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학 등록금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미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 대학 졸업생이 짊어질 빚은 평균 3만3000달러(약 3430만원)에 달한다. 이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20년 전에 비해 두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오바마 대통령은 치솟는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닝(온라인 교육)’을 제시했다.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은 이러닝을 활용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비를 낮추는 대학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고등교육 개편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네기멜론, 아리조나주립대 등이 온라인 교육으로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미국 정부는 대학이 혁신적이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크(MOOC) 옹호론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을 정부 차원에서 무크를 활성화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 등록금은 연간 4만달러(약 4173만2000원원) 수준이다. 무크 강좌당 수료증 발급 수수료는 30달러~200달러 정도다. 대학이 교양 과목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면 교육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학생의 등록금 부담도 줄여 주게 된다.
이준기 연세대 학술정보원장은 “대학 사회에서 무크 도입을 검토하는 속내는 대규모 인원이 듣는 교양 수업을 무크로 대체해 비용 부담을 낮추고 소규모 연구 수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실 대학 재정 악화는 교육비를 보전해야 하는 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 재정 사정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2012년 전국 사립대학 193곳의 등록금 수입은 10조8461억원으로 전년 대비 2.2% 줄었다. 등록금 수입은 대학 수입의 60%를 차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가보조금 투입은 더 늘었다. 2012년 사립대학에 들어간 국립보조금은 1조3775억원으로, 전체 교비 수입의 7.6%나 됐다. 2011년 국고보조금 의존도가 3.6%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년 동안 두배나 늘어난 셈이다.
김형률 숙명여대 교수는 “무크를 활용하면 하버드, MIT 등 세계 최고 수준 대학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소셜네트워크(SNS), 구글 행아웃 등을 이용해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상호교류를 높일 수 있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 교육 과정에 온라인 과정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2012년 2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정부가 대학 수업 중 3분의 1 이상을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캐나다 대학생 연합은 교육의 질 하락을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샌디 허드슨(Sandy Hudson) 캐나다 대학생 연합 대표는 “주 정부가 학생과 교수진의 동의 없이 정책을 바꿨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며 “전체 5개 수업 중 3개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면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크 강좌의 평가 방식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객관식 평가로만 학업 성취도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논술(에세이)도 과제로 내준다. 문제는 교수진이 수만 명에 달하는 에세이를 읽고 공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무크 사이트 코세라는 수강생들이 상호 평가하는 방식(peer grading)을 도입하고 키보드 입력 패턴과 속도를 인식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시그네처 트랙(signature track)’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무크를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활용하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일명 ‘거꾸로 수업’으로 불리는 플립 러닝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강좌를 듣고 실제 수업시간에는 실험과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카이스트 등에서는 플립 러닝 효과가 뚜렷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플립 러닝은 기존 수업 시간과 시설, 교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무크 강의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교육방식이어서 오히려 등록금을 올리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슈아 와이너(Joshua Wyner) 아스펜 인스티튜트 수석 책임자는 지난해 7월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몇몇 교육기관이 무크를 전통 수업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비용 상승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무크가 기존 면대면 수업을 완전히 대체해야 교육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범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 수석팀장은 “대학이 무크를 도입하면, 교수진과 시설 규모를 줄어야 하고 학교 규모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한국 대학들이 무크 도입에 소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