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Weekly BIZ] 만약 대한항공에 '레드 팀'이 있었다면…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 입력 : 2014.12.20 03:03

    위기관리 전문가가 본 '땅콩회항' 사태
    위기 상황 속 直言… 현실에선 쉽지 않아
    외부시각 전달하고 쓴소리가 주임무인… 전담조직 마련해야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이번 '땅콩 회항' 사태는 직언(直言)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양호 회장이 "'노(No)'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은 위기 상황에서 직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제대로 된 위기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위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이에 맞는 전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직언이란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드-인(outside-in)의 시각을 상층부에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너나 회사의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여론·정부 등 외부의 입장에서 이슈를 바라보고 전달하는 것이다.

    큰 실수나 잘못이 일어나도 회사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일과성 해프닝'이라고 축소 해석하고, 사과문 하나 발표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외부의 시각에서 보면 훨씬 큰 문제인 경우가 많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다니엘 디어마이어 노스웨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이번 땅콩 회항 같은 사건은 대중의 관심도(재벌가 오너)와 사회적 중요도(갑을 관계와 항공 안전)가 모두 높기 때문에 최고 수준 위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대중의 인식 속에서 기업은 기본적으로 악당의 역할에 놓이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자(승무원과 사무장)를 뚜렷이 규명해서 보호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그런 최고 수준 위기라면 오너나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게 더 큰 후폭풍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대한항공 조양호(왼쪽) 회장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조현아(오른쪽) 전 부사장은 17일 검찰 조사에 앞서 사죄했다.
    대한항공 조양호(왼쪽) 회장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조현아(오른쪽) 전 부사장은 17일 검찰 조사에 앞서 사죄했다. / 조선일보 DB
    문제는 기업 내부에서 오너나 최고경영자에게 사과하라고 직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직언은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험하다. 생사 여탈권을 쥔 보스에게 자칫 잘못 받아들여졌다간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는 가해자인 부사장을 보호하는 데 급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직언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관리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결국 시스템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방송사 내부를 다룬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는 레드팀(Red Team)이란 조직이 나온다. 뉴스룸 안에 존재하는 특별팀인데 이들은 취재팀이 만든 뉴스의 타당성, 사실 여부 등에 대해 공격을 하고, 취재팀은 이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뉴스를 철저히 검증한다. 군대나 기업에서 모의 경쟁팀을 만들어 싸우는 '워게임(War Game)'과 비슷하다. 레드팀은 임무 자체가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편하게 직언할 수 있다. 어떤 조직이든 정기적으로 레드팀 활동을 가동해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에 대해 직언할 수 있게 만들면 더 좋다.

    이번 대한항공의 경우에 적용해 보면, 위기 대응 회의를 열고 참석자들에게 사무장과 승무원, 임직원, 언론, 정부, 시민단체, SNS 사용자 역할을 맡긴 뒤 그들 입장에서 조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어떻게 바라볼 건지 이야기하게 하고, 더 나아가 공격하도록 주문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회의 방식을 '테러리스트 게임'이라고도 부르는데, 만약 대한항공이 첫 사과문이 나가기 전에 테러리스트 게임이나 레드팀 활동을 진행했다면 지금처럼 우왕좌왕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간 컨설팅 경험에 비추어 보면 레드팀 구성은 임원 위주보다는 젊은 직원과 섞어서 구성하는 게 효과적이다.

    신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제품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 즉 소비자, 언론, SNS 사용자, 정부의 입장을 잘 아는 내부 직원들로 레드팀을 만드는 것이 좋다. 이들에게 새로 출시될 제품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기게 되면, 출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의 상당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위기관리 컨설팅을 할 때 종종 고객사 CEO에게 "저희는 오늘 대표님과 이 회사를 공격하는 언론의 입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컨설턴트가 의도적으로 반대편의 입장을 취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일종의 레드팀 활동이다.

    조직 내부에는 효과적인 위기 예측과 위기관리를 힘들게 만드는 '질병'이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토론이나 반대가 자취를 감추는 '그룹사고(Group Think)'가 그 하나이다. 또 무심코 늘 하던 방식대로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면 누구도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을 뜻하는 '애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도 있다. 이러한 질병은 견제와 균형, 수평적 협력, 활발한 소통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 이번 대한항공 사태는 '위기관리의 위기'라는 게 어떤 건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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