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이달 중순 이후 하루 평균 매출이 지난달 비슷한 시점보다 30%가량 줄었다. 특히 저녁에는 술 손님이 끊겨 점포가 썰렁하다.

예년 이맘때도 주말 야외 나들이를 위해 평일 소비를 줄이려는 손님들 탓이 매출이 줄긴했다. 그러나 올해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술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평소보다 손님이 크게 줄었다. A씨는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음식점 종업원들도 손님이 없어 TV만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 사태인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애도하기 위해 정부, 기업, 개인 소비자가 대내외 활동을 자제하면서 내수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내수경기 위축은 카드사 매출 감소로 확인할 수 있다.

22일 카드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이후 5일간 카드사의 일간 매출이 지난주 동일 대비 3.7%에서 많게는 8.8% 가량 하락했다.

내수경기를 떠받치는 정부·기업·국민이 소비를 자제한 탓이다. 삼성, LG, 롯데 등 주요 그룹은 사고 발생 당일부터 임직원에게 지나친 음주나 외부활동을 자제하도록 지시했다. 당초 예정된 행사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내수 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유통업계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판촉 활동이나 행사를 자제하고 있다. 상당수 유통업체는 광고마저 중단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자녀와 형제를 잃은 유족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다.

CJ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중 상당수가 식음료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들 제품의 광고 콘셉트가 화목한 가정, 즐거운 연인 등이어서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광고를 내보내기 무척 조심스럽다”며 “내부회의를 거쳐 TV광고 등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최근 제작한 광고를 폐기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제작을 마친 TV광고 콘셉트가 젊음과 시원함이 넘치는 즐거운 술자리고 광고의 주요 소품 중 하나가 물이었는데 세월호 침몰사고를 연상하게 한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광고를 중단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고서 국민 정서가 안정되면 광고를 방송할 수 있지만 일정은 미정이다”라고 말했다.

참사 보도에 이목이 쏠리고 판촉 행사나 프로모션 방송을 취소하면서 홈쇼핑 업계의 매출도 급감하고 있다. CJ오쇼핑은 지난 주말 매출이 전주보다 20.0% 줄었다. 16일부터 20일까지 GS샵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대형마트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마트는 사고발생 이틀째인 17일부터 20일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7%, 의무휴업이 없던 2주 전(3∼6일)보다 1.25% 감소했다.

백화점도 봄 세일 막바지에 참사 여파로 매출이 부진했다. 롯데백화점의 18∼20일 매출은(기존점 기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 줄었다. 현대백화점도 이달 들어 20일까지 13개 점포의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 동기대비 5.0%에 달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난주(14∼20일) 매출은 오히려 0.5% 감소했다.

여행업계는 봄철 수학여행 성수기를 맞았지만 사고 뒤 수학여행이 전면 중단되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사고의 희생자 상당수가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이란 점을 고려해 올해 1학기 수학여행을 중지토록 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이를 받아들여 올 1학기에 수학여행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 산하기관이 주관하는 청소년 단체 여행이나 외국인 방한 행사도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통영·무주·제천에서 관광 주간(5월 1∼11일)에 맞춰 열려던 ‘청소년 맞춤형 체험여행 프로그램’을 취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로 전 국민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으면서 내수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며 “국가적인 재난 탓이라 소비 진작을 위해 판촉 활동을 벌일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될 분위기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 입장에선 시간이 흘러 소비자의 심리가 치유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