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산이 내겐 새로운 시작이었다"

입력 2014.12.20 08:00

신간 '파산'을 낸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신성헌 기자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동권에 뛰어들었다. 부당한 권력 앞에 분노했고, 그때는 딴 길이 안 보였다. 거리로 나선 친구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공안사범으로 투옥돼 28개월 청춘을 감방에서 보냈다. 출소 후에는 혁명가 대신 기업가의 꿈을 꿨다. IT회사를 창업했다. ‘아리수미디어’. 1990년~2000년대 이름을 날린 교육용소프트웨어(SW) 회사다. 한때 잘 나갔다. IT업계는 물론 교육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었다. 직원 120명의 탄탄한 기업이었다. 매출 100억원대를 기록했다. 정보통신부장관상도 두 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쫄딱 망했다. 창업 12년 만이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근이었다. 50억원 연대보증 채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파산에 이어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게 7년을 살았다. 지금은 어떠냐고? 보시다시피,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이건범(50) 전 아리수미디어 대표, 아니 지금은 출판기획 및 저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그의 약력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그가 최근에 출간한 책 '파산'(피어나)은 그간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담으로 짙게 얼룩져있다. 그 중에서도 실패를 말한 대목이 더 적나라하다.

순탄하게 잘 나가던 회사가 왜 망했는지, 어쩌다 2000년대 초 '벤처 광풍'에 휩쓸리게 됐는지, 7년간 신용불량자 생활은 어땠는지 일지처럼 써 내려갔다. 낙오한 상처투성이 기업인의 고해성사 같다. 하지만 사업 실패의 족적을 기록한 문장 행간에는 ‘그래도 내 인생은 파산하지 않았다’는, ‘오히려 새로운 무엇을 찾았다’는 어떤 확신이 뿜어져 나온다.

그가 책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기획과 공동 집필을 맡은 책 '좌우파 사전'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로 있는 그를 찾아가 ‘성공’과 ‘실패’ 그리고 ‘새로운 확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7일 오후 마포구 도화동 한글문화연대 사무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저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라는 글귀가 또렷했다. 다가와 악수를 청할 때까지만 해도 ‘장애’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물의 형체 정도는 어렴풋이 알아본다고 했다. 그런 지경에 어떻게 책까지 써낼 수 있었나, 몹시 궁금했다.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 어떤 책인지 간략히 소개해 달라.

경영 수필이다. 기존 경영서들은 대부분 이론과 성공담 중심이다. 나는 내가 경영을 하면서 실패한 경험을 수필 형식으로 썼다. 2006년 초,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한때 직원 수가 120명, 연매출이 100억원대였다. 그런 회사가 파산했다. 파산을 코앞에 둔 사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또 기업 경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일종의 간접 경험이다. 회사를 처음 시작해서 잘 나가다 파산이 정점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다 적었다. 이런 풍파는 누구든 겪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대처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민주화가 되고,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화가 되면서 외환위기라는 큰 위기를 겪었다. 그 25년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좇아가며 변했는가도 다뤘다. 내 경험에 비춰봤다.

나는 경영을 고민할 때는 그 시대의 정치적 환경, 사람들의 가치 변화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사회적 운'이 굉장히 중요하다. 많은 경우에 성공은 운과 이어져 있다. 우리는 성공담에서 대개 이런 사회적, 역사적 운은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고, 기업과 인간의 승리만 비춘다. 지금 우리는 '싸이월드가 언제 있었나' 생각한다. 몇 년 전에 그 난리를 쳤는데. IT기술도 그렇고 모든 것에는 시대적 흐름이 있다. 사회, 기술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회적 운이 오기도 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가치도 변한다. 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면을 도외시하면 안된다.

/이인행 인턴기자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가 벤처 기업가로 변신했다. 운동권엔 왜 투신했고, 그뒤 생각은 왜 바뀌었나?

학생운동은 당시 사회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광주사태를 대학 입학 후 알게 됐다.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때 전두환 정권에 대해 알게 됐다. 1학년 때 학교를 가는데 사복경찰들이 늘 따라다녔다.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감시했다. 학생들이 몇 명만 있어도 감시했다. 심지어 모여서 우유팩 차기를 해도 해산시켰다. 헌법이나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다. 학생운동을 안 하려고 도망도 쳤다. 하지만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안 되더라.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혔다. 2년4개월간 감옥에 있었다. 출소 후에는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기본 장치는 마련된 것 같고, 이제 문화적인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화 차원에서 사회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 형태로 해보고 싶었다. 그 후 사업에 전념했다.

