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개에 달하는 정부 기금은 올해 운용 규모만 515조원대에 달하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종 사업에 쏟아붓는 돈이 94조원대, 굴리는 여유 자금이 178조원대에 이르지만 이런 막대한 돈의 흐름을 감시하는 컨트롤 타워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국민체육진흥기금을 문화체육관광부가 감독하는 식으로 각 부처가 산하 기금의 운용 상황을 관리하고 있을 뿐 전체를 아우르는 감시망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사후적으로 각 기금의 운용 결과를 취합해 외부 전문가들에게 평가를 맡기고 있는데, 이 업무를 사무관 한 명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기재부뿐 아니라 각 부처도 기금 담당자가 한 명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2003년부터 3년가량 기획예산처에 기금관리국(局)을 두고 수십명이 점검했던 것에 비하면 감시가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정부 내부에서도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 사례와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지더라도 금융 감독 당국이나 각 기금에서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각 기금이 금융회사별로 얼마씩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전직 고위 경제 관료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걸 핑계 삼아 골치 아픈 기금 운용 업무를 전부 정부 밖에 내보낸 다음, 문제가 발생하면 공무원들이 호통만 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다. 올해 9월 국무조정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이 조사한 결과, 가짜 임차인을 내세워 허위 전세 계약서를 만든 뒤 주택금융공사의 무주택 서민용 전세 대출금을 받아 빼돌린 의혹이 있는 사람이 343명에 달했다. 이들이 빼돌린 액수는 247억원에 달했다. 이런 사기 행각은 결국 서민용 전세 대출 사업을 벌인 국민주택기금을 빼먹은 것이고, 그에 따라 펑크 난 돈을 메워야 하는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2011년에는 문화예술진흥기금 700억원과 관광진흥개발기금 260억원을 사업성이 불투명한 민자 역사 개발 등에 투자해주는 대가로 수억원대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문화예술진흥기금은 민자 역사 개발 사업에 150억원을 투자했다가 117억원 손실을 입었다.

김원식 한국재정학회 회장(건국대 교수)은 "모든 기금의 사업 성격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서 엄밀한 감시가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기금을 정리하고 정부가 맡을 필요가 있다"며 "기금이 정부 밖에서만 운용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