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0엔당 원화환율이 950원대로 떨어지면서 일본과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전자, 자동차 등 수출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급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을 정도로 엔저가 우리 경제의 커다란 복병으로 또 다시 등장했다.
원엔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한 기준금리 인하 방안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론적으로 보면 기준금리를 내리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원엔 환율 하락을 막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환율은 이론적으로 금리차이와 물가(구매력)차이가 반영되는 것"이라며 "소비자물가가 일본은 3%대 후반이고 우리는 1%대인 것이 엔화 평가절하의 요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니까 금리를 낮춰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금을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원화약세를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이 것은 위험하다"며 "지금 미국이 양적완화를 끝내고 금리인상 사이클로 진입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아직 인하 사이클인데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면 자금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시장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원엔 환율이 추가 하락하더라도 900원선은 지킬 것으로 내다봤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vs "환율, 금리대응은 부적절"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 여력도 있는 상황인데, 물가가 낮고 성장률도 낮고 환율 요인까지 있다면 금리인하가 충분한 대응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원화 강세니까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엔저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다른 나라가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풀고 있는 상황이라 거기에 속도를 맞출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환율을 금리로 대응하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엔저 대응에 찬성 의견을 밝힌 윤덕룡 KIEP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축이라고 볼 수 있다"며 "한은은 물가가 낮게만 유지되면 좋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가가 어느 정도 유지 돼야 생산 등 경제가 자극을 받기 때문에 물가를 물가목표(2.5%~3.5%)에 맞추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하로 환율에 대응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한은의 가장 큰 정책목표가 물가안정에 있는데 방법론적으로 경제와 물가에 영향이 크지 않다고 가정한다면야 금리로 환율에 대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과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2012년말에 매우 급격하게 엔저가 이어졌는데 갑자기 이제 와서 우려가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우리나라와 일본이 경쟁 업종 많다고는 하지만 예전보다 생산 네트워크가 글로벌화 됐고 환율에 따른 영향도 크게 줄었다"고 덧붙였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준금리로 환율에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환율에 타깃팅해서 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 환위험 헤지 지원 방안 등 제외하고 사실상 뾰족한 방법 없어"
이처럼 기준금리를 엔저 방어에 활용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원엔 환율 하락에 대한 뾰족한 정책대응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 원화와 엔화간 직접적인 교환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엔 환율 하락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달러를 기준으로 엔화 가치 보다 원화 가치가 약해지면 엔저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본은 추가 양적완화를 앞두고 있어 엔화 가치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환변동상품에 가입하는 등 환위험 헤지를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해 주는 방안이나 외환시장에서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통해 원화 달러 대비 환율 하락(강세) 속도를 완화하는 등 기존에 알려진 것 말고는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 원엔 환율, 추가 하락해도 900원선 유지 의견 다수
전문가들은 대부분 원엔 환율이 900원선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윤덕룡 KIEP 선임연구위원은 "엔달러 환율이 110~115엔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럴 경우에 원엔 환율은 900원선 근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원엔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엔달러 환율이 130엔 정도까지 오른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수입물가 급등 등으로 일본 경제가 오히려 타격을 크게 받기 때문에 일본도 그렇게까지 엔달러 환율이 높아지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엔달러 환율은 1달러에 110엔, 원엔 환율은 100엔당 900원선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러나 추가 양적완화의 강도가 더 높아지고 엔저가 국제적으로 용인돼 120엔까지 가면 원엔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했다.
◆ "미국 금리인상해도 자금 유출 가능성 작다"
한편 전문가들은 미국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인상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내외금리차로 자본유출이 일어날 우려가 없는 건 아닌데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기준금리가 2.25%인데 여기서 0.25%포인트 내려 2.0%가 된다고 해도 선진국과는 여전이 금리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세계 금융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있고 우리나라에서 돈을 빼가서 다른 데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 5월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부각됐을 때도 다른 신흥국은 타격을 받았지만 우리나라는 큰 영향이 없었다"며 "글로벌 자금 이동을 최소화하려고 미국도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강달러로 인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달러 강세로 내년에 원달러 환율은 반등할 것"이라며 "자본유출은 취약한 나라부터 일단 나오고 우리는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엔저에 대응하는 게 더 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입력 2014.09.28. 15:50업데이트 2014.09.2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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