영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비교했는데 엔화 값이 워낙 떨어져 배송료(약 1만7000원)를 고려하더라도 일본이 압도적으로 싸더라. 당분간 웬만한 화장품은 일본에서 직구(직접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 직원인 유철민(45)씨는 요즘 인기 장난감인 티라노킹을 일본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공수해 아들에게 선물했다. 티라노킹 가격 1만6000엔에 배송료로 3000엔이 들어 원화로는 약 17만3000원을 썼다.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선 같은 제품을 약 19만원에 판다. 유씨는 "한국서 제품을 구하기가 힘들어 일본 직구에 도전했는데 엔화 값이 떨어진 덕분에 가격까지 싸서 매우 흡족했다. 일본어는 전혀 못하지만 크롬(구글의 웹브라우저)의 번역 기능을 썼더니 일본어 쇼핑도 어렵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아베노믹스가 불붙인 '일본 직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경기 확장 정책의 일환으로 엔화를 풀어 엔화 가치가 꾸준히 떨어지면서 일본 직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달러 값 상승으로 미국 직구의 증가세가 주춤하는 사이 한국보다 물품이 다양하고 값도 저렴한 일본 온라인 쇼핑몰로 직구족들이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2월 100엔당 1070원 수준이었다가 계속 내려가, 24일엔 911원을 기록했다. 똑같은 1만엔짜리를 사더라도 가격이 10만7000에서 9만1100원으로 15%가량 싸졌다는 뜻이다. 신한카드 박창훈 빅데이터 마케팅팀장은 "일본 직구의 강점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배송 기간이 짧은 편이고, 패션 상품은 일본인의 체형이 한국인과 비슷해 무난하게 어울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지난 11월 신한카드를 사용해 일본 직구를 한 사람은 5323명으로 2012년 1월(1122명)보다 374% 늘었다. 일본을 뺀 다른 지역 전체의 증가율 250%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같은 기간 직구 금액 증가율(원화 기준) 역시 일본이 284%로 나머지 지역(267%)보다 높았다.
◇일본 직구족, 여성보다 남성이 다수
미국 직구족들이 건강식품, 패션과 관련한 상품을 집중적으로 사는 것과 달리 일본 직구족들은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스포츠용품 등 마니아성 제품을 비교적 많이 구입했다. 신한카드가 일본 직구족들이 선호하는 쇼핑몰을 분석했더니 1위는 종합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재팬', 2위는 통신·가전제품 회사 '애플'의 일본 사이트, 3위는 피규어 등 캐릭터용품 전문 쇼핑몰 '아미아미', 4위는 CD·DVD 등과 음향 제품을 주로 파는 '로손 HMV'였다. 애플은 세금과 배송료 등을 비교하면 한국과 제품 가격 차이가 크지 않지만, 아이폰6·아이패드에어2 등 올해 나온 신제품이 한국보다 일본에 2개월 정도 앞서 출시돼 애플 마니아들이 유난히 많이 몰렸다. 또 전자 기기, 가전제품, 골프용품 등 남성들이 선호하는 제품이 많이 팔리면서 남성이 일본 직구족의 57%를 차지했다. 미국 직구족은 55% 이상이 여성이었다.
한국어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늘고 있는 등 일본 직구를 하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긴 하지만, 몇 가지 주의할 점도 있다. 일본 사이트의 경우 애플 재팬같이 세전(稅前) 가격을 표시한 곳이 종종 있어 세금을 더하더라도 한국보다 물건이 싼지를 꼼꼼히 계산해봐야 한다. 아울러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200달러까지 관세가 면세되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15만원을 넘으면 관세를 내야 한다.
신한카드 박창훈 팀장은 "아직은 미국보다 해외 직구 규모가 작은 일본은 배송 대행업체가 많지 않아 배송비가 비쌀 수 있고 무게가 아닌 부피 기준의 요금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배송비까지 포함해 한국이나 미국보다 가격이 저렴한지 꼼꼼히 따져본 후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