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정책자금 5조원 이상을 연내에 추가 투입하는 긴급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것은 미지근하게 살아나고 있는 경기 회복의 모멘텀(동력)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7월 입각 후 총 41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경기 회복 속도가 미약하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8월부터 정책자금을 시중에 풀었는데 그 효과는 2~3개월 후에 나타난다"며 "아직 경기 회복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워 좀 더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살아나지 않는 생산·투자·소비지표
정부가 미니 부양책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지난달 말 집계된 8월 생산과 설비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8월 광공업 생산은 전달에 비해 3.8% 줄었다. 생산 규모를 그대로 유지해도 부족한 판에 성장세가 완연히 꺾여 버린 것이다. 같은 달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10.6%나 줄었다. 11년여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기업들이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고 보고 금고를 닫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대를 가졌던 소비 지표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기재부가 매월 모니터링하는 주요 소매판매 지표 중 8~9월을 합한 백화점·할인점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사고 이후 월 매출이 3~4%씩 빠졌던 것에 비하면 나은 모양새지만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큰 할인 행사가 있을 때만 판매가 반짝 오르고 금방 다시 주저앉는다"고 말했다. 다만 9월 주택 매매 가격이 전월에 비해 0.2% 오르는 등 부동산 시장은 온기가 살아남아 있다.
당초 정부는 8일 경제장관회의에서 경기 부양 자금이 원래 계획대로 잘 집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회의를 할 예정이었는데, 지난달 말 나쁜 지표들이 돌출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주요 지표들이 나빠져 시장이 원하는 부양책을 분석해 그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미니 부양책으로 투입하게 되는 돈은 설비투자 펀드 등 기업의 수요가 있는 분야, 디딤돌 대출(무주택 서민에게 제공하는 주택구입자금) 대출 조건 완화 등 시장의 수요가 있는 분야에 집중될 계획이다.
◇대외 경제 환경도 악화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도 정부가 추가 부양책을 마련한 이유다. 기재부는 "미국 양적 완화 축소, 엔화 약세, 중동 지역 불안 등의 위험 요인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부 충격은 주식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의 배당 강화 정책으로 2082포인트(7월 30일)까지 올랐던 코스피지수는 8일 1965선까지 내려앉았다. 미국이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직접 사는 형태로 돈을 푸는 것) 종료를 앞두고 달러화 가치가 높아지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시장에선 이달 들어서만 외국인 투자금이 1조1000억원 이상 빠졌다. 여기에 엔저가 장기화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경기 대응책만으로 경기 회복세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4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재정정책이 경기 모멘텀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데, 5조원의 투입 속도를 앞당기는 정책 정도로는 모멘텀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제는 생물과 같아 성장률이 탄력을 잃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의 재정 조기 투입이 4분기 성장률을 0.1~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