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합병한 다음카카오의 중요한 화두(話頭) 중 하나는 호칭 통일 문제다. 카카오는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영어 이름을 쓴다. 김범수 이사회 의장은 '브라이언(Brian)', 이석우 공동대표는 '비노(Vino)'다. 출근길에 이 대표를 만나면 '사장님,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비노, 굿모닝' 하는 식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직급 없이 한글 이름 뒤에 '님' 자만 붙인다. '지은님' '철수님' 하는 식이다.

카카오 이수진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사소한 것 같지만 두 회사가 이미 10년 정도 이 같은 호칭을 써오다 보니 어느 방식으로 결정하느냐가 직원들 사이에선 초미의 관심사"라며 "최종안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각자 서로의 방식을 존중해서 불러주고 있다"고 했다.

IT·벤처 '호칭 파괴' 보편화

대기업에선 '사장님' '부장님' 같은 직급 호칭이 자연스럽지만, IT·벤처업계에선 이 같은 '호칭 파괴'가 점차 대세(大勢)가 되고 있다. 권위적인 문화를 없애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목적인데, 업무의 효율성이 저해되거나 서로 간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바일 소개팅 앱을 운영 중인 소셜데이팅 업체 이음은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나만의 별명'을 만들어 부른다. 김도연 대표는 '3~4월(March~April)'을 좋아해 'MAP(마프)'라는 별명을 쓴다. 최고경영자란 뜻에서 직원들이 그냥 '세오(CEO)'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영지원팀에서 구매를 담당하는 직원은 '갑(甲)'과 발음이 유사한 'GAP'이란 별명을 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실명(實名)은 잘 모른다.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는 최근 직원이 늘면서 직급 대신 '정웅님' '의중님'처럼 이름만 부르는 문화를 도입했다.

도입 이유는 비슷하다. 젊은 창업자들이 많다 보니 '20대 억대연봉 사장' '30대 신입사원'이 공존(共存)하는 등 나이와 직급 간 상관관계가 희박한 데다, 자칫 직급이 벤처 특유의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1994년 창업한 넥슨은 자유로운 소통과 업무 효율 사이에서 고민하다 '호칭 문화'를 두 번이나 바꿨다. 작은 게임회사로 시작해 2009년 직원 700여 명의 대기업으로 클 때까지 넥슨엔 '형, 동생' 하는 문화가 보편적이었다. 직급을 잘 모르다 보니 외부 미팅을 할 때나, 은행 대출과 같은 사적(私的)인 업무를 볼 때도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2009년 '직급호칭제'를 도입했다가, 5년여 만인 올 3월 다시 '~님' 호칭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임형준 인재선발팀장은 "갑작스러운 호칭 변경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직원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의견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업무 비효율 등 부작용도

별명으로만 소통하다 보니 각종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지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이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했길래 거절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 동료의 본명이더라고요." "회사에 택배가 오면 주인을 찾아주느라 직원 명단을 검색하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져요." "밖에서 너희 회사에 '누구 있지 않느냐'고 묻는데 '실명을 얘기하면 잘 모른다'고 했더니 황당해하더라고요." 일각에선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 것이 또 다른 '문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아니냐는 비판도 한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이름과 함께 사원·주임·선임·책임·수석 등 직급 호칭을 고집한다. 김봉진 대표는 "자유로운 소통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선 수직적인 질서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도 '직급 호칭'을 유지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 같은 호칭제도를 도입했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KT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며 2009년 팀장급 아래 직급(사원~부장)과 호칭을 '매니저'로 단일화했다가 5년여 만인 지난달 이를 원상복귀시켰다. 김철기 상무는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아 업무 효율이 저해되고, 승진해도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등의 지적이 있어 직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되돌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