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法,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기업가를 3번 죽여"

입력 2014.08.26 15:23 | 수정 2014.08.26 18:06

'김우중과의 대화' 저자 신장섭 교수, 이헌재·강봉균 공개비판
"대우는 IMF식 구조조정의 희생양…17조 추징금 원천무효"

“대우는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 자체에 반대해서 몰락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처방을 철저히 따른 경제관료와 철학적, 감정적으로 충돌하며 김우중의 몰락이 초래됐습니다. 대우는 부실기업이 아니라 희생양 입니다.”

15년전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 대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증언이 담긴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는 26일 “대우는 성장신화를 일궜지만 구조조정을 등한시해 망한 기업으로 돼 있으나 실상은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 자체에 반대한 게 문제였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신 교수는 “김 전 회장은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국경제가 오히려 나빠진다고 봤다”면서 “당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국제금융기관이 한국경제를 관리 체제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와중에 (김 전 회장은)IMF 처방을 철저히 따른 경제관료와 철학적, 감정적으로 충돌했다” 고 강조했다.
26일 '김우중과의 대화'의 저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책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이다./유호 기자

그는 당시 구조조정을 주도한 강봉균 전 경제수석,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목하며 “IMF 당시 구조조정으로 인한 국부유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개질의했다. 또 “당시 부채비율 200%라는 일관적 기준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이 규제가 국민경제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을 향해서는 “GM과 대우간 협상이 조건을 바꿔가며 질질 끌더니 1998년 7월 깨졌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로 이야기하셨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또 대우자동차의 기술자립이 어렵다고 평가했는데, 이것이 공개 입찰 전 비밀 인수의향서가 전달된 정황과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며 “사업 맞교환이 되더라도 워크아웃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굳이 사업 맞교환을 종용했는가”라고 질의했다.

신 교수는 이 전 위원장이 (김우중 회장에게) 13조원 사재 출연과 담보를 제공하면 대우그룹 8개 계열사 경영을 보장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긴 것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13조원 사재출연하고 담보를 제공하면 8개 계열사 경영권을 보장하고 1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4조원만 지원하고 ‘김우중 회장이 경영권을 내놔야 한다’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

당시 금융당국이 대우그룹의 자산가치를 30조원 이상 축소해서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금감위원장이던 이 전 부총리가 실사 발표 후에 ‘무척 공교로운 일이다. 발표가 경솔했다’고 발언했는데 어떻게 금융위원장 모르게 발표가 이뤄질 수 있었냐”고 주장했다.

그는 ‘대우가 시장에서 외면받았다’라는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금융시장은 살얼음판 걷는듯 폭이 얇아져 있는 상태였다”면서 “금융위기를 거쳐 어느 기업이 언제 망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산된 상황에서 금융정책 당국자가 이 회사 나쁘다고 하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대우그룹 해체는)이런 자기예언적인 실현과 비슷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당시)금융관료들이 볼 때 대우 부실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하니 무역금융 허용해주면 부실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면서 “수출금융 풀어줄 수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미운털이 박혀 있으니 안 해 준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당시 은행들의 외화자금 사정이 안 좋아 지원이 불가능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998년 상반기에는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자금이 별로 없어 그럴 수도 있지만, 1998년 하반기부터 무역흑자 크게 나고 은행에 돈이 쌓였는데도 정부가 수출금융을 계속 차단하니 단기차입금이 늘었다”고 반박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과 대우차 레간자

시장이 대우를 외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1998년 7월 CP(기업어음) 등 단기자금 규제조치가 대우를 겨냥한 게 아닌가”라며 “이때 대우의 단기자금을 회수하라고 해 금융기관이 그렇게 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관료들이 ‘(대우가)외상매출을 부풀리는 밀어내기식 수출을 한다’는 얘기를 자꾸 흘리니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우의 단기차입금이 증가한 이유가 금융시스템이 막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판단했으면 다른 방식의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김우중 추징법 논의에 대해 “김우중 전 회장을 세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1999년 대우그룹 해체 후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 17조9253억원에 대해서는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추징금은 대부분 미납 상황이며 연대 책임이 있는 대우그룹 관계자 7명에 대한 것까지 합치면 미납액은 23조원을 넘는다.

신 교수는 “‘김우중 법’을 만들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기업가를 3번 죽였다고 생각한다”면서 “대우의 몰락이 첫 번째이고, 재판을 받으며 징역형과 23조원을 추징받은 게 두 번째다. 이는 희생자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부관참시였다”고 주장했다. 또 “사실 책이 작년 8월에 나올 예정이었으나 일명 ‘김우중법’으로 불리는 추징법안 때문에 (출간이)1년 늦어졌다”며 “책에도 추징금이 ‘완전무효’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외신에 보도된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

신 교수는 이어 “한국 사회에선 이상하게 IMF 금융위기 이후 외국기업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갖고 있는데 스티브 잡스도 위대하지만 한국 젊은이에겐 김우중, 정주영처럼 한국에 뿌리를 두고 세계에 나가 성공한 기업인에게 배울 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잡스와 김우중 회장은 상상력이 뛰어나고, 완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함에도 국내에서는 잡스에겐 열광하고, 김우중에겐 부실기업인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이어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의 요체는 작은 나라인 한국이 성장하려면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돈을 벌어오자는 것이었다”며 “김 전 회장이 78세로 고령이지만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대우인'을 만드는 선생으로서, 국가 원로로서 재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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