-아리수미디어는 한때 업계에서도 유명했다. 성공 비결이 뭐였나? 추락한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90년대 중반은 디지털콘텐츠가 새로 등장했을 때다. 사회 전반적으로 관심이 증폭했다. 그런 걸 발견하고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서 운이 좋았다. 이른바 ‘사회적 운’이 작용했다. 그런 시점에 사업을 시작했던 덕을 봤다.

당시 우리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헌신도가 남달랐다. 그때 같이 일했던 한 친구가 얼마 전에 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사업 시작 안하냐"고 했다. 다시 같이 하자는 얘기다. 아리수미디어에는 블랙홀 같은 인간관계의 힘이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온라인 신사업을 준비하면서 시류에 편승해 외부 투자를 유치한 게 화근이 됐다. 욕심을 부렸던 거다. 우리가 하던 교육 프로그램 사업은 고속인터넷이 기반이 돼야 했다. 망한 까닭은 간단하다. 시장을 잘못 판단했고, 기술력이 부족했고, 체력 이상으로 조직을 비대하게 키운 탓이다. 사장이었던 나의 우유부단함이나 통찰력 부족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얻은 게 뭔가?

자아와 개성을 발견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그랬고, 기업을 하면서도 늘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지금은 방해받지 않고 내 개인을 찾아갈 수 있다. 자유를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자유 대로 활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게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배경이다. 파산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돈을 좇아가면 안된다. 돈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돈을 좇으려다 망했다. 그 전에 돈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정말 돈이 따라왔다. 돈을 좇으려고 아등바등, 덤벙덤벙 그러다가 중심을 잃었다. 그렇다고 돈 벌 생각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한다. 하지만 껄끄러운 일인데도 '이걸 놓치면 아쉬울 것 같다' 하는 생각에서 하면 결과는 영락없이 안 좋다. 본인들이 알 것이다. 내 가치관과 어긋나는 것 같으면 과감히 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 규모와 유통 자금의 액수가 커지기 시작하면 그때 또 다른 관점을 잡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창업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게 에너지다. 그것이 돈을 따라오게 만드는 마음가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신나는 일을 해야 한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사람의 신명나는 흐름이 끊기는 순간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 점을 주의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수준이 되면 돈을 좇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 기준은 뭔가?

시기는 자신이 판단해야 한다. 중견 기업 정도면 여러가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규모가 커지면 회사에 도는 돈의 규모도 커진다. 이윤도 커지고. 사장이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조직의 힘, 돈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가령, 어떤 중견 기업의 핵심 품목이 시대 수명이 다해서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치자. 축적된 자금과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순식간에 나올 수 있다면 누구나 할 것이다. 어떤 때는 은행이나 신용기관, 증권 또는 주식 시장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러다 보면 경영의 기법도 생기기 시작한다.

-사업 실패 이야기를 담았지만, 행간에는 인생에는 패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돈을 많이 번 사람, 훌륭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보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된다. 성공과 실패. 우리는 항상 그런 기준 앞에 서 있다. 학생 시절 수능시험, 사회에 나와서는 취업, 승진, 연봉 같은 잣대가 성공과 실패를 규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준이 다양하면 좋겠다. 돈이나 지위만으로 성공을 평가하는 것은 밋밋하다. 나만의 기준으로 성공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과 얼마나 훌륭한 관계를 맺고 있고, 존경을 받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골고루 공존하면 좋겠다.

파레토의 법칙을 들겠다.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갖는다'는 논리를 기업에 응용할 수 있다. (유능한) 20%의 직원이 나머지 직원 80%를 먹여 살린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것이 어디 있나. 실력 좋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유능한 직원 20%가 중요하다는 얘기로 끝내면 안된다. 나머지 직원 80%가 20%와 얼마나 큰 격차 없이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1994~2006년 회사를 경영할 때도 책임을 강조했다. 미생에도 나오더라. "사회 생활에서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도 끝까지 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산해서 회사를 정리할 때도 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피해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히 부도난 사장들이 일반적으로 꼽는 순서와는 정반대로 채무를 처리했다. 맨먼저, 밀린 물품과 용역 대금을 갚았고, 체불 임금을 지급했다. 마지막으로 금융권 채무를 갚았다.

