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직장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긴 김동수(34)씨는 요즘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토록 원하던 해외영업 부서로 발령 났기 때문이다. 그는 셋톱박스(방송수신기기) 제조사 가온미디어에서 북유럽, 러시아, 아시아 지역 바이어에게 통신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해외 근무 경력을 살려 본인이 원하는 분야로 국내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다. 그가 해외영업 직무에 흥미를 느끼게 된 때는 7년 전. 대학 졸업 후 처음 얻은 직장에서였다.
대전 한밭대학교에서 정보통신공학과를 전공한 김씨는 2007년 미국계 기업 내셔널인스트로먼트의 한국 지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국내 바이어에게 계측 장비를 판매하는 기술 영업을 맡았다. 구매자를 상대하고 설득하는 영업 업무에 재미를 느낀 김씨는 해외영업으로 업무 범위를 넓히고 싶어졌다. 하지만 국내 바이어를 상대해 온 김씨가 해외영업 부서로 옮기기엔 경력이 다소 부족했다. 해외 체류 경험도 대학교 시절 1년 정도 미국에 머물렀던 것이 전부였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해외영업직을 맡지 못한다면 해외로 나가 현지 경력을 쌓고 다시 도전하자고 마음먹었다. 취업포털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해외 일자리를 알아봤다. 어느 날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수리하는 미국의 리버피싱(중고 제품 개조·refurbishing) 업체 RSI에서 한국인 기술자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김씨의 전공과 그간의 경력과 딱 들어맞는 자리였다. 채용이 확정되자마자 취업비자를 얻어 2011년 2월 미국으로 떠났다. 고장 난 휴대전화를 수리하는 기술자(테크니션)로 시작한 김씨는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생산현장 관리자, 회계 관리자(어카운트 매니저)로 진급했다.
김씨는 “타지 생활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조금만 참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고 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국내 기업 중 해외영업 자리가 있는지 살펴봤다.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관심이 가는 기업은 적극적으로 두드렸다. 2년 정도 경력이 쌓이자, 김씨에게 들어오는 제안도 많았다. 그 가운데 헤드헌팅 회사 커리어케어에서 현재 김씨의 직장인 ‘가온미디어’ 해외영업 직무 제안이 들어왔다.
김씨는 “‘도피성’으로 해외에 나간 것이 아니라 커리어 개발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며 “해외에서 관련 경력을 잘 쌓고 돌아온 덕에 원하던 직무를 맡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국내 재취업, 금의환향 되려면? 목표·타이밍·전문성 삼박자 갖춰져야
유학파가 증가하고 해외 취업이 점차 확산하면서 김씨처럼 ‘국내 리턴 취업자’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결혼, 가족, 비자 문제로 국내로 돌아오기도 하고 김씨처럼 국내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한다.
해외에서 국내로 이직할 때 중요한 것은 뚜렷한 목표 설정이다. 한국에 돌아와 어떤 직장에서 어떤 업무를 맡을 것인지, 해외 근무 경력을 어떻게 연결지을 것인지 목표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영혜 커리어케어 상무는 “경력자 대상 면접에서는 이직 사유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 ‘도피성 이직자’인지 꼼꼼히 가려낸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이직 사유를 분명히 밝히고 해외에서 쌓은 경력이 앞으로 업무에 어떻게 연결되고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두라”고 조언했다.
‘적절한 이직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다. 최동미 HR Korea 과장은 “비슷한 경력을 갖췄더라도 시장과 기업 상황에 따라 경력을 더 인정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경력을 최대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직 시점을 노려라”고 조언했다.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회사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회사는 다방면에서 인력 수요가 크다. 최근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중견기업도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있어 해외 근무 경력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임혜진 사람인 헤드헌팅사업본부 책임컨설턴트는 “정보통신(IT)기업, 호텔 서비스직, 플랜트 시공, 외국 항공사 종사자의 경우 국내 재취업이 활발한 편”이라며 “현지 외국어 구사력과 직무 전문성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임 컨설턴트는 “한국에 오면 모국어를 쓰기 때문에 직무의 깊이가 깊어지는 편”이라며 “더 심도 있는 직무를 맡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해외 근무 경력을 살려 국내 재취업에 도전해보라”고 말했다.
본인만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강순영 HR코리아 이사는 “단순한 언어 능통자보다는 지역과 직무 전문가가 되라”고 조언했다. 해외 경험이 전문 경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언어뿐 아니라 현지 국가의 경제,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현지에서 다양한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재취업 시 큰 강점이 된다.
◆ 국내 기업에 재취업하기 원하는 해외취업자가 자주 묻는 질문 5선
-외국에 오래 머물다 보니 국내 구직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구직 시장 정보와 채용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인, 잡코리아, 인크루트 등 국내 주요 취업 포털사이트나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을 수시로 확인해라. 헤드헌터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좋다. 단순히 취업 포털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했다고 연락이 오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마라. 본인의 상황이 바뀌거나 원하는 직무가 달라지면 헤드헌터에게 변동 사항을 알려라. 헤드헌터와 자주 접촉하면 실시간 업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용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헤드헌팅 회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헤드헌터 이메일이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채용될 경우 구직자에게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비용은 구인하는 기업이 지불한다.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경력 상담이나 이력서 관리, 면접 준비 등 채용 전반에 대한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 헤드헌팅 회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피플앤잡’이 유명하다. 이곳에 정규직뿐 아니라 계약직, 파견직 등 다양한 외국계 기업 채용 공고가 나와 있다.” (임혜진 사람인 헤드헌팅 사업본부 책임컨설턴트)
-연봉은 어떤 기준에 맞추나.
“연봉을 결정할 때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다. 단순히 해외에서 받았던 금액에 환율을 적용해 받는 것이 아니다. 연봉 협상 과정에서 직급, 경력, 기존 연봉, 직무 등 다양한 사안을 고려한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라 판단해 스카우트할 때는 국내에서 비슷한 근속연수를 가진 사람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주기도 한다.” (최경숙 HR코리아 부사장)
-경력직 이력서는 어떻게 써야 효과적인가.
"경력직일수록 이전 직장에서 거둔 성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젝트명, 진행 날짜 등을 기재하고 본인이 업무를 맡은 뒤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수치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 좋다. 기업이 경력직을 찾는 이유는 당장 업무에 투입될 사람이 필요해서다. 본인이 직무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이영혜 커리어케어 상무)
-전 직장상사 추천서가 필요한가.
“많은 기업이 채용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평판조회’를 한다. 따라서 추천인을 이력서에 명시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자신의 성과와 품성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추천인을 2~3명 정도 기재하면 좋다. 이 경우 직속 상사를 포함하는 것이 좋다.” (최경숙 HR코리아 부사장)
-한국에 대한 향수병으로 국내 재취업을 하려 한다. 이직 사유를 솔직하게 밝혀나 되나.
“괜찮다. 가족이나 결혼 문제는 근무처를 해외에서 국내로 옮기려는 구직자들이 가장 많은 꼽는 이유다. 국내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척이 아프셔서 국내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인사 담당자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유다. 이직 사유는 솔직하게 말하되, 직무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자신감을 보여주면 된다.” (이영혜 커리어케어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