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달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던 한국은행이 이번 달에는 동결(연 2.25%)을 선택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 회복세가 굉장히 미약한 상황"이라면서 추가 금리 인하를 바랐던 모습이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는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한은은 2001년 IT 버블 붕괴 시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기준금리를 연이어 내린 적이 없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사고의 영향 등으로 위축되었던 내수가 소비를 중심으로 다소 개선되었으나, 경제 주체들의 부진한 심리는 뚜렷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회복세가 미약하다는 최 부총리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단해서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금리 인하의 효과 등을 좀 더 지켜본 뒤에 추가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미약한 경제 회복세, 추가 처방 필요할 듯
최 부총리가 '미약하다'고 평가한 경제 회복세는 이날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최근 경제동향'(일명 그린북)에서 나타난다. 8월 신용카드 사용 실적은 전년 같은 달보다 8.6% 올라, 지난 1월(9.1%)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꺾였던 소비 심리가 살아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예전보다 빨랐던 추석 때문에 소비가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구재 소비 등은 여전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량이 전년보다 4.8% 감소했고, 휘발유 판매량 역시 6.2% 줄어들었다. 기획재정부는 "소비 회복세가 아직 공고하지 못해 내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용도 회복세가 더디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는 작년 같은 달보다 59만4000명 늘었다. 그러나 8월에 늘어난 일자리 중 73%가 50대 이상의 일자리였고, 늘어난 일자리 중 68%는 주당 36시간 미만 일자리였다.
◇한은, 연내 추가 인하 카드 뽑아들까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바라고 있고, 한은도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낮추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는 것이 걱정거리지만, 환율 등 대외적인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엔저(低)가 가속화되는 것이 고민거리다. 원·엔 환율은 100엔당 970원 안팎을 기록하면서 2008년 8월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보다, 엔화의 가치가 더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엔저 현상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야 하는 형편이다. 금리를 내리면 원화 가치가 낮아져 엔저의 부담을 덜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 전반을 보고 결정해야지 환율만 보고 금리를 내리긴 어렵다"면서도 "대외 환경이 가져올 리스크(위험)에 대해 예의주시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4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05%로 낮추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노골적인 유로화 약세에 나선 것도 한은이 잠자코 있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내 추가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최근 일본계 노무라증권은 10월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역대 최저인 연 2.00%로 낮출 것이라는 전망 보고서를 냈다.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지난 8월에 "한은이 10월에 0.25%포인트 인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