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었던 차다. 2011년 출시됐을 때만 해도 7년 만에 나온 신형 모델이라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저조한 판매 실적으로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고, 르노삼성의 전반적인 부진까지 이어지며 반전을 이루지 못한 채 3년이 흘렀다. 누군가는 디자인을 탓했고, 누군가는 확실하게 강조할만한 장점이 없는 그저 그런 차라고 하기도 했다.
르노삼성은 절치부심(切齒腐心) 했다. 플래그십(최고급) 모델이 살아나야 재기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고, 나무랄 데 없는 차인데 저평가됐다는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다. 고심 끝에 내놓은 모델이 지난 2일 출시한 ‘뉴 SM7 노바(NOVA)’다. 노바는 신성(新星)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지난 4일 부산과 울산을 오가며 이 차를 타봤다.
부분변경 모델인 만큼 뉴 SM7노바는 성능을 좌우하는 엔진과 변속기가 이전 모델과 같다. 닛산의 6기통 VQ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있다. 수치상 성능도 그대로다. 2.5L 모델의 경우 최고 출력 190마력, 최대 토크 24.8㎏·m의 성능을 내며 복합연비는 L당 10.2㎞다. 3.5L 모델은 258마력과 33.7㎏·m, L당 9.4㎞다. 시승한 차는 2.5L 엔진을 단 RE(최고급형) 모델이었다.
시동을 걸고 해운대에서 출발해 울산 간절곶까지 39㎞를 달리는 동안에는 조수석에 앉아 새로 들어간 기능을 시험해봤다. 기존 블루투스 방식이 아닌 와이파이 방식으로 스마트폰과 차량을 연결하는 ‘스마트 미러링’ 시스템이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스마트폰과 차량을 연결하자 스마트폰에서 켠 ‘T맵’이 차량 내 디스플레이에 그대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거나 불편한 위치에 달아놓고 작은 화면을 힐끔힐끔 보던 불편이 없어진 것은 뜻밖에 큰 만족을 줬다. 실수로 연결을 끊었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승 내내 연결 상태도 좋았다. 사고의 위험이 줄어든 것도 무시 못할 대목이다.
승차감은 매우 푹신했던 이전 모델과 달리 다소 단단하게 바뀌었다. 서스펜션(차체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시스템)을 그렇게 설정해놓았기 때문인데, 불편해졌다는 느낌보다는 안정감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크게 다가왔다. 서스펜션을 물렁물렁하게 해놓으면 승차감이 좋은 대신 고속 주행에서 안정감이 떨어진다.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조일수록 푹신한 승차감은 조금씩 잃어가지만, 안정감은 높아진다. 엔진음이나 바람 소리가 차 안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정숙성은 이전 모델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듯했다.
직접 운전을 해보면 ‘패밀리 세단’에 충실한 차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초반 가속은 즉각적이지는 않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튀어나갈 수 있는 그런 차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제한 속도를 넘어서는 구간에서도 속도계 바늘은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꾸준하게 올라갔고, 힘의 부족을 느낄 일은 거의 없었다.
변속은 충격 없이 매우 부드럽게 이어지는데, 고단 기어로 빨리 넘어가지는 않는다. 엔진의 분당회전수(rpm)가 적당히 높아진 다음에야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가속페달을 꾹 밟은 채로 차를 밀어붙여 보면 시속 100㎞가 거의 다 돼서야 3단으로 변속이 된다.
만약 디젤 차를 타던 사람이라면 초반 가속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차가 패밀리 세단을 지향하는 차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족을 태우고 여유롭게 달리기에는 모자라지 않는 성능이다.
특히 주행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고속에서의 안정감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단단해진 서스펜션 덕분에 속도를 높여도 자세가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코너링에서도 마찬가지. 안정감이 향상해 시속 100㎞의 고속에서 곡선 주로를 달려도 몸이 별로 쏠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큰 브레이크를 달아 제동력이 좋은 것도 포인트다.
주행 연비는 공인연비와 다소 차이를 보였다. 대부분 국도를 이용한 첫 39㎞ 구간에서는 연비가 L당 7.5㎞가 나왔다. 평균 속도는 시속 27.3㎞였다. 이후 울산 간절곶에서 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부산 동래까지 50.7㎞의 거리를 달린 연비는 L당 6.4㎞가 나왔다. 평균 시속 44.3㎞로 다녔는데 이 구간에서는 급가속과 급제동 등 이런저런 시험을 해 연비가 더 나쁘게 나왔다.
겉모습을 보면 보닛에 두 개의 캐릭터 라인을 그려넣어 강렬한 인상을 만들었다. 앞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도 바뀌었고, LED 주간주행등과 정교한 디자인의 18인치 프레스티지 알로이 휠이 들어간 것도 변화된 점이다.
실내의 경우 뒷좌석 무릎 공간 등 공간이 전체적으로 매우 넉넉했다. 다만 뒷좌석 머리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고급 나파 가죽으로 만든 시트와 실내 마감 등은 이 가격대의 준대형 차로 손색이 없다. 조수석 왼쪽 옆면에 붙은 버튼으로 운전석에서 조수석 시트 위치와 각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놨고,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들어간 것 등은 고급차에서 볼 수 있는 요소다. 센터콘솔을 제외하고는 운전석에 수납공간이 부족해 휴대전화 등을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총평을 하자면 이곳저곳을 미세하게 튜닝하고 주요 구성품들을 조금씩 조절해 만들어낸 주행 감성의 변화, 분위기가 확 바뀐 겉모습만으로도 이 차는 분명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차다. 그동안 SM7이 받았던 저평가를 잊고 다시 평가를 해보자면, 무난함을 넘어서는 안정적인 주행감과 이런저런 고급차의 요소가 눈길을 끌었다.
현재 국내 준대형 세단 시장에서는 그랜저의 위치가 절대적이다. SM7뿐만이 아니라 많은 동급 차종들이 그랜저의 기세에 눌려 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르노삼성은 신형 SM7의 지향점을 '다름(different)'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능에 자신이 있으니 기존 차에 식상했다면 과감히 바꾸자는 의미다.
고객들이 아직도 엠블럼에 치중한 선택을 할지, 아니면 차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 보고 새로운 선택을 할지가 궁금하다. 가격은 2.5L 모델이 3040만~3490만원, 3.5L 모델이 3520만~387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