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선물 아닙니다… 장난감에 지갑 여는 어른들

조선일보
  • 채성진 기자
    입력 2014.05.23 03:04

    [200만원짜리도 덥석… 어른들의 장난감 '키덜트 시장' 7000억 규모로 급성장]

    백화점 매출 2배 가까이 치솟아… 200만원 플라모델 한달 30개 팔려
    못가졌던 어린 시절 회상하며 소비, 옷·가방·액세서리에도 확산 추세

    이달 19일 낮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백화점 7층의 '타미야 플라모델 팩토리(Tamiya Plamodel Factory)'. 실제 크기의 14분의 1로 축소해 정교하게 제작한 1m 크기의 트레일러 플라모델(플라스틱 조립식 모형 장난감)이 성인 남성 쇼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가격은 47만3000원. 모터와 전자 변속기를 달고 무선 조종기까지 갖추면 이 제품 가격은 180만~200만원으로 오른다.

    그런데도 야외 활동이 많은 봄·가을에는 매월 30대 넘게 팔린다. 민경찬(38) 매니저는 "최근 동호회나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30~50대 '키덜트' 직장인들이 하루 수십 명씩 찾아온다"며 "아빠가 시작한 취미가 가족 취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타미야 트레일러 플라모델(모터·변속기·무선조종기 포함), 건담 덴드로비움 모형, 마리아 솔레(MARIA SOLE)의 레고 디자인 클러치백 사진
    왼쪽부터 타미야 트레일러 플라모델(모터·변속기·무선조종기 포함), 건담 덴드로비움 모형, 마리아 솔레(MARIA SOLE)의 레고 디자인 클러치백.

    건너편 '건담 베이스(Gundam Base)' 매장 한가운데는 어른 키 높이의 대형 건담 모형이 서 있다. 유리관 안에 전시된 '아폴로 13호 새턴 V' 세트는 76㎝짜리 모형이 74만3600원. 144분의 1로 축소했다는 덴드로비움(Dendrobium) 모형로봇은 36만4000원이다. 염창선 아이파크백화점 대리는 "7층 토이 매장 15곳 중 절반이 키덜트 매장"이라며 "올해 월별 매출이 작년에 비해 50~9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자동차 등 '작동형 장난감' 인기 폭발

    '키덜트 산업'이 꿈틀거리고 있다. 키덜트는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 장난감이나 캐릭터 상품 등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려주는 상품에 소비를 아끼지 않는 어른을 가리키는 신조어(新造語)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경제학)는 '트렌드 코리아 2014'에서 올해의 10대 소비 키워드 중 하나로 키덜트를 꼽았다. 그는 "'유예된 욕망'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현재의 경제력'이 키덜트 산업을 지탱하게 만드는 두 기둥"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백화점 ‘타미야 플라모델 팩토리’에 전시된 플라모델들. 정교하게 제작된 축소 모형들이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백화점 ‘타미야 플라모델 팩토리’에 전시된 플라모델들. 정교하게 제작된 축소 모형들이다. /이태경 기자
    최근 키덜트 산업은 로봇이나 자동차·항공기 모형, 레고 등 '조립·전시형'에서 첨단 기술을 접목해 직접 조종할 수 있는 '원격 작동형(remote control)'으로 바뀌고 있다. 국내시장 규모는 매년 20%씩 급성장해 현재 연간 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의사나 회계사 등 구매력을 갖춘 전문직 고객들이 시장을 선도하며 가족 단위 고객들이 두꺼운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의 키덜트 산업은 각각 14조원과 6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올해 1월 독일 남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65회 완구박람회(Spielwarenmesse)에서도 키덜트 제품이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60여 개국 2700여 업체, 7만2000명의 관람객이 참가한 이 박람회에서 눈길을 끈 제품은 레벨(Revell)사가 제작한 '나노 쿼드(Nano Quad)'. 프로펠러가 4개인 초소형 무선조종 헬리콥터였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장난감 헬기지만 순식간에 50m 상공으로 치솟는다. 이 제품은 박람회에서 '2014 토이 어워드(Toy Award)' 청소년·성인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충경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스마트폰으로 조종하는 헬리콥터 제품도 나오고 있다"며 "최근 급성장하는 작동형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고 말했다.

    '만화 세대' 겨냥한 키덜트 名品도 봇물

    최근 키덜트 산업은 캐릭터가 그려진 의류나 신발, 액세서리 등 패션·가전·생활용품까지 확대되고 있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고수하던 명품 업체들도 30~50대를 겨냥해 '키덜트류 감성(感性)'을 접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하는‘마리아 솔레(MARIA SOLE)’의 클러치백(147만원)과 티셔츠(29만~43만원)가 대표적이다. 블록 완구인 ‘레고’ 디자인을 활용한 제품이다.

    청소년기에 미키마우스 만화를 보고 자란 30~40대 감성에 맞춰 의류업체 (LAP)은 미키마우스 이미지를 새긴 5만9000원짜리 티셔츠를 올 2월 내놓아 일주일 만에 4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인 브루노말리의 ‘디즈니 에디션’은 어른용 가방과 지갑 등에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캐릭터를 입혀 인기를 끌고 있다.

    핀란드 식기 브랜드인 이딸라는 ‘핀란드의 뽀로로’라 불리는 ‘무민(Moomin)’의 앙증맞은 이미지를 활용한 머그잔(개당 6만1000원)을 내놓아 키덜트들을 사로잡고 있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 보브(VOV)는 바비 인형 콘셉트를 빌려 인기몰이 중이다.

    이달 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아트 토이 컬처 2014 서울전(展)’에서 예술 작품형(型) 장난감이 대거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전시회에는 국내외 작가 100여명이 1000여점을 출품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윤성현 용인송담대 토이캐릭터창작과 교수는 “날로 발전하는 3D 프린팅 기술과 맞물려 앞으로 더 정교하고 다양한 키덜트 상품들이 쏟아져 나와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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