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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後] 규제는 '암덩어리'가 아니다

  • 김주현 기자

  • 입력 : 2014.04.22 10:30

    김주현 산업부 부장대우
    김주현 산업부 부장대우
    별 일 있겠냐 했을 것이다. 그깟 규정 몇 개 안지킨다고 문제가 있겠냐 믿었을 것이다. 그러니 출항 때 화물 1157톤과 차량 180대를 싣고도 보고는 화물 657톤과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거짓말 했을 것이다. 과적 운행 하는 화물트럭도 별 일이 없는데, 인천서 제주 가는 항로가 험난한 것도 아니고 태풍이 오는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실어 돈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부도 은근히 이 업체 편을 들어줬다. 규제를 완화한다고 내항여객선 사용가능 연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늘려줬다. 그래서 일본에서 건조된 지 18년된 배를 들여와 개조했다. 840명인 정원도 956명으로 늘리고 무게중심도 바뀌었지만 정부기관은 아무 문제 없는 듯 운행허가를 내줬다.

    화물량도 속이고 탑승 인원도 대충 보고했지만, 정부나 해경, 해운조합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니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까짓 소소한 출항 규정 어긴다고 배가 가다 침몰하겠냐 했을 것이다.

    규정 무시는 계속된다. 선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세월호는 항로 인근 진도관제센터에 연락하지 않고 목적지인 제주관제센터에 연락했다. 인근 선박들도 알 수 있는 공용채널은 사용하지 않았다. 관제센터는 관할을 찾다가 사고 초기 24분을 그냥 보냈다. 구명정은 펴지지도 않고, 배에 남아 승객들을 구호해야 할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은 자기 목숨만 챙겼다. 제자리를 지키라는 말을 믿은 애꿎은 학생들만 생사확인도 안된 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구조작업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고 정부 당국자는 “확인하겠다”는 말만 입에 달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규정이나 규제에 얼마나 무관심했는 지 보여준다. 자기 이득 앞에서는 모두의 안전이나 행복을 위해 지켜야하는 것들이 무시된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한다고 내항 여객선의 수명을 연장하지만 않았어도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선박 개조 규정을 엄격히 관리했어도 세월호를 개조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구에서 출항 규정을 엄격히 챙겼더라면 화물을 과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장이 매뉴얼에 따랐더라면 대부분 승객이 구조됐을 것이다…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해도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지키지도 않은 규정이나 규제를 풀려고 하고 있다. 대통령이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말한 데다, 규제를 푸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컨데 산업단지에 완충녹지라는 게 있다. 공업지역에서 생기는 각종 오염원이나 공해를 주거·상업지역과 분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완충녹지 상부에 석유화학 배관 등의 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스나 기름유출 사고가 생기면 민간인 거주 지역이 바로 오염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이란 말이 있다. 하딘(G. Hardin)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밝힌 이론이다. 여럿이 공유하는 목초지에 가축을 너나없이 방목하면 결국 풀이 고갈돼 손해를 본다는 내용이다. 한국사회라는 ‘공유지’에 우리는 규정을 안지켜도 큰 일이 없다는 핑계로 너나없이 ‘쓰레기’를 던진다. 물에만 뜨면 된다는 식으로 화물을 과적하고, 승선인원을 속이고 하는 식이다. 또 기업들은 자기 편의를 위해 민간인 주거지역의 오염 가능성도 무시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사회 전체의 공멸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은 일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규정만 제대로 지키고 규제만 제대로 했어도 없었을 일이 우리나라를, 세계를 어떻게 바꿨을 지 모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앗아갔다. 불행히도 이런 사건은 예고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규제는 ‘암덩어리’ 따위가 아니다. 일단 제대로 지켜보고 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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