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만화영화는 개봉할 때마다 성공을 거듭했다. 토이 스토리에서부터 몬스터 주식회사, 월-E 등 1995년부터 20여 년간 출시한 14개 장편 만화영화는 모두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런 픽사를 떠올릴 때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은 잡스다. 픽사를 만든 이도 잡스였고 성공시킨 이도 물론 잡스가 맞다. 하지만 그 이면에 픽사 성공 열쇠인 '창의성'이라는 DNA를 심어준 이가 있다. 현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이 애드 캣멀이다.
애드 캣멀은 잡스에 비해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픽사의 전신인 그래픽스그룹 시절부터 기업을 실질적으로 경영해온 주인공이다. 그는 잡스를 설득해 그래픽전문가용 컴퓨터제조업체였던 픽사 사업내용을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거듭나게 했다. 그 사이 픽사 특유의 창의적 협업 시스템과 소통방식 등의 현 기업경영 핵심 DNA를 안착시켰다.
캣멀은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합병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픽사 사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캣멀이 디즈니에 온 이후 16년간 부진에 빠졌던 디즈니는 부활하기에 이른다. 디즈니는 2010년 라푼젤을 흥행시키고 겨울왕국으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쓴다.
디즈니 부활은 캣멀이 디즈니의 경영 체계를 완전히 뒤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디즈니가 수직적 소통과 아이디어 발표에 대한 부담감, 부서간 소통 부재 등이 디즈니의 고질적인 병폐임을 깨달았다. 그는 당장 기다란 테이블부터 정사각형 테이블로 바꿨다. 기다란 테이블에서 회의하면 결국 회사 중역들만 이야기하다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역들만 이야기하고 끝나는 회의가 아닌 말단 직원부터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는 회의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픽사가 내놓은 만화영화에서 가장 큰 장점을 창의성으로 꼽는다. 사람들은 픽사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와 일사 분란하게 작업이 진행되는 줄 안다. 하지만 캣멀은 픽사가 처음 내놓는 아이디어는 "더럽게 형편없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창의성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많은 회의와 실패를 거듭하며 질을 개선해나가는 회사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체계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브레인트러스트 회의다. 브레인트러스트는 일종의 자문단이다. 몇 달에 한 번씩 감독 및 제작진들이 자문단에게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 진행상황을 공개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브레인트러스트 구성원들은 스토리 흐름을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살펴보고 솔직하게 의견을 전달한다. 외부에서 만약 이 회의를 보면 회사 구성원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도 있다. 지나치게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캣멀은 이러한 비판 과정을 통해 실질적인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캣멀이 그동안 솔직한 소통과 격없는 소통을 회사 DNA에 심어놓은 결과다. 직원들 역시 이 모든 비평과 논의들이 사람이 아닌 작품 질에 맞춰져 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 상처받는 일이 없다.
물론 제작이 막바지에 당도한 이후 또 다시 수정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감독과 제작진은 이러한 수정을 거부하지 않는다. 내부 솔직한 피드백은 시장에 나왔을 때 겪게 되는 다양한 충격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일종의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캣멀이 디즈니에 왔을 때도 디즈니 부진 원인은 창의성이 부족한 직원이 아니라 그런 직원을 고착화시킨 경영 시스템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픽사의 수평적 체계와 자유로운 논의 등을 디즈니에 접목했다. 그는 "이런 노력으로 직원들 스스로 적응하고 진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작품이 '겨울왕국'이다.
그는 이러한 경영 문화를 접목시킬 수 있었던 열쇠로 리더 스스로가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픽사가 솔직한 소통문화를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은 캣멀 자신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모든 의견에 열린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