이건범 대표는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글자를 본다. 주먹만한 글자만 겨우 본다. 집필 과정에는 글의 내용을 소리로 바꾸는 음성합성 시스템을 이용한다. 글을 우선 쓰고, 워드문서의 글자 찾기 기능으로 오타를 확인한다. /신성헌 기자
-‘사회적 운’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특히 역사서. 소설도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 흐름의 감을 읽을 수 있다. 외국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기 세계가 단단하게 형성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책을 보면서 자아의 성숙, 개성을 스스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반면 국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런 점이) 약하다. 다만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수감 기간 중에 책을 많이 봤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로맹 롤랑의 '매혹된 영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책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의 작품을 주로 봤다.

국내소설도 많이 봤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조정래의 '태백산맥' 외에도 황석영, 박완서의 책을 많이 봤다. 박완서 작품의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굉장히 따뜻하다. 엄청나게 큰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작은 데서 큰 깨달음을 발견하는 힘이 있다. 실제로 경영하면서도 도움이 됐다.

-학생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정작 기업주가 돼서는 사내 노조 설립에 반대했다고 썼다.

노조가 내가 생각했던 새로운 기업 모델을 추진하는 동력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봤다. 나는 모든 직원이 회사 경영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했다. 자기 의사를 밝히고, 회사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노조 설립을 추진했던 직원들의 생각은 전통적인 노사 관계에 기초한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노조가 경영을 책임질 생각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이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노조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도 수긍했다. 대화로 좋게 해결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노조를 왜 만들려고 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경영이 투명하지 않거나, 노동을 보호하지 않고, 회사 경영 방침이 양극화를 달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조를 통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엔 노조를 불허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직원들은 나를 굉장히 믿고 따랐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랬다. 나는 상급자들이 임금을 터무니없이 많이 받게 하지 않았다. 하급자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복지는 확장시켰다. 단체 상해보험도 들고, 독서, 탁구 같은 활동비도 지원했다. 우리 회사는 주5일제를 2000년 4월에 도입했다. 국회가 주5일제를 통과시킨 게 2003년이고, 2004년 시행된 걸 감안하면 굉장히 빨랐다.

경영자가 되었다고 노조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 독재 권력을 엎어버리기 위해서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노조보다는 협동조합과 같은 새로운 기업 조직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Mondragon),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협동조합을 성공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기업으로서 경쟁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

-지금 삼성 같은 대기업도 노조를 불허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삼성 같은 대기업의 노조 불허 방침은 인류의 큰 흐름에 반(反)하는 것이다. 구태(舊態)다. 아리수미디어와 삼성의 노조 불허 방침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만들려고 했던 기업의 모습은 현재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형태와 달랐다. 내가 생각한 기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조 결성과 다른 방식으로 훨씬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산자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근로자들의 기업 소유 형태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노조를 불온시하는 삼성의 태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팟캐스트 '이건범의 그러니까 말이야'를 녹음하는 장면 /이건범 대표 제공
-고비 때마다 글을 썼다. 왜 그랬나? 어떤 도움이 되었나?

사업을 하던 12년 동안 조직 문제나 정책 등에 관한 글을 자주 썼다. '나의 가치가 변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좋은 기업가가 될 것인가' '다른 회사와는 어떻게 다른 회사가 될 것인가' 같은 것들을 고민할 때마다 썼다. 발표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직원들과 돌려 보기도 했다. 2001년 여름에는 그때까지 썼던 글을 모아 비매품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제목이 '나는 기억하기 위해 쓴다'였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굉장히 좋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겠지만, 일상에 묻힐 수도 있다. 뭔가 머릿속에서 막 터져나올 때 생각과 삶의 방향을 정리하는데 좋다. 나중에 읽어보면 당시 감성이 느껴진다.

-경영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사업에 재기했다면 더 설득력 있었을 텐데, 이제 기업은 접고 출판 쪽으로 돌아선 것 같다.

지금은 책 쓰고 글 쓰는 일이 너무 좋다. 앞으로는 소설 쪽으로 공부를 더 해서 써보고 싶다.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만한 동화를 구상하고 있다. 곧 써보고 싶다. 머릿속에만 있다. 얘기를 좀 해봤는데 사람들이 재미있겠다고 하더라. 쓰레기, 분리 수거에 관한 얘기다. 아빠와 아이들이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써보고 싶다.

-1급 장애인인데 일상에 불편은 없나? 눈이 불편해진 경위는 책에 자세히 안 나온다.

