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부터 서울 종로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신금수씨는 당시 1억3500만원을 권리금으로 내고 입점했다. 18년 가량 영업을 해 오던 2012년 10월, 건물주는 신 씨에게 ‘제소 전 화해조서’를 보내왔다. 6500만원인 보증금을 1억원으로, 월 임대료도 320만원에서 650만원으로 각각 올려주던지 앞으로 1년만 영업을 더 하고 조건없이 가게를 비우라는 것이었다. 신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1년만 더 영업을 하기로 했다.

이 후 신씨는 권리금을 찾기 위해 가게를 빼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려 했다. 당시 해당 지역의 동종업종의 권리금으로 볼 때 신씨 가게의 권리금은 2억원 가량 됐다. 그러자 건물주는 신씨가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려면 월 임대료를 주변시세보다 높은 700만원에 맞춰달라고 요구했다. 신씨는 건물주가 가게의 권리금을 노리고 이같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가 권리금은 실제 시장에서는 관행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근거는 없다. 이 때문에 신씨처럼 권리금을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적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다.

2009년 1월에 터진 용산 철거민 참사도 권리금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세입자들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들어간 권리금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건물에서 나가야 하자 장사를 그만둘 수 없다며 저항하다가 6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친 참사로 이어졌다.

용산 참사 등 권리금이 사회 문제로 번지자 그 동안 정부와 국회는 권리금을 법제화 하는 방안을 연구했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상가 권리금을 법제화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 권리금 법적 정의 만들고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확대…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도움

정부는 기존의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상가권리금을 ‘임대차계약과 별도로 장소적 이익, 시설, 영업노하우 등의 유·무형적 이익과 관련해 지급되는 금전 또는 재산적 가치’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법적인 정의부터 만들어야 권리금 보호책도 만들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신씨와 같이 임대인이 개입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 하도록 할 경우 권리금에 대한 보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1년 이내에 상가 주인이 과거 임차인이 하던 동일업종의 가게를 차리거나 제3자를 내세워 영업을 할 경우 전 임차인이 상가주인에게 보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 권리금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해결을 위해 권리금 분쟁조정기구를 설치하고, 상가권리금 피해를 구제하는 보험 상품도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권리금을 무조건 보장해 주는 식으로 법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계획이다. 권리금이 가격처럼 변동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대신 임차인 보호를 강화해 권리금 회수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모든 임대인에게 임대차 기간을 5년까지 보장하고, 상가 주인이 바뀌어도 임대차 기간을 보호해 주는 대항력을 부여하기로 했다. 지금은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월세에 100을 곱한 금액에 전세보증금을 합친 것)을 기준으로 4억원 이하의 상가에만 임대차기간을 5년까지 보장하고 있다.

이종화 기획재정부 산업경제과장은 “권리금은 일종의 초기 투자비용이기 때문에 가게를 넘길 때 자동으로 이를 받을 수 있게 할 수는 없다”며 “임대 기간 동안 권리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도록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권리금을 법제화할 경우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상가 권리금 계약서를 쓰고 이를 국세청에 신고하면 기타 소득으로 잡혀 과세할 수 있다. 그러나 임차인들 입장에서는 계약서를 써도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고 세금만 내야 하니 이 같은 권리금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국세청 신고도 하지 않는다. 정부는 권리금 거래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권리금을 주고 받은 사실을 계약서에 남기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 법제화에만 초점…재개발시에는 권리금 보호 못 받아

그러나 정부의 권리금 법제화 계획에도 불구하고 권리금이 완전히 보호받지는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용산 참사에서처럼 재개발 지역의 상가 권리금은 여전히 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물 주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영업을 중단하고 나가라고 할 경우에는 지금처럼 권리금을 주장할 수 없다. 다만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재개발로 인한 임차인의 손해를 영업보상 차원에서 다소 보전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임대차 기간 보호에도 미비점이 있다. 서울을 기준으로 환산보증금 4억원 이하의 상가는 계약 갱신시 월세 인상률을 9%로 제한하고 있지만, 4억원 이상의 경우 월세 인상률 상한을 적용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임대차 기간 보호에 대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세금 부담으로 인해 권리금 계약서 작성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권리금에 대한 세금은 떠나는 임차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표준계약서 작성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쪽은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이다. 이 때문에 권리금을 주고 받더라도 권리금이 없다며 권리금 계약서를 쓰지 않던가, 쓰더라도 권리금을 올려 세금 부담을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넘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권리금 계약서를 쓰더라도 상당 기간 동안은 세금을 유예해 줘 권리금에 대한 계약서를 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며 “정부도 권리금 계약서를 통해 얻은 자료를 가지고 지역별 업종별 권리금 시세를 공개해 권리금 양성화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