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의 꿈을 속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주부, 중·고등학생,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속으로 품어왔던 '대박 상품'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LG전자가 단순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창구를 열어놓자, 사업 아이디어 1만여건이 쏟아진 것이다. 그 아이디어들을 평가·개선하고, 마케팅 방안을 제시하면서 사업화로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13만5000명에 달한다. LG전자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면 매출의 4%를 지급하겠다"며 개설한 '아이디어LG'의 이야기다. LG전자는 "민간기업의 공모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며 "10대에서 80대까지 각계각층에서 문의를 하고 직접 참여했다"고 밝혔다.
◇1만개 아이디어 쏟아져
아이디어LG는 '한국의 쿼키(Quirky)'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국의 소셜아이디어 전문 업체 쿼키는 발명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고, 매출의 일부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과 심사위원에게 나눠준다. 예를 들어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멀티탭 '피벗 파워(Pivot Power)'란 제품은 70만개가 팔렸고, 쿼키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사례금 6억원을 받았다.
아이디어LG도 쿼키와 비슷하다. 소비자 아이디어를 심사해 제품을 만들고 매출액의 4%를 최초 아이디어 제출자에게 준다. 또 제품을 평가한 사람, 적절한 가격이 얼마냐는 설문에 응한 사람, 마케팅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에게도 매출의 4%를 추가로 떼내 나눠준다.
LG전자는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한 채 오로지 아이디어 자체를 평가한다는 원칙하에 아이디어 제출자의 성명·연령·성별·전화번호·학력 등 개인 정보를 하나도 받지 않았다. 평가 결과를 알릴 때 쓸 이메일 주소만 받았다.
LG전자는 처음 공모전을 시작할 때 이공계 대학이나 대학원 학생들이 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말 그대로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사람들이 아이디어LG에 도전했다.
◇전문 발명가부터 중년 주부까지 경합
13만명이 넘는 소비자 평가단의 심판을 거쳐 결선에 진출한 작품은 모두 50개. 현재 일반 소비자의 평가는 끝났고, LG전자의 상품기획·마케팅·개발·영업팀이 이 아이디어의 상품화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심사 중이다. LG전자는 "현재로선 50개 아이디어 가운데 복수(複數)제품을 상품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5시 현재 결선 평가에서 1위를 달리는 아이디어는 '패션 안전 무선 이어폰(EarFit)'이다. 이어폰에 자동차 경적이나 브레이크 소리를 감지하는 기능을 넣은 뒤 길에서 이런 위험한 소리가 들리면 이어폰이 자동으로 음량을 줄여서 사용자가 위험을 감지하게 하는 것이다.
2위는 '휴대전화 케이스 충전기'. 휴대전화를 감싸는 케이스와 충전기를 일체형으로 만들었다. 케이스 따로, 충전기 따로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앤 것이다. 공동 3위는 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휴대용 보온병 '워터마스터'와 아이 체온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열 감지 손목 밴드'다. 5위는 모터를 아래쪽에 장착한 선풍기. 기존 선풍기는 모터가 제품 상단 날개 바로 뒤에 달려 있어 앞뒤로 쓰러지기 쉽고 모터의 열 때문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기도 한다. 모터를 하단에 장착하면 안정감이 있고, 소음이 줄어든다.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현재의 등수가 최종 결과는 아니다. LG전자 내부 평가과정에서 매일 순위가 달라진다. 며칠 전엔 케이스 충전기와 열 감지 밴드가 1위였다. 점수 차도 크지 않아 심사가 끝나는 14일 밤 자정까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순위 경쟁이 벌어진다. 결과는 15일 발표 예정이다.
보통 사람들이 삶 속에서 끄집어낸 아이디어들도 많다. 한 중년 가정주부는 내부 칸을 분리해 한꺼번에 잡곡밥, 백미밥, 죽을 지을 수 있는 '올 카인즈 밥솥'을 아이디어로 냈다. 시어머니는 죽, 딸과 사위는 흰 쌀밥, 남편은 잡곡밥을 좋아해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올 카인즈 밥솥은 결선에 오른 50개 아이디어에 포함됐다.
14개월 된 딸이 있다는 한 젊은 아빠는 아기 분유를 탈 때 적당한 온도의 물이 적당한 양만큼 나오는 '아기 전용 정수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LG전자는 현재 2차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최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부사장)은 "아이디어LG를 회사와 소비자가 만나는 집단지성의 창구(窓口)로 항상 열어놓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