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울리는 금융용어] 암보험 들었는데… '외계어(外界語)' 약관 내세워 보험금 깎아

입력 2014.04.15 03:04

[2] 콜센터 직원도 모르는 보험약관

경계성 종양·상실 수익액 등 100쪽 넘는 약관엔 암호투성이
금융 민원의 절반이 보험 관련

경기도 시흥에 사는 최모(50)씨는 2002년 한 생명보험사에서 암 보험을 들었고 최근 대장점막내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암 진단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로부터 "대장점막내암은 상피내암으로 경계성 종양과 같게 취급된다. 보험금을 일반 암 진단 보험금의 20%밖에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최씨는 "보험 설계사는 암 진단만 받으면 무조건 돈을 줄 것처럼 얘기했는데, 인제 와서 '경계성 종양' 운운하다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계성 종양' '악성 신생물' '표준질병사인분류'…. 국민의 대다수가 가입한 보험의 설명서와 약관에 적힌 설명이 너무 어려워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모든 암 보장' '입원비 전액 보장' 같은 설명을 듣고 덜컥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은 보상을 받아야 할 시점에 100쪽이 넘는 약관의 암호 같은 문장에 가로막혀 당혹하기 일쑤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국장은 "보험 상품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약관과 설명서도 점점 난해해지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보험 설명서를 쉽고 명확한 말로 풀어 쓰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계성 종양요? 암은 아닌데 암인 것 같고…"

본지가 소비자 불만이 많은 보험 약관의 내용을 보험사 콜센터에 전화해 물어본 결과 이를 명확하게 설명한 직원은 거의 없었다. 보험금을 일반 암보다 적게 지급하는 '경계성 종양'은 전이가 잘되는 악성 종양과 전이가 잘되지 않는 양성 종양의 경계에 있는 암이라는 뜻이다. 보통 일반 암에 비해 보험금을 20% 정도만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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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기자
보험 약관은 보통 경계성 종양을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의 기본분류에 있어서 별표3〈행동양식 불명 또는 미상의 신생물 분류표〉에서 정한 질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표에 적힌 병명 역시 '구강 및 소화기관의 행동양식 불명 또는 미상의 신생물' '중이·호흡기관·흉곽 내 기관의 행동 양식 불명 또는 미상의 신생물'처럼 전문 의학 용어로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경계성 종양이 정확하게 무슨 암을 뜻하는지 알아보려 A생명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경계성 종양이라고 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고객)" "아… 저희도 명확하게, 정확하게 구별하는 건 아닌데요. 암은 아니신데 암인 것 같고 그런 경우에 진단이 되는 것 같아요(콜센터)" "암은 아닌데 암이라고요?(고객)" "암은 암으로 진단이 되는데 암이 아니면 경계성 종양이라고 말을 하더라고요(콜센터)" "대장점막내암은요? 그게 경계성 종양일 수도 있다고 누가 그러던데요?(고객)" "네? 그건 경계성 종양은 아니고 암이긴 한데요(콜센터)"…. 직원은 경계성 종양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B 생명보험사 콜센터 직원은 경계성 종양에 대해 완전히 틀린 정보를 말해줬다. 이 상담원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3분여가 흐른 뒤 이렇게 설명했다. "병명으론 말씀드릴 수가 없고 질병 코드로 D45, D46, D47.1, D47.4…." 이 상담원이 말하는 '질병코드'는 보험금 지급에 기준이 되는 통계청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표'를 말하는데 D45 등은 경계성 종양이 아니라 암으로 분류되지 않다가 2008년 1월부터 암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질병들이다.

이 콜센터 직원은 약 10분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잘못 안내를 했다”며 내용을 정정하고 다른 코드를 불러줬다. “여전히 뭔지 모르겠다. 무슨 질병이 경계성 종양에 들어가는지만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그건 모르겠다”고 답했다.

◇보험 약관 이해도 계속 떨어져

한영자(60)씨는 대장암에 걸려 2012년 수술을 한 후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이어갔다. 암 보험에 가입돼 있던 한씨는 요양병원 입원비를 청구했다가 보험사로부터 입원비 지급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험사는 약관에 쓰인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병·의원에 입원했을 때 입원비를 지급한다’는 문구를 근거로 들면서 “지금 받고 있는 치료가 ‘직접적인 암 치료’에 들어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더 이상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고 했다. 한씨는 “직접적인 암 치료가 도대체 무엇인지, 왜 입원비를 안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접적인 목적’처럼 모호하고 애매하게 표현된 보험 설명서의 문구도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금융감독원의 ‘2013년 상반기 금융민원 동향’에 따르면 금융 민원 상담 건수 4만2592건 중 보험 관련 민원이 2만1231건으로 절반가량 됐다. 이 중 보험금을 받을 때 기대만큼 받지 못함을 깨닫고 불만을 토로하는 보험금 산정 관련 민원이 27%로 가장 많았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석호 연구위원은 “지나치게 어려운 보험 용어는 받을 줄로만 알고 있던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보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보험 용어를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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