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때 동북아 금융 허브를 꿈꾸며 세계 100대 은행을 다수 배출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세계 무대에서 한국 금융은 존재감이 없다. 최근의 KB금융 사태는 추락하는 한국 금융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쉴 새 없이 금융 사고가 일어나고, 은행의 수익성은 뚝뚝 떨어지는데 회장과 행장에 금융 감독 당국까지 뒤엉켜 힘겨루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 금융이 이런 식으로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는 동안 세계 각국 금융은 속속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한국 금융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저개발국으로 분류되는 일부 국가들에마저 따라잡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전체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재는 금융시장 성숙도 부문에서 한국은 올해 81위로 가나(52위) 보츠와나(53위) 콜롬비아(63위) 캄보디아(65위) 등보다 순위가 낮다. 제조업을 포함한 한국 경제는 세계 14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한국 금융은 순위로만 보면 원조(援助) 경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무려 168조원의 공적자금이 한국 금융에 투입됐지만 삼성전자처럼 세계 무대에서 자신 있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금융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우물 안 개구리식 경영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다 우리 금융회사들은 카드 대란을 맞고, 저축은행 사태를 겪었으며, 부동산 대출 부실로 거액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서비스 혁신으로 성장 동력을 찾는 선진국과 달리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에 의존한 단순한 영업 행태를 반복하면서 은행들의 수익성은 세계에서 꼴찌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은행들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2004년엔 8조7751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엔 3조8823억원을 기록했다.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10년 사이에 순이익이 반 토막 난 것이다. 은행 수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ROA(총자산이익률)는 지난해 0.38%에 그쳐 경쟁국인 싱가포르, 중국, 홍콩은 물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도 밀렸다.
금융 산업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금융권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금융권 취업자는 1년 전보다 4만9000명 줄었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관치금융, 후진적인 감독 체제, 싸움질하는 지배 구조 등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금융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