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시기에 회오리를 이용할 생각을 어찌하셨습니까"…"무엇이 천행이라 생각하느냐"

'명량'의 마지막 장면, 절체절명의 시기에 승리로 이끈 것이 회오리였는지 백성의 도움이었는지 되묻는 아들에 대한 이순신의 답이다. 관객 각자 마음속의 답은 다를 수 있겠지만 '흥행에 대한 천행'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회오리가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울돌목 바다 물결은 카메라로 잡히지 않았다.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끈 물살 뿐 아니라 왜적, 배, 백성 등 거의 모든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CG)기술로 재현한 것이다.

영화 '명량'의 컴퓨터그래픽을 진두지휘한 것은 컴퓨터그래픽 전문회사 매크로그래프다. 매크로그래프는 2007년 4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디지털액터팀이 독립해 만든 회사로 미국 헐리우드와 협업하면서 CG 실력을 키웠다. 영화 중천·포비든 킹덤 등이 매크로그래프가 참가한 작품이다. 현재는 영화 연평해전과 괴물2의 CG 작업을 맡고 있으며 중국 영화 제작사들과도 많은 협업을 하고 있다.매크래그래프의 '명량' 제작팀을 만나 영화 명량의 컴퓨터그래픽을 해부해봤다. 어디까지가 실제 촬영이고 어디부터는 CG일까.

◆ 명량에 등장하는 수많은 병사들, 진짜 배우는 몇 명이었을까?
 

왜군들이 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

명량을 시청한 관객들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선상에서의 치열한 백병전(白兵戰)을 꼽는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너무나 비장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백병전 장면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대다수가 CG였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실제로 백병전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배우를 창조해내는 ‘디지털 액터(Digital Actor)’라는 기술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최대한 실제 인물과 비슷한 모습과 움직임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인호 매크로그래프 대표는 “해전 장면에서 판옥선에 올라타 있는 20명 외에 모든 병사는 CG였다”며 “전투 장면 뿐 아니라 배가 정박해 있는 장면에서 탑승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모두 CG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관객들이 CG란 것을 눈치채지 못도록 자연스러운 배우를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다”고 덧붙였다.

◆ 조선전함 13척, 왜군 전함 300척…실제 촬영 함선 수는?

왜군 전함과 판옥선이 서로 부딪히는 장면

명량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관객의 눈을 압도하는 수의 조선군과 왜군의 전함들이다. 해전 장면의 도입부에는 300여척의 왜군 함선이 조선군을 집어 삼킬 듯 진군하고, 조선군이 결정적으로 승기를 잡는 장면에서는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 왜군 함선 ‘세키부네(?船)’를 직접 부딪혀 격파한다. 웅장한 전함들이 파편을 흩날리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여기서도 대다수 장면의 함선은 CG로 만들어졌다. 명량을 위해 실제 모형으로 만든 함선은 모두 8척이다. 그리고 실제로 촬영에 투입된 함선은 한번에 3척이 최대다. 특히 함선끼리 충돌하는 장면엔 한 장면도 예외 없이 CG기술을 적용했다.

실감나게 배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질감과 파도가 가장 중요했다. 이를 위해서 룩 디벨롭(Look Develop)이라는 과정이 중요했다. 이 과정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뼈대에다 보완을 거듭해 실감나는 겉 표면을 입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물에 젖은 나무가 내는 빚깔과 반사광,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등을 자세히 관찰해야 했다.

박기주 매크로그래프 이사는 “판옥선을 표현할 수 있는 오래된 나무를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해 참고했다”며 “나무 외에도 세부적인 표현에 필요한 많은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말했다.

◆ 낮에 촬영을 하고 밤으로 배경을 바꾸기도

해전 장면의 초기 작업화면

영화나 드라마 할 것 없이 촬영을 하는 사람들은 “어딜 찍어도 아파트가 걸린다”는 말을 한다. 명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의 모든 장면은 아트디렉터의 손을 거쳐 완벽한 조선시대 전장으로 탈바꿈했다.

카메라 앵글이 위에서 전함을 넓게 잡는 장면과 피 튀기는 바다 위 전쟁 장면 등 실제 같은 명량 해전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 전반에 CG로 실감나는 바다 물결과 안개를 만들어 넣었다.

파도 CG작업 전·후 비교화면

바다가 나오는 장면은 실제 해전의 배경이었던 울돌목보다 임시적으로 광양 중마일반부두에 만들었던 세트장에서 촬영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CG를 적용하기 전에 잡히던 차·전선 등을 모두 없애고 허전하게 비어있는 바닷가는 배나 초소 등으로 채웠다.

현실적인 문제로 대본에 맞춰 촬영을 하지 못한 부분도 CG 기술로 보완했다. 대표적인 예가 낮에 촬영을 하고 밤으로 배경을 바꾼 것이다. 왜적장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와 그의 부하가 전쟁 중 배 위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실제로 낮에 촬영했지만 영화에서는 한밤 중을 배경으로 한 장면으로 나왔다. 뒤에 나오는 밤 배우들의 얼굴에 비치는 조명까지 모두 CG다.

이인호 매크로그래프 대표는 “분량과 난이도 면에서 명량은 지금까지 한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며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명량의 CG 기술은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자부했다. 이 대표는 “명량이 국내 영화 제작 활성화에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