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애니메이션, 인터넷 TV가 살렸다

조선일보
  • 김지섭 기자
    입력 2014.03.14 03:01

    [가입자 확보 위해 애니메이션 방영… 인기 끌어]

    - 윈윈 효과
    정부 지원 의존하던 애니메이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하면서 제작업체 늘고 수익도 급증
    IPTV, 다른 업체와 차별화 위해 애니메이션에 과감한 투자… '1000만 가입자 시대' 눈앞

    애니메이션 시장 변화 그래프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는 2011년 2월 첫 방송이 나간 직후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로보카 폴리 장난감은 지난 2년간 우리나라에서만 500만개 넘게 팔렸다. 관련 캐릭터 상품이 국내에서 올린 매출은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 2012년 4월부터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수출길이 열렸고, 현재는 중국·러시아·일본 등 전 세계 75개국에서 동심(童心)을 빼앗고 있다. 작년 해외 로열티 수입은 전년보다 5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로보카 폴리의 성공으로 제작사인 로이비쥬얼은 2010년 직원 수 30명에서 현재는 3배가 넘는 96명으로 늘었다.

    토종 애니메이션으로는 '초대박' 신화를 썼지만 로보카 폴리는 탄생조차 못할 뻔했다. 제작 단계에서 투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이비쥬얼은 2008년부터 2~3년간 10개 가까운 창업투자회사를 찾아다녔지만 나서는 곳이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흥행을 담보해 줄 확실한 '스타 배우'가 없기 때문에 투자받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와 '스토리'만으로는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워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늘 '투자 기근'에 시달린다. 로이비쥬얼 민영훈 이사는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계정을 가진 거의 모든 창업투자회사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말 방영을 시작한 '원더볼즈'도 방영 전부터 서울캐릭터비즈니스쇼·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PP) 등의 애니메이션 시상식에서 대상·최고기획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제작 단계에서는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원더볼즈 제작사 시너지미디어 박영국 부사장은 "제작을 시작한 지 1년 가까이 지나도 제작 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구하지 못해 작업을 중단할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IPTV 업체들, 애니메이션 콘텐츠 확보 경쟁

    두 토종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도록 숨통을 트이게 해준 건 IPTV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였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두 회사는 각각 제작비의 30% 정도인 12억원(로보카 폴리), 7억원(원더볼즈)을 SK브로드밴드로부터 지원받고 기사회생했다. SK브로드밴드 입장에서는 다른 IPTV 업체와 차별화되는 독점적인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에 투자한 것이다.

    토종 애니메이션 사진들
    자료=로이비쥬얼·시너지미디어·골디락스튜디오, 그래픽=김현지 기자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IPTV 업체들 간의 경쟁이 토종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토종 애니메이션은 극히 소수의 작품만 지상파 TV나 일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상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IPT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토종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었고, 상영될 수 있는 기회도 증가했다.

    IPTV 업체들은 자사 TV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콘텐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콘텐츠 중에서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전체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인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토종 애니메이션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2011년 100억원을 포함해 지난 3년간 총 252억원가량을 20여개 애니메이션에 투자했다. '올레TV'를 운영하는 KT는 2008년 300억원 규모로 조성한 공동출자펀드를 통해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지원하고 있다. 이 펀드에서 투자를 받고 '키오카' '프리즘스톤' 등의 인기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

    LG유플러스는 EBS 유아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2012년 시카고 어린이 필름페스티벌에서 본선에 진출한 애니메이션 '두다다쿵'에 투자했다. '내 사랑 뚱' '곰디와 친구들' '레이의 우주 대모험' 등 애니메이션 200여편은 지난 2년여간 LG유플러스 IPTV를 통해 방송될 기회를 얻었다.

    제작사, 종사자 모두 증가

    IPTV 업체들은 보통 1~2년 정도로 기간을 정해 제작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이후에는 계약에서 풀어준다. 따라서 계약 기간 이후에는 수출이나 다른 통로로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고, 저작권을 활용해 캐릭터 상품을 만들거나 공연 활동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그전까지 정부 지원에 의존했던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IPTV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면서 ‘윈윈(win-win) 효과’를 내고 있다. 토종 애니메이션의 부활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13 애니메이션 산업백서’에 따르면 IPTV 시장 형성 초기인 2008년 276개이던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수는 2012년 341개로 23.6% 늘었다. 같은 기간 종사자 수도 3924명에서 4503명으로 14.8% 늘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들이 IPTV나 모바일TV,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올린 수익은 2010년 53억2200만원에서 2012년엔 77억8900만원으로 46.4% 늘었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신문방송학)는 “IPTV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출현하면서 정부의 그 어떤 콘텐츠 지원정책보다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IPTV

    '인터넷 프로토콜 TV'의 약자로, 인터넷망으로 보는 TV를 가리킨다. 실시간 방송과 VOC(주문형 비디오)를 볼 수 있다. IPTV 화면은 전송되는 데이터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끊김 없이 처리해주는 '스트리밍' 방식을 사용한다. TV에 직접 적용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셋톱박스 형태로 TV와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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