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얼리 스테이지) 투자는 객관화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기업마다 케이스가 달라 이른바 ‘노하우의 영역’에서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이죠. 본엔젤스의 경우 핵심 멤버들이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본엔젤스의 파트너들은 회사 설립때부터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의 투자 스타일을 구축했죠. 초기 기업이 처한 상황은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투자를 할 때도 그에 걸맞는 팀웍이 필요합니다.”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이하 본엔젤스)는 국내 최초의 마이크로 벤처캐피털(VC)로 평가되는 업체다. 본엔젤스의 역사는 스타트업(창업 초기 벤처기업)에 체계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 거의 없던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색 엔진 ‘첫눈’을 NHN에 매각한 장병규 대표, 우주커넥션스를 창업했던 강석흔 파트너, 애널리스트 출신 송인애 파트너가 2007년 의기투합해 본격적인 투자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본엔젤스는 2010년 초 벤처캐피털 라이선스를 취득해 자본금을 50억원에서 80억원으로 늘렸다. 2012년에는 순수 민간 자본으로 구성된 220억원 규모의 ‘페이스메이커’ 펀드를 결성해 최근에도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이란 명성에 맞게 성공적인 투자회수 사례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 창업가에서 투자가로
본엔젤스는 창업 DNA를 가진 벤처캐피털이다. 세 명의 파트너가 함께 투자 결정을 하는 데 이 중 장병규 대표와 강석흔 파트너가 창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직접 회사를 만들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투자를 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강 파트너의 말이다.
“2006~2007년만 해도 초기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어요. 장 대표가 개인적으로 엔젤투자를 시작한 게 2006년이었고, 2007년에 저와 송 파트너가 합류해 엔젤투자 팀을 만든거죠. 창업자 출신으로 창업 초기 투자에 대한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된 일입니다. 저희에겐 이 일이 의미도 있고, 즐겨할 수 있는 일인거죠. 단순히 투자만 했던 사람들은 귀찮을 수 있는데, 저희는 창업자 출신이기 때문에 투자한 회사에 조언하고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본엔젤스에 합류할 당시 강 파트너는 창업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창업한 회사를 아이콘랩과 합병한 후 임원으로 일을 하고 있던 차에 송 파트너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세 명의 파트너는 대학 동문이기도 한데,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찾다보니 서로 인연이 닿았다.
“인터넷, 모바일,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해봤는데 이 경험이 투자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팀이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 대표님이 저에게 제의를 했고 ‘전업 엔젤투자팀’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조직이 만들어 진거죠. 당시는 벤처 암흑기나 다름 없어 주변의 우려도 많았는데, 성과가 하나 둘씩 나왔고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본엔젤스는 초기엔 펀드를 만들지 않고 자본금만으로 투자를 막 했다. ‘투자-회수’라는 금융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엔젤투자에서 시작한 일이 한단계 한단계 발전해 마이크로 벤처캐피털 형태를 갖추게 됐다는 게 강 파트너의 설명이다.
◆ 능력보단 팀…소통 중시
본엔젤스와 강 파트너의 투자방식을 보면 그들의 투자철학을 짐작할 수 있다. 세 명의 파트너가 만장일치제로 투자 결정을 하고 투자한 회사에는 파트너 두 명이 함께 한다. 투자한 회사와 많이 대화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강 파트너는 “최소 3~5명으로 이뤄진 팀을 보고 주로 투자해왔다”며 “우리가 팀 단위로 투자하듯 창업가들의 팀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가 만든 펀드 이름이 ‘페이스메이커’ 펀드인데, 그만큼 조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라며 “창업가들과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고 깊이 있게 소통한 다음 궁합이 잘 맞을 때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본엔젤스는 인재 주선 등을 통해 투자한 회사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한다. 배달의 민족에 최고기술책임자(CTO), 개발자 등을 소개시켜 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스타트업에 많은 사람들이 갈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인재를 소개하는 역할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모르는 분야는 소개시켜 줄 수 없죠.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동안 쌓아 놓은 인맥과 그에 대한 신뢰가 깊다는 것이죠. 이런 점이 투자할 때 강점으로 발휘되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 기업들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추가 투자 유치가 필요한데, 본엔젤스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비교적 후속 투자를 잘 유치하는 편이다. 조력의 일환으로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게 강 파트너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벤처캐피털 업체들과도 교류를 많이 하고 있고, 후속 투자 매칭 성사율도 높다”며 “스타트업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 보다 효과적으로 후속 투자가 진행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 초기 투자가 정체성
강 파트너는 초기 기업 투자는 본엔젤스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돈 벌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펀드의 규모를 지나치게 키우면 정체성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초기 기업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펀드 규모는 투자 업체와의 거리와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펀드가 투자하는 업체 수는 비슷한데 펀드 규모가 커지면 초기 투자는 못하게 되는 것이죠. 초기 투자는 저희의 경쟁력이고 즐겨하는 것인데, 정체성을 버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벤처 캐피탈 업체들이 펀드 규모를 늘리는 것은 펀드 수수료 때문이라는 게 강 파트너의 설명이다. 벤처캐피털이 펀드를 운용하면 관리보수를 받는데, 펀드규모가 크면 같은 퍼센트라도 수수료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본엔젤스는 관리보수가 아니라 성과보수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스타트업이 성장해서 잘되면 성공의 과실을 나누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운용보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기 기업 투자의 경우 위험이 크지만 성공사례가 나오면 이익의 크기도 그만큼 크다는 설명이다.
