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스토리] 한 손엔 립스틱, 가슴엔 휴지 붕대… 라트비아로 간 어떤 영업맨의 무기

조선일보
  • 심현정 기자
    입력 2014.03.26 03:12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한글과 컴퓨터' 김상철 회장의 립스틱과 보드카

    금호미터텍 맡자마자 닥친 IMF
    "내가 석달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가 망하는 것으로 알라"
    비장하게 라트비아로 떠나

    女위원들에겐 립스틱 선물, 男위원들은 술자리 초대
    맨몸에 휴지 둘둘 감고 옷 입어…
    독한 보드카, 옷안에 슬쩍 부으며 술자리 버텨 '마음의 빗장' 열어

    1997년 2월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1978년 금호전기 영업맨으로 출발한 내가 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당시 경영난을 겪던 금호전기에서 영업본부장이었던 나에게 '계전(計電) 사업 부문'을 떼내서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전력 사용량 등을 측정하는 계측기 생산·판매를 담당하는 사업이었다. 나는 5년 뒤 인수 비용 100억원을 갚는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이름은 '금호미터텍'으로 지었다. 직원 170여명과 그 가족의 생계가 오로지 내게 달렸다.

    위기는 바로 찾아왔다. IMF 외환 위기로 경기가 얼어붙자 계측기가 도통 팔리지 않았다. 셈을 해보니 지금 있는 돈으로는 5개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다. 특단 조치가 필요한 상황. 나는 미개척지인 북방(北方) 시장을 뚫기로 했다. 시장조사를 하면서 1991년 9월 소련에서 독립한 라트비아를 주목했다. 라트비아는 서방국가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전력 설비와 전기 계측 시스템 구축 등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짐을 싸서 라트비아로 떠나면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3개월 후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는 공중분해되는 것으로 알아라." 그만큼 비장했다.

    한글과컴퓨터 김상철 회장은 “라트비아에서 계측기 사업을 따내기 위해 고생했던 때를 생각하면 요즘도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나곤 한다”며 “북방의 혹독한 겨울을 영업맨의 기개로 이겨냈던 경험이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 김상철 회장은 “라트비아에서 계측기 사업을 따내기 위해 고생했던 때를 생각하면 요즘도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나곤 한다”며 “북방의 혹독한 겨울을 영업맨의 기개로 이겨냈던 경험이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한글과 컴퓨터 제공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Liga)에 도착해보니 돈 냄새를 맡은 글로벌 기업들로 북적였다. GE·지멘스·ABB와 같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계측 시스템 사업자 결정권을 지닌 라트비아 '에너지위원회' 위원들을 호화 호텔로 초청해 연일 세미나와 파티를 열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기술력에는 자신 있었다. 문제는 동양의 작은 기업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다 영업맨답게 맨몸으로 부딪쳐보기로 결심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는가. 발품을 팔아 자주 찾아가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쌓는, 이른바 '순수 한국식 영업'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당시 라트비아 에너지위원회는 14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남자 8명, 여자 6명이었다. 제1 대상은 여성 위원과 남성 위원의 아내들이었다. 거액을 들여서 로비할 자금 여력은 없었다. 먼저 독일로 건너가서 '랑콤' 립스틱 등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화장품을 한 보따리 사 들고 돌아왔다. 이후 매일같이 위원들 집을 찾아다녔다. 아내들과 여성 위원들에게 화장품을 손에 쥐여주고는 "한국의 금호미터텍을 기억해달라"는 말만 건네고 돌아왔다. 그 일을 며칠씩 반복하니 위원 대부분과 안면을 트게 됐다.

    다음 타깃은 남성 위원들. 나는 러시아 전통 별장인 '다차(Dacha)'를 한 채 빌렸다. 이들을 초대해 보드카를 대접할 요량이었다. 다차 내부는 한국 주점처럼 꾸몄다. 머물던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서빙을 맡아줄 종업원들도 구했다. 나는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을 모아놓고는 손님들을 어떻게 응대할지 직접 가르쳤다. 단정한 옷을 입고, 시선은 고객의 눈보다 약간 낮게, 목소리는 높이지 말 것 등등….

    술자리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이들이 어찌나 술이 센지 돌아가면서 대작을 하다간 제명에 죽지 못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두루마리 휴지를 상체에 몇 겹 겹쳐서 둘둘 감고 그 위에 와이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40도짜리 보드카를 받아 마시는 척하면서 슬쩍 옷에 부었다. 옷 안에 감은 휴지가 보드카를 흡수해 손님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얼마나 술을 들이부었는지, 술자리를 파하고 호텔에 돌아왔을 땐 속옷까지 보드카에 푹 절어 있었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자 그들이 물었다. "왜 세미나를 열어 당신 회사 기술의 우수성을 선전하지 않고 이렇게 폭음하면서 영업을 하느냐"고. 그제야 나는 설명했다. "좋은 호텔에서 큰 세미나를 열 정도의 돈은 없다. 당신들과 일대일로 만나서 제품을 보고 공정하게 평가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접촉한 거다."

    드디어 업체 선정 당일. 입찰장에 서 있는데 출입문을 열고 위원들이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여성 위원이 들어오며 나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 뒤의 남자 위원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장막이 쳐지고 위원들의 회의와 투표가 이어졌다. 다시 장막이 열리고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코리아 금호미터텍"이라고 발표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내가 아니라 우리 직원 170여명과 가족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라트비아 시장을 뚫으니 발트 3국에 속하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도 저절로 수출길이 열렸다. 공장을 온종일 가동해도 납기를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계측기 주문이 쏟아졌다.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라 같은 물량을 수출해도 2배를 벌어들였다. 5년 뒤 금호전기에 지급하기로 했던 인수 대금 100억원은 1년 반 만에 완납했다. 분사할 당시 기존 회사의 퇴직금 명목으로 회사 지분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는데, 당시 주식을 받았던 직원들은 모두 목돈 수억원을 만질 수 있었다.

    라트비아의 경험은 이후에도 여러 위기가 닥쳐올 때 그것을 이겨내는 좋은 성공 체험이 됐다. 한국 영업맨의 자존심과 목숨을 걸고 밀어붙이면 못 해낼 일이 없는 것이다.

    [손대면 대박 실적 … M&A 전문가 김상철]

    김상철(金祥哲·61)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회장은 금호전기 영업본부장으로 있다가 IMF 외환 위기 때 금호전기의 자회사였던 금호미터텍을 인수하며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금호미터텍을 성공시킨 뒤 LCD(액정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두레테크와 보안 업체 소프트포럼, 다윈텍, 캐피탈익스프레스 등을 인수했다.

    한컴은 2010년 10월에 인수했다. 그가 인수한 이후 한컴은 2011년 1분기부터 2013년 3분기까지 11분기 연속으로 분기 최대 매출 기록을 세웠다. 'M&A 전문가가 정보기술(IT) 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느냐'란 세간의 의문을 실적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지난 20일에는 국내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1위 업체인 MDS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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