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발표된 통계와 달리 지금 4%대 성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여러 가지 지표를 놓고 봤을 때 지금 성장을 멈췄거나 아주 조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역시 명성대로였다. 글로벌 금융가의 비관론 대표선수로 '닥터 둠(Doom·파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마크파버 리미티드의 마크 파버(Marc Faber·78) 회장은 우울한 전망과 분석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3~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스위스 태생인 그는 1973년 홍콩으로 옮겨와 살다가 12년 전부터는 태국 북부 휴양지인 치앙마이에 살고 있다고 했다. 결혼 34년을 넘긴 아내가 태국계다.
그는 1987년 역사상 가장 가혹했던 증시 폭락 사태 중 하나인 '블랙먼데이'를 일주일 앞두고 세계 투자자들에게 "당장 주식을 팔고 나오라"고 외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정확히 맞듯 늘 어렵다고 외치다 보면 언젠가는 맞는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전망은 투자의 인사이트가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요즘 베트남 주식을 사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던 신흥국들이 최근 미국의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이후 요동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신흥국이 2014년엔 나아진다고 하지만 나는 더 둔화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테이퍼링이 물론 신흥 시장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지만 더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중국 경제다. 중국의 저성장으로 신흥국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물론 신흥국 상황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보다 경상수지 측면 등에서는 더 나은 상황이다. 다만 더 나빠진 것도 있는데, 당시보다 가계부채가 더 크다는 것이 문제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는가.
"미국은 최근 5년간 증시도 좋았고, 경제도 좋았다. 역사적으로 5년간 이렇게 증시도 좋고, 경제도 확장한 시절은 정말 드물었다. 하지만 회복하는 게 건전하지 못하다고 본다. 가장 큰 이유는 회복이 다양한 경기 부양책(통화 재정)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이 많이 높아지기는 했는데, 부유층이 많이 사는 주식이나 그림 값 등이 그렇다. 일반 가계소득을 보면 실질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10년 전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탄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미국 경제 관찰자들이 놀라는 것은 달러가 약하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저금리 후유증은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미국 경제가 인위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했던 적은 2001년부터 2007년이었는데, 그때 신용대출이 대규모로 일어났고, 주택 버블(거품)이 생겼는데, 나중에 결국 버블들이 붕괴됐다."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의 테이퍼링 이후 신흥국 경제가 요동치지만, 한국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1973년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은 몹시 가난한 국가였다. 당시 삼성 창업주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사무실은 오늘 인터뷰하는 방보다 작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을 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은 내가 본 통계치(산업생산이나 수출, FDI·해외직접투자, 수주 실적 등)에 따르면 성장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주 소폭의 성장을 할 것으로 본다. 지금 어디를 보더라도 경제성장을 견인할 강인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가계 부채도 문제다. 다만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릴 수 있다. 내 생각엔 아시아에 돈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성장 잠재력과 전망을 보면 한국보다 차라리 다른 아시아 신흥국에 투자할 곳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펀드매니저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돈을 한국에 투자할 것이고, 주가는 올라갈 것이다."
―한국 경제는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만약 당신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예전에 홍콩의 재무장관을 지낸 사람에게 '홍콩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떻게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경제에 개입하고 관여하는 것을 막았다'고 말했다. 나쁜 정책이 생겨날 가능성을 예방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최대한 규제를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세금 조항도 더 단순화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의 세제법을 보면 7만 페이지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감독 당국도 모르는 낭비적인 상황이 생겨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 기업들에 하고 싶은 당부인데 R&D(연구·개발)에 계속 투자하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경쟁 우위가 바로 R&D이다. 한국이 워낙 교육열이 높고 우수한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하나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아직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지역사무소를 만들려는 다국적기업이 거의 없다. 대신 홍콩, 싱가포르, 마닐라는 더 선호한다. 영어를 하는 이유는 미국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세계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중국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중국은 신용 거품이 있다. 지금 신용 거품이 붕괴되면 좀 고통스럽겠지만 저성장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통화 확장 정책과 재정 부양 정책을 통해 거품을 키운다면 1~2년 뒤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언젠가 거품이 분명히 터질 것이다. 그래서 중국 성장 전망이 좋다고 보지 않고 지금도 저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수집한 통계치, 다시 말해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통계치와 중국이 수출했다고 발표하는 통계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중국이 얘기하는 7~8%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4% 성장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투자자로서 당신의 관심은 어느 나라에 쏠려있는가.
"나는 솔직히 한국 기업은 잘 모르지만, 동남아에 저평가된 기업이 많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2006년부터 주식시장이 불황이었는데, 작년부터 조금씩 호황기로 가고 있다. 나는 작년부터 베트남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30년 전 한국의 모습인데, 그만큼 성장 전망성이 좋다는 것이다. 삼성도 결국에는 휴대폰을 베트남에서 모두 만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상품을 만드는 회사(자동차나 자본재 만드는 회사)보다는 서비스를 국제적으로 제공하는 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