좋은 스타트업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선 “팀과 시장”이라고 답했다. 창업 이후 사업 아이템이 변하기도 하는데 관련 시장의 잠재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창업팀의 경쟁력도 중요한데, 무슨 일이든 만능으로 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팀웍이 좋아야 한다.
◆ 온라인-오프라인 믹스에 관심…투자회수 7곳 이르러
강 파트너는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투자 분야는 ‘온라인-오프라인 믹스’라고 말했다. 단순한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 서비스는 3~4년 전에 비해 기회가 많이 줄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서비스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어느 하나만 하는 서비스는 기존 시장에 경쟁자가 있다”며 “양쪽에 걸쳐 있으면 후발주자가 쉽게 따라하기 어렵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한 회사 중 마이리얼트립이란 스타트업이 있는데, 기존 여행사들과 달리 온오프라인을 잘 믹스한 사업 형태라고 한다. 마이쿤이라는 스타트업은 오프라인에서 스마트폰 배터리를 교환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 충전 장소를 공유하는 서비스 ‘플러거’ 등을 통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영향력도 확대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차량의 고장난 부분을 촬영해 올리면 견적을 비교해 주는 ‘카닥’도 대표적인 사례다.
본엔젤스는 지금까지 인수합병(M&A)를 통해 7개 스타트업에서 투자금을 회수했다. 스타트업 투자의 경우 투자금 회수까지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위트스튜디오는 투자 2년만인 지난 7월 라인플러스에 인수됐고, 모바일 중고 거래 장터 ‘번개장터’의 개발사 퀵켓은 2013년 11월 네이버에 인수됐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 업체 매드스마트는 2012년 4월 SK플레닛에 인수돼 투자금의 15배를 남겼다. 인터넷 및 모바일 서비스업체 씽크리얼스는 2012년 6월 카카오에 인수됐고, 엔써즈는 2011년 12월 KT에, 미투데이와 윙버스는 2008년 12월 NHN에 인수됐다.
“2012년 9월에 설립한 펀드의 규모가 220억원인데, 이 펀드 자금으로 투자한 회사만 30개 이상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엔 투자심사역도 2명 채용했죠.”
◆ 벤처투자자들도 경쟁하는 시대
강 파트너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과거와 달리 인재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밝다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밸리나 국내 벤처기업의 성공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인재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으로 투자금이 유입되고,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강 파트너는 이어 “해외 투자자들도 국내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성장동력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스타트업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닷컴 버블을 한번 겪었기 때문에 묻지마 투자와 같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별로 없을 것이란 게 강 파트너의 생각이다. 그는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단단하게 다져진 벤처 생태계의 기반이 갑자기 꺼지진 않을 것으로 봤다.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은 자선 사업이 아니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저희가 보여줬습니다. 많은 벤처캐피털들이 초기 투자(얼리 스테이지) 펀드를 만들고 있고, 정부도 초기기업 투자에 관심을 쏟고 있어 이런 분위기가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창업 숫자에 비해서 투자자가 적긴 하지만, 국내에서도 점점 투자자들끼리 경쟁을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아주 좋은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