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우중 15년만의 고백 "DJ 경제팀이 뒤통수쳤다"

입력 2014.08.21 18:52 | 수정 2014.08.28 13:20

김우중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 단독 입수
DJ와 전화통화 "3~6개월만 나가 있으면 잘 되도록 하겠다"
"정부가 대우차 잘못 처리해 한국경제 손해본 금액 210억달러 넘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조선일보 DB
“DJ 정부 경제팀이 (대우가 삼성차를 인수하고 대우전자를 삼성에 내주는) 빅딜을 강요했고, 무산시킨 것도 그들이다. 사재 출연을 포함해 13조원의 자산을 채권단에 맡기면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더니 담보로 다 내놓자마자 워크아웃으로 넘겨버렸다. 법정관리로 가면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 대우자동차를 GM에 헐값에 넘기는 바람에 결국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나더러)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룹이 해체된 지 15년만에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대담 형식으로 지은 책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다.

조선비즈는 오는 26일 출간 예정인 이 책의 초고를 단독 입수했다. 출판사와 인쇄소에서 제공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인쇄소에서 버려진 폐지들을 모아 책을 재구성했고, 이 내용을 최초로 공개하기로 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책에서 대우그룹이 경제관료들에 의해 억울하게 해체됐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그 결과는 한국 경제에 막대한 피해로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김 전 회장이 당시 상황에 직접 상세히 증언을 한 것은 1999년 해외로 출국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밖에도 김 전 회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 대북 특사로 임명돼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20회 이상 만난 이야기 등 그동안의 비화를 육성으로 밝혔다.

김우중과의 대화 책/강도원 기자
김 전 회장은 IMF 외환위기와 그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된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 IMF 사태와 함께 출발한 DJ 정부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으며 주요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관료들과 갈등을 겪은 내용도 포함됐다. 김 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조심성이 많아 여러 의견을 듣길 원해 경제 관련 회의에 종종 참석했다”면서 “금 모으기 운동도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책에는 DJ가 김 전 회장의 의견을 듣고 보류하거나 기각하는 정책이 생겨나면서 관료들의 반감이 시작됐고, 특히 김 전 회장의 생각이 ‘IMF 식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관료들의 생각과 달리 ‘수출을 늘려 IMF를 벗어나자’는 쪽이어서 갈등이 깊어졌다는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며 대우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고 김 전 회장은 말한다. 한 예로 김 전 회장은 대우자동차에 GM의 투자를 받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것을 관료들이 막았다고 했다.

“우리 대우를 좋지 않게 보던 정부 관계자들이 GM 사람들에게 안 좋은 얘기들을 해서 협상을 방해했을 수도 있겠지요. 나는 경제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어요. 유동성 규제를 할 때에도 대우만 겨냥한 조치를 내놓고, DJ에게 우리 부채 상황을 보고 할 때도 ‘밀어내기 수출이다’, ‘외상매출이다’ 하며 수출금융을 해주지 않은 잘못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웠지요. 나중에 삼성과 ‘빅딜’을 할 때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딜이 깨지도록 방해했어요.”
1999년 7월 27일 오전 제일은행 본점에서 이헌재(가운데)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과 대우그룹 채권은행장들이 회의를 한 후 이야길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이갑현 외환은행장, 류시열 제일은행장, 이헌재, 이강륭 조흥은행 부행장, 이수길 한빛은행 부행장/조선일보 DB
삼성과의 빅딜 역시 정부가 강요했고, 나중에 훼방을 놓은 것도 정부였다고 김 전 회장은 강변한다. 당시 정부와 삼성, 대우 사이에는 삼성차를 대우에 넘기고 대우전자를 삼성에 넘기는 빅딜이 논의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김 전 회장은 “대우에게 삼성차는 필요가 없었지만, 정부가 강하게 권한데다 그렇게 하면 유동성 문제를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경제 관료들은 나중에 오히려 빅딜을 막았다”고 했다. 빅딜이 된 다음에 대우를 망하게 하면 처음부터 빅딜을 잘못 추진한 거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경제 관료들이 우려했다는 것이다.

“(빅딜이 진행되는 동안)이헌재씨를 한두 번 만났는데 ‘대우를 어떻게 부도야 내겠습니까?’라고 말해요. 그러면 회사를 살리는 쪽으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헌재씨가 그런 것은 법정관리로 가는 것을 막고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이어 김 전 회장의 사재 출연을 포함한 1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냈지만 결국 뒤통수를 맞았으며 이후 대우 그룹이 해체됐다고 김 전 회장은 증언하고 있다. 1999년 7월 김 전 회장은 사재 출연 1조3000억원을 포함해 13조원을 채권단에 맡기고 자동차 부문과 ㈜대우 등 8개 계열사 회생에만 전력하겠다는 ‘대우 유동성 개선을 위한 자구방안’을 내놨다. 김 전 회장은 이것이 정부가 금융 지원과 8개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서 낸 자구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다시 유동성 위기가 시작됐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생각이다.
김우중과의 대화 본문 중 이헌재 전 금감원장을 언급한 부분/강도원 기자

그는 관료들이 지분을 다 내놓게 한 뒤 마음대로 대우 계열사를 처리하기 위해 이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적인 워크아웃에서는 기존 경영진을 인정해주고 경영진과 채권단이 협력해서 기업을 살리면 경영권을 돌려주지만, 관료들이 그렇게 하기 싫었다는 것. 특히 삼성은 법정관리를 허용하고 대우는 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생각이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자구안이 나온 당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우중 회장이 말한 퇴진 시한과 관계없이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조만간 손을 뗄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발표로 뇌관 제거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순간부터 이미 대우는 해체 수순으로 갔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시각이다.