의학적으로는 망막 색소변성증 시각장애다. 밝은 데서 특히 잘 안 보인다. 환한 대낮에는 거의 못 본다. 밖에 나가면 혼자 다니기가 어렵다. 계단, 돌부리를 못 보고, 전봇대에 부딪치기도 한다. 지금은 지팡이가 없으면 처음 가는 곳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명암이 교차하는 곳이나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밝은 데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을 때 심하게 안 보인다. 그럴 때는 한동안 서서 익숙해져야 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그나마 잘 보인다. 사무실의 내 자리는 일부러 어둡게 해놨다. 그나마 그런 데서 사람이나 사물을 식별하기 편하다. 날씨가 정말 좋은 날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가족력은 아닌 것 같다. 부모님은 눈이 좋았다. 망막 색소변성증에는 두 종류가 있다. 대부분은 바깥쪽부터 깜깜해져서 야맹증이 생기고 시야가 좁아지다가 가운데까지 까맣게 돼 아무 것도 안보인다. 대부분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가운데 시야가 정말 좁아도 시력 자체는 1.0인 경우도 있다. 야맹증도 심해진다.

나는 반대로 낮에 안 보인다. 중심부터 안 보인다. 빛 번짐 때문이다. 카메라 렌즈 같은 것에 빗물이 묻어서 퍼지는 것처럼 보인다. 밝은 빛을 앞에서 쏘고 빛이 퍼지는 식이다.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하면, 그때부터 환하게 빛이 퍼져서 부처님 같아진다. 가까이 있으면 더 안 보인다. 오히려 측면은 주변 시력으로 조금씩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려면 피곤하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학생 때도 고도 근시 증세가 있었다. 고도 근시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교정시력 0.5~0.6이었다. 사업 시작할 때는 교정시력 0.1이 안 됐다. 점점 더 나빠졌다.

책은 1999년부터 읽을 수가 없었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디지털로 된 텍스트 파일만 음성 합성으로 바꿔 듣는 식이다. 인터넷 서핑이나 이런 것은 못한다. 페이스북도 내 담벼락 글 정도만 긁어서 음성합성 시스템으로 변환해 듣는다.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워,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게 가장 힘들다. 서로 인사를 할 때 누군지도 모르겠고 명찰도 안보여서 헷갈린다. 음색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런 자리는 힘들고 가기 싫다. 나 혼자 말하는 강연 같은 자리는 큰 상관이 없지만.

-글쓰기는 어떻게 하나?

모니터 화면의 글자를 주먹만 하게 키우면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키우면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우선 쓰고, 워드문서의 글자 찾기 기능으로 오타를 확인한다. 음성변화 시스템으로 소리도 들으면서 작업한다.

정보가 필요한 글은 쓰기 어렵다. 그런 글은 잘 안 쓰려고 한다. 정보를 찾아야 할 경우에는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아마 이러이러한 글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찾아달라고 한 후 들어보고 그 중에서 취사선택한다. 책은 텍스트 파일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녹음을 부탁해 듣는 경우도 있다. 강의나 세미나를 많이 다닌다. 공부하러 간다. 얘기를 들으면서 요즘 흐름이 이런 것이구나, 저런 시각으로 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생각해 본다.

이건범 대표가 지난해 2월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강연을 하는 모습 /이건범 대표 제공
-예전에 '좌우파 사전'을 낸 적이 있다. ‘좌우’ 기준이 뭐였나? 지금도 이분법이 유효한가?

그때도 썼지만,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쪽이 언제든지 좌를 차지했다. 반면에 평등보다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격차가 확대돼도 좋다고 하는 쪽이 우파의 성격을 띈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것 같다.

다만 우리사회는 그 속에서도 분단돼 북한과 적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정치적 노선을 가른다. 그걸 기준으로 좌우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 전체로 본다면 아마 여전히 공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좌파에 가깝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우파로 구별되는 것 같다. 스스로 좌, 우파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개인들은 굉장히 혼재된 개념을 갖고 있다. 집에서는 아주 우파인데 밖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있고, 밖에서는 굉장한 우파인데 집안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평등주의자인 사람도 있다. 한 개인은 혼돈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중간층이 상당히 많다. 정치적인 중간층. 중도라기보다는 중간층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정치적 중간층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그만큼 신뢰할 만한 정치 세력이 없다는 얘기다. 안타깝다.

좌우파 이분법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다 그런식으로 구분을 하는 것 같다. 다만 그 책의 목표는 세상을 외눈박이로 보지 말자, 한눈만 갖고 세상을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런 좌우파 구분은 불완전하다. 한 사람을 놓고서 이 사람이 좌파일까, 우파일까를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좌우파 구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의회에서 의장석 오른쪽에 보수적인 지롱드파 의원이 앉고, 왼쪽에 급진적인 자코뱅파 의원이 앉은 것이 기원이다. 만약 지롱드 쪽의 맨 오른쪽 끝에 앉아있는 사람의 옆사람은 좌파라고 할까 우파라고 할까? 굉장히 웃기는 얘기다.

