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우의 사진일기] 50% 세금폭탄에 소포를 돌려보낸 사연

조선비즈
  • 채승우
    입력 2014.10.11 08:30

     
    터키 이스탄불의 고속버스 터미널. 어찌된 일인지, 어느 버스가 어디에 서고, 언제 출발하는지 아무런 표지가 없었다. 대신 아저씨가 확성기를 들고 사람들을 불렀다. 우리 버스는 1시간쯤 늦게 출발했는데, 그 동안 들은 안내는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장거리 여행 중에는 짐이 그야말로 가장 큰 짐이다.

    우리는 여행 중에 늘어난 짐이나, 계절이 바뀌어 필요 없게 된 짐은 우편으로 한국에 부치곤 했다. 그러는 중에 자연스럽게 각국 우편 시스템을 비교하게 됐다. 우체국은 여행자들이 가장 쉽게 만나는 그 나라의 행정 시스템이기도 하다.

    나가 보니 우리나라 우체국은 아주 세련되고 절차가 간편한 축에 속했다. 어떤 나라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최악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한 우체국. 아내가 혼자 찾아갔다가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아내의 하소연은 이랬다. 우체국에 들어섰을 때였다. 대여섯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번호표 뽑는 기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줄을 선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우체국에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울티모?” 하고 물었다. 마지막 사람이 누구냐는 뜻이다. 누군가 손을 들거나 답을 하면, 그 사람만 쳐다보고 기다렸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바로 앞 사람이 누군지만 안다. 이런 점조직이 또 없다. 그러다 누군가 중간에 빠져나가면?

    쿠바의 버스 사무실. 전산망이 없는 대신, 도시마다 할당된 좌석 수가 있었다. 버스에 자리가 없어 쩔쩔 매자, 직원은 장부(!)를 펼쳐들고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는 자리를 찾아줬다. 우리는 연장된 목적지로 갔다.
    아내는 사십분 쯤 기다린 끝에 창구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갔다. 소포를 부치겠다고 하자, 석 장짜리 서류를 내밀었다. 비슷한 질문이 반복해 적힌 서류 석 장을 다 써서 건네자, 할머니는 아내가 쓴 것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되물었다. 확인이 끝나자 그녀는 컴퓨터에 뭔가 쳐넣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종이 서류와 똑같은 문서가 화면에 떠 있다. 종이에 쓰인 것을 그대로 컴퓨터에 옮기는 것이다.

    물품 목록을 기재하는 창은 선택형이었다. 선택 창을 누르자 목록이 화면 아래로 쭉 펼쳐졌다. 백 개도 넘었다. 아내가 보낼 물건 중에는 고장난 카메라 렌즈가 있었다. 하지만 선택 목록에는 렌즈가 없었다. 우체국이 술렁였다. 직원들이 할머니 자리로 모여 회의를 했다. ‘포토그래픽 장비’에 넣기로 결정이 났다.

    다음은 물품의 무게. 아내는 종이 서류에 전체 무게를 적었다. 하지만 디지털 문서 양식은 개별 무게를 요구했다. 할머니는 고민고민 하면서 각각의 무게를 계산해 적어 넣었다. 개별 무게와 합산을 맞추는 작업 또한 쉽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빨간색 입력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아뿔사, 컴퓨터가 다운돼 버렸다. 아내는 거품을 물고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여태껏 과정을 똑같이 반복한 후에야 우체국을 나올 수 있었다.
    남미 여행자들의 ‘좁은 문’ 중 하나는 볼리비아 비자 받기일 것이다. 특히 리마의 볼리비아 영사관은 서너번 퇴짜를 놓는 게 기본이었다.
    소포를 받는 일은 더 문제였다. 간혹 여행 중에 카메라가 고장나면 한국으로 보내 고친 후 돌려받았다. 찍은 사진 파일이 가득 찬 외장하드를 백업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수리된 카메라와 백업을 마친 외장하드를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돌려받게 돼 있었다. 하지만 숙소로 날아든 것은 소포가 아니라 세금 고지서. 무려 20만원이었다. 한국의 처남이 소포를 보낼 때, 써붙인 물품 가격 40만원에 50퍼센트의 세율을 적용한 금액이었다. 무시무시한 세율도 그렇지만, 우편물에 세금이 붙었다는 데 아연실색했다. 우리가 이 나라에 눌러 살 것도 아니고, 여기서 물품을 팔아 이득을 볼 것도 아닌데 왜 크로아티아에 이런 세금을 내야 하지.

    따지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호스텔 직원을 통역으로 사이에 두고 통화를 하자니 진전이 없었다. 직접 찾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담당자의 사무실은 우리로 치면 이천 물류센터쯤 되는 곳에 있었다. 잘못 가르쳐준 버스를 타고 헤매다, 이천 어디쯤엔가 내렸을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가 3시 반이었는데, 담당자는 3시까지 근무하고 지금은 없다고 했다. 데스크 여직원은 친절했다. 담당자는 내일 8시 다시 출근할 것이고, 내 메시지를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와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알려줬다. 내가 아침 내내 붙잡고 씨름했던 번호였다.

    몇몇 나라에서는 기차표나 버스표를 살 때 여권을 요구했다. 멕시코에서는 버스에 오를 때 여권 내용을 옮겨 적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하기도 했다. 안전 조치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그 담당자는 자신은 과세의 시비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럼, 왜 그리 비싼지라도 알고 싶었다. 무게 때문이란다. 순간 내가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나 싶었다. 세금이 무게에 따라 부과된다고? 결국 우리는 부당한 세금은 낼 수 없다고 결정하고, 소포를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호스텔 직원들은 이리저리 흥분해서 뛰어다니는 우리를 보며, 빨리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천만에! 우린 의지의 한국인이란 말이야!

    그밖에도 터무니없는 행정 시스템은 곳곳에서 태클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구해준 것은 사람들의 친절이었다. 낯선 타향에서 쩔쩔매는 여행자들을 돕겠다는 현지인들의 마음이 불량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주곤 했다.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국경. 우리 버스는 5시간쯤 국경에 묶여있었다. 아무도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인인 우리 부부가 뛰어다니며 알아본 결과, 누군가 버스표를 살 때 기재한 내용과 실제 여권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버스표를 호텔 직원이 대신 사줬단다.
    특히 포르투갈 포르투의 우체국 할머니께는 각별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포르투갈은 이상하게도 소포의 무게가 2킬로그램을 넘기면 값이 급격히 비싸졌다. 의아해 하는 우리를 앞에 두고 할머니는 무언극에 가까운 바디랭귀지로 비용 절감의 요령을 알려주려고 애썼다. ‘이봐, 소포를 두 개로 나눠 보내면 싸다구!’ 천사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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