“법정관리로 가면 법원에서 법절차에 따라 해결하니 자기들 마음대로 못 하게 되지요. 우리가 순진하게 사재도 출연하고 담보를 다 내놓으니까 워크아웃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거예요. ‘뇌관을 제거했다’는 것이 채권시장 안정 핑계를 댔지만 결국 나를 대우그룹에서 제거했다는 얘기지요.”
대우그룹 본사 직원들 모습/조선일보 DB

이후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유럽·아프리카 출장을 떠났다. 여러 경로로 해외에 나가 있으라는 얘기가 들어왔고 DJ에게 전화해서 “3~6개월만 나가 있으면 정리해서 잘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주장이다. 이기호 경제수석과도 만나서 다짐을 받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2005년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이후 해체된 대우의 각 계열사가 대부분 정상화됐다는 점을 들어 당시 대우를 부실로 낙인 찍은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우의 12개 계열사 장부상 자산가치 91조9000억원이 실사 결과 30조7000억원 줄어든 61조2000억원으로 나온 것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금융감독원 지시를 받은 회계법인이 기계 설비는 고철 값으로 계산하고 공장 건물은 아예 값을 안 치는 등 가치가 있는 자산까지 50% 또는 0%로 평가했다는 것.

“경제팀이 잘못 판단해서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 봅니다. 처음 워크아웃 할 때부터 대우차를 쓰레기 취급했으니까요. GM이 대뜸 우리와 협상하던 가격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값에 사겠다고 한국 정부에 편지를 보낸 것도 그것 때문이지요. GM은 우리가 독자 개발한 모델이 탐났으니까 합작하자고 한 거예요. 남들은 없는 것도 잘 포장해서 비싸게 팔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그때 우리가 잘 가지고 있는 것도 쓰레기라고 대문짝만하게 얘기해놓고는 이 물건 살 사람 없느냐고 찾아다니고 있었던 셈이지요.”

김 전 회장은 GM이 대우를 거의 공짜로 인수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부실자산 다 빼고 우량 자산만 골라서 가질 수 있게 한데다, 1조원 이상을 투자한 신모델도 그냥 넘겨줬고, 대우중공업에 있던 티코 생산 라인도 대우차 팔 때 함께 줬다는 것 등이 이유다. 김 전 회장은 “GM이 현찰 4억불밖에 내지 않았는데 산업은행이 20억불 자금 지원을 해줬다”면서 “정부가 우리를 워크아웃에 집어넣으면서 실사했을 때 청산 가치로 나쁘게 평가했는데도 대우차 자산 가치가 110억불(약 13조원)가량 나온 것과 비교하면 한국 경제가 110억불의 돈을 날린 셈”이라고 했다.

김 전 회장은 정부가 대우자동차를 잘못 처리해서 한국경제가 손해 본 금액이 결과적으로 210억달러가 넘는다"며 "한국이 외환위기 때에 IMF에서 빌린 돈 만큼 많은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자동차 산업 구도를 봐도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2사 체제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독과점 체제가 됐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또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절 대북 특사로 임명돼 김일성 전 북한 주석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때 김 전 주석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약속했을 당시에도 김 전 회장이 막후에서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

대북 특사로 활동할 당시 김 전 회장은 당시 김일성 전 주석을 20여 차례 만났으며,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했다고 회술했다. 그는 1991년 남북 정부 간 화해와 협력에 대한 첫 번째 합의문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추진했을 당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강하게 반대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은 이같이 북한을 수시로 방문했음에도 자신의 행보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때는 내가 북한에 그렇게 많이 다니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면서 “중국에 가면 거기서 이북(북한) 패스포트(passport·여권)받아 VIP 수속 하고,나올 때도 그걸로 수속해서 나왔으니까…”라고 소개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가까웠다”면서 “(한번은)와이프(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와 함께 갔는데, 김 주석이 와이프의 직선적으로 얘기하는 스타일을 더 좋아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우가 수출에 기여한 것 때문에 1969년부터 매년 산업훈장을 받았는데, 나를 좋게 보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 없이 훈장만 주는 데 나한테는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우리 부산공장도 방문하셨다. 그 후 고민이 생기면 일 년에 몇 번씩 청와대로 나를 불러서 얘기를 들으셨다. 비서관 없이 단독으로….”

또 “박 대통령께서는 나를 아들처럼 아껴주셨다. 나를 ‘김 사장’이나 ‘김 회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중아’라고 부르셨다. 나도 박 대통령을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도 했다.

김 전 회장은 경영관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수 풀어냈다. 예들 들면 IMF 위기 당시 ‘경영의 달인’으로 추앙받던 잭 웰치 GE 회장의 경영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람 잘라서 이익 늘리는 사람을 어떻게 경영자라고 할 수 있나.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직원들을 데리고 어려울 때도 잘 이겨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경영자다. 일 시킬 때는 같이 열심히 하자하고 경영이 어려워지면 고용 유지 못 한다며 나가라는 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사람 자르는 건 회사가 망할 때나 할 수 없이 하는 거다.”

김 전 회장은 주가 올리는 것을 경영 목표로 세워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했다. 과거 대우의 세계 경영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가 가진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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