좌우파 사전은 큰 틀에서 얘기를 한 것이고, 그런 구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의제들을 보자는 것이 중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두 가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다 보려고 노력하자, 그래야 생산적인 해답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 당시 기획 의도였다. 그래서 좌우파 구분이 아직 유효하냐 아니냐는 나로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실패학이 실리콘밸리에서도 유행이다.

일본만 해도 실패에 관한 책이 팔린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혀 안 팔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책을 쓸 때도 많은 사람들이 누가 사겠느냐는 얘기를 많이 했다. 다행히 읽은 사람들은 평가가 좋다.

내가 먼저 출판사에 의뢰했고 흔쾌히 수락했다. 어떤 책인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글의 스타일을 보면 수필인데, 소재는 경영이고, 주제로 보면 사회과학 쪽일 수도 있다. 복잡한 구성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글쓰기를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해주면 좋겠다.

-현재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뭘 하나?

한글문화연대가 주로 해온 게 ‘공공언어 쉽게 쓰기’ 운동이다. 정부 공문서, 정치인들의 정책 관련 용어를 쉽게 쓰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적어도 국가 공무원들과 공인들은 잘 지켜야 한다. 정책이나 제도에서 쓰이는 언어는 큰 영향을 끼치고 오래 간다. 장애인, 수급 대상자 이런 분들이 어려운 말을 가장 힘들어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분들을 상대하는 복지 용어는 굉장히 어렵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공무원들이 마케팅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정확한 말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치장하려 하면 안 된다. 쉽게 이해가 되도록 써야 한다. 우리는 매년 석달치 정도의 정부 중앙부처 보도자료를 분석한다. 한달에 1000건씩 매년 약 3000건이다. 국어 기본법에 따르면, 공문서에 로마자나 한자를 직접 노출하면 안되고 괄호 속에 보조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한글로 표기를 해지만 외국어를 그냥 가져다 사용한 경우도 많다. 우리말이 설 자리가 자꾸 줄어든다. 안타깝다.

한글문화연대는 2000년 2월 설립됐다. 내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고 당시 김영명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창립대표로 7년간 일했다. 나는 창립한 해 11월부터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방송인 정재환씨의 권유로 시작했다. 대표는 2012년부터 했다. 그간 정책위원으로 전체 총괄하는 실무적인 일을 했다.

-앞으로 꿈이 뭔가?

소설을 쓰고 싶다. 멋진 소설가가 되는 것은 다음 얘기고, 일단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가라는 이름까지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감옥에서 소설을 많이 읽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보면 사람의 내면 세계, 세상이 돌아가는 생리를 알 수 있다.

그 후 시나리오도 쓰고 싶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작년에 한글문화연대에서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물을 만든 적이 있다. 사물 존대를 남발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어서 만들었다. 2분 30초 정도 된다. 대본부터 연출, 영상 편집, 배경음악, 자막까지 내가 다 했다. 듣는 데는 문제가 없어서 옆에서 누가 어떤 화면인지 얘기해주면 나는 지시를 하는 식으로 제작했다. 반응이 좋았다. 유튜브에서 약 6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인행 인턴기자
-‘내 인생의 책’을 한 권 꼽는다면?

인생의 책은 '적과 흑' '전쟁과 평화' 둘 중 하나다. ‘전쟁과 평화’는 어릴 때 도대체 뭔지도 모르고 읽었다. 제대로 된 번역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20대 후반에 다시 읽어보니 '사람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시기, 질투, 허영, 갈등, 그러면서도 자기의 고유한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이런 것인가, 늘 사람들과 같이 살아오면서도 그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했던 것 같다. 오히려 소설 안에서 생동감이 더 느껴지더라. 일상 생활에서는 그런 부분이 잘 안보였다. 소설의 매력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면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고민을 제대로 하게 됐다.

-올해 좋게 읽은 책이나 연말 추천할 만한 책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좋았던 것은 누가 녹음을 해준 것인데 이탈리아 정치학자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라는 책이다. 아주 짧아서 녹음이 가능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에 정치체제, 정치사상으로서의 공화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공화주의는 마키아밸리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쭉 내려왔다. 비롤리는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 작은 도시공화국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 속에서 어떻게 공화주의가 꽃 피웠고, 마키아밸리는 무슨 얘기를 했고, 그것이 현대 공화주의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계승되고 있는지 이런 얘기를 해준다. 자유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다를 수가 있구나, 세계 정치학자들이 바라보는 정치 사조들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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