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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게놈 분석 1000달러 시대' 왔다

  • 이영완 기자

  • 입력 : 2014.02.27 03:09

    DNA 정보 담긴 30억개 염기 배열 밝혀
    질병 진단·치료에 획기적 전기 마련
    美 일루미나社서 개발 한국에도 판매

    2001년 1명 해독에 30억달러 들어
    10년여 만에 비용 300만분의 1로
    "망원경·현미경 개발에 맞먹는 성과"

    게놈 해독은 DNA를 구성하는 A,G,C,T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를 밝히는 것이다. 사람의 전체 게놈 해독이 일반화되면 개인에 맞는 치료와 의약품을 제공하는 맞춤 의료가 실현될 전망이다.
    게놈 해독은 DNA를 구성하는 A,G,C,T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를 밝히는 것이다. 사람의 전체 게놈 해독이 일반화되면 개인에 맞는 치료와 의약품을 제공하는 맞춤 의료가 실현될 전망이다. / NIH 제공
    '1000달러 게놈(genome)' 시대가 눈앞에 왔다. 미국의 게놈 분석 장비 제조업체인 일루미나(Illumina)는 지난달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의료산업 콘퍼런스에서 "1000달러로 한 사람의 게놈 전체를 해독할 수 있는 게놈 분석 장비'HiSeq X10'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일루미나는 전 세계 게놈 분석 장비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게놈은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좌우하는 DNA 유전 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게놈 해독은 DNA를 구성하는 A·G·C·T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를 밝히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게놈 해독으로 질병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정보를 찾아내려면 수십만, 수백만명의 게놈 해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1인당 게놈 전체 해독 비용이 1000달러 이하로 떨어져야 할 것으로 예측됐다. 마침내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연간 1만8000명 게놈 완전히 해독 가능

    일루미나는 이 장비로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하면 시약 값 797달러와 기계 감가상각비 137달러, 인건비 55~66달러를 합해 989~1000달러가 든다고 밝혔다. 2001년 국제인간게놈프로젝트가 처음으로 한 사람의 게놈을 완전히 해독했을 때 들어간 총비용은 30억달러였다. 10여년 만에 해독 비용이 300만분의 1로 떨어진 것.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연구소의 마이클 샤츠(Schatz) 박사는 일루미나 장비에 대해 "망원경이나 현미경의 개발에 맞먹는 인류의 주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일루미나는 HiSeq X10을 하버드대·MIT의 브로드연구소와 호주 가반의학연구소 그리고 한국의 게놈 분석 업체인 마크로젠에 판매했다고 밝혔다. 사람은 DNA에 30억개 정도의 염기를 갖고 있다. HiSeq X 한 대는 3일에 16명의 게놈 염기서열을 해독할 수 있다고 일루미나는 밝혔다. 회사는 HiSeq X 10대를 묶어 하나의 시스템인 HiSeq X10으로 판매한다. 따라서 산술적으로 HiSeq X10은 1년에 약 1만8000명의 게놈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 에너지부 산하 게놈연구소(JGI) 연구원이 게놈 해독용 기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뒤로 보이는 장비는 일루미나사의 게놈 해독 장비들이다.
    미 에너지부 산하 게놈연구소(JGI) 연구원이 게놈 해독용 기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뒤로 보이는 장비는 일루미나사의 게놈 해독 장비들이다. / 미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 제공
    게놈 해독은 철저하게 장비에 의존한다. 마크로젠이 HiSeq X10을 확보하면 우리나라도 세계 최대의 게놈 분석 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전 세계의 인간 게놈 정보의 25%는 중국 BGI에서 나온다. BGI는 처음엔 북경게놈연구소라는 국립연구소로 시작했다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세계 1위 게놈 분석 업체로 발전했다.

    BGI는 이전까지 세계 최고 성능이었던 일루미나의 HiSeq2500 게놈 분석 장치를 130대 정도 보유하고 있다. 마크로젠은 같은 장비를 30대 갖고 있다. 그런데 HiSeq X는 2500보다 성능이 10배 정도로 분석된다. 마크로젠이 HiSeq X 10대를 보유하면 2500을 100대 갖추는 셈이 되는 것. 결국 해독 장비에서 마크로젠이 BGI와 맞먹게 되는 것이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민간업체로는 우리가 유일하게 HiSeq X10을 갖춘다"며 "게놈 해독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일이라 일루미나는 새 장비를 팔면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거꾸로 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 회사의 능력을 하나하나 따졌다"고 말했다. 마크로젠은 HiSeq X10 구매에 1000만달러를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미국 지사와 한국에 장비를 나눠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 의료 시장을 노린 포석이다.

    맞춤 의료에 걸맞은 정보 보호책도 필요

    지난해 할리우드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BRCA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유방을 절제해 전 세계에 유전자 진단 붐을 일으켰다. 과학계는 수많은 사람의 게놈을 완전히 해독하면 BRCA와 같은 질병 관련 유전자 변이 정보가 쏟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게놈 정보는 왜 같은 약이라도 환자마다 효능이 다른지 알려 줄 수 있다. 실제로 매년 항암제에 사용되는 비용은 800억달러에 이르는데 75%인 600억달러는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버려진다. 게놈 해독은 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영국 보건부가 2012년 10만명의 암 환자 게놈을 5년 내 완전히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해 맥킨지는 차세대 게놈 해독을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12가지 미래 기술'의 하나로 뽑고 2025년까지 1조6000억달러의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도 최근 향후 8년간 5788억원을 투입해 다부처 게놈 연구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게놈 해독이 보편화하려면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 개인의 게놈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개인의 유전 정보를 논문에 인용할 때는 익명으로 하고 있다. 자칫 개인의 결점이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논문에 나온 성별과 나이만 가지고도 몇 번의 인터넷 검색을 거치면 누구의 게놈인지 12%는 맞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이언스 발행 기관인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가 지난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연례 학술대회에서 게놈 정보 보안에 대한 세션을 마련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AAAS 행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업체들이 게놈 정보 보안을 위한 암호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 갈수록 줄어드는 전체 게놈 해독 비용
    기술 개발의 여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5일 영국 옥스퍼드 나노포어는 DNA 한 가닥을 작은 구멍으로 통과시키면서 각각의 염기가 가진 전기적 성질을 차이로 바로 염기서열을 알아낸 결과를 발표했다. 일루미나 등 기존 업체들은 염기마다 특정 색을 내는 형광물질을 붙이고 이것을 해독할 DNA에 결합시켜 염기서열을 알아낸다.

    나노포어 방식이라면 게놈 해독을 위해 DNA를 합성, 증폭할 필요가 없다. 현재 게놈 해독 비용 대부분은 DNA 합성을 위한 시료 구매에 들어간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나노포어의 장비는 오류가 많아 아직은 쓰기 어렵다"면서도 "몇년 내 나노포어처럼 나노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해독 장치가 나오면 게놈 완전 해독 비용이 몇십만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