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검은 사조직]① "돈-정보 있는데, 대통령도 안부럽다"

조선비즈
  • 안재만 기자
    입력 2014.09.06 10:02

    증권업계 내의 사조직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돈을 가진 자산운용사나 연기금의 펀드매니저, 정보를 가진 애널리스트가 사조직을 만들어 주가를 움직이면서 돈을 챙겼던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그들만의 사조직’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업무의 특성상 수시로 만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주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건전하게 일하는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는 박탈감을 느끼며, 이런 과정 속에서 증권사 직원은 투자자들에게서 신뢰감을 잃고 있다. 증시 안의 검은 사조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편집자 주]

    ‘ㅇㅇㅇ 장학생이 있었다.’

    7월말 구속된 애널리스트 출신의 투자자문 대표 A씨는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가 찍어준 스몰캡(중소형주)이 그가 리포트를 쓰자마자 솟구치곤 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는 당연하다는듯 A씨가 종목을 알려주면 펀드매니저들은 차명계좌로 주식을 사놓게 됐다.

    A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종목을 추천하기 전에 차명으로 주식을 사놓았다. 이번에 사조직이 문제가 된 이유도 그가 한 종목의 워런트(신주인수권·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매입했다가 다른 투자자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혼자 신주인수권을 행사, 고점에서 팔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워런트를 5억원 가량 매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A씨와 다른 증권사 트레이더, 사학연금 펀드매니저 등 5명은 현대EP, 티피씨글로벌에 대한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문제가 됐던 ‘워런트 사건’은 사조직이 분란을 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지만, 매매 과정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씨가 관리했던 펀드매니저, 트레이더는 1974년생, K대 출신이 많아 ‘74라인’, ‘K라인’ 등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A씨 이름을 딴 ‘ㅇㅇㅇ장학생’이란 용어도 있었다고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전문가들은 모든 사조직이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A씨는 모든 매니저를 잘 관리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나만 천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사조직이 크면 클 수록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사조직,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불가능”

    ‘74라인’ 사건과 관련해 업계 관계자들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라고 말한다. 펀드매니저를 비롯한 상당수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차명계좌가 없는 증권사 직원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한 자산운용사 직원은 “대놓고 차명계좌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조금만 친해지면 회식 자리에서도 거침 없이 차명계좌와 수익률에 대해 얘기한다”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는 듯하면 ‘내가 (회사 돈이나 운용펀드로)매매하는 종목은 사지 않고, 다른 종목을 산다’고 말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또 “스몰캡의 경우 하나의 펀드가 사더라도 쉽게 올라가는 편이고 이렇다보니 매매할 때마다 더 많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사 직원은 “본인 계좌로 매매하려면 감사에 응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많지만 차명계좌는 이럴 필요가 없어 모두들 차명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상황”이라며 “최소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증권사 직원들이 차명계좌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고 털어놨다.

    사조직에 대해서도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는 펀드매니저와 만나는 것이 고유의 일”이라며 “친하면 함께 술을 마시고 골프도 치는데, 이런 것들도 모두 사조직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실적 정보를 사전 유출한 CJ E&M 사태가 논란이 됐지만, 아직도 사조직을 통해 기업 내부 정보를 전달하곤 한다”며 “과거에는 전화로 했다면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은 후 아예 방을 삭제해버린다는 게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조직이 그간 너무 방만하게 운영됐다는 말도 끊이지 않는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해 있는 휴대폰 부품업체 K사는 지난해말 스몰캡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 20여명을 데리고 중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쓴 비용만 수억원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업의 IR 담당자는 “원래는 중국 공장에 관심이 있다고 한 애널리스트 한두명만 데려 가려고 했는데 ‘같이 모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서 펀드매니저를 많이 초청해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다”면서 “나흘간 공장 탐방만 3시간 정도 하고 골프를 치며 술만 마시다 왔다. 그런데도 리포트는 거의 나오지 않아 경영진에게 무척 혼이 났다”고 털어놨다.

    ◆ 태생적으로 부패하기 쉬운 스몰캡시장

    스몰캡 시장은 특히 태생적으로 부패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단 스몰캡은 대형주에 비해 적은 자금에도 급등락한다. 게다가 워낙 많은 종목이 있다보니 감시 당국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때가 많다.

    기업과 애널리스트 또는 경제지 기자, 펀드매니저(혹은 자금이 충분한 증권사 지점)가 결탁해 움직이는 경우도 무척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기업은 유상증자 등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 대형 호재를 준비해놓고 애널리스트 및 기자와 작전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는 차명계좌와 펀드를 통해 주식을 미리 사놓은 다음 호재를 발표하고 주식을 매도하는 식이다. 이후 애널리스트는 “아직 가격 매력이 충분하다”고 홍보하고, 뒤이어 회사는 유상증자를 발표해 비교적 높은 주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모두 개인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앞서 A씨가 워런트를 매도해 고수익을 올린 회사는 1만원대에서 300원까지 주가가 추락했었다. 모든 손실은 개미가 떠안았다.

    A씨 외에도 스몰캡 출신 애널리스트로 구속된 사람은 또 있다. 증권사 출신의 C씨가 그 경우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C씨는 “스몰캡 아무리 잘해봐야 리서치센터장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돈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 요즘 나는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는 말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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