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그룹감사팀이 10일 나타났다. '경영진단'을 위해 이날 출동한 그룹 감사팀의 역할은 계열사에 생긴 문제의 환부(患部)를 도려내고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다. 이날 경영진단은 삼성중공업의 작년 실적이 악화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 이뤄졌다.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매출(14조8345억원)은 전년 대비 2.4% 정도 늘었으나, 영업이익(9142억원)과 당기순이익(6322억원)은 24%, 21%씩 줄었다. 4분기 실적만 보면 17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한때 그룹 내 '알토란' 같던 존재였던 삼성중공업이 멍든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저가(低價) 수주 후폭풍'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국 건설기업들에 이어 조선(造船)사들도 '저가 수주→실적 악화'의 악순환(惡循環)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엄습하고 있다.
◇건설업 이은 조선업의 '低價 수주 惡夢'
저가 수주 문제는 글로벌 수주 랭킹 1위인 한국 조선업 전반에 퍼져 있다. 삼성중공업에 이어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대부분의 조선소가 지난해 좋지 않은 실적을 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8020억원으로 전년보다 60.0% 감소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1.4% 줄어든 54조1881억원을, 순이익은 85.8% 내려앉은 146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회사 역시 4분기만 따져봤을 때 871억원 영업적자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속된 조선 경기 침체에 따른 선가(船價) 하락이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지난해 275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적자 전환했다.
최근 2~3년간 국내 조선소의 저가 수주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12년 7월 현대중공업이 1만38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0척을 1척당 1억2000만달러 규모에 수주하면서 저가 수주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당시 가격은 2008년 기준 동일 선박과 비교해 28% 정도 낮아진 탓이다.
그 배경에는 '조선소를 돌리려면 일감부터 따야 한다'는 현실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2011년과 2012년 국내 '빅3' 조선업체들이 일감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저가 수주한 선박 물량들이 최근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선박 대금 지급이 '헤비 테일(heavy tail)' 방식으로 바뀐 것도 실적 악화에 일조했다. 과거엔 선박 대금을 20%씩 5회에 걸쳐 균등하게 나눠 받았지만, 요즘은 초기 4회는 10%씩 받고 막판에 60%를 한꺼번에 받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헤비테일' 방식의 수주 비중은 30% 남짓했으나 작년 말 기준으로 70%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조선기업들의 최근 실적이 악화된 이유이다.
◇2~3년 전 최저가 수주 물량들이 실적 악화 '발목'
업계에선 수주 실적과 무관하게 실적 악화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선박 수주 가격을 가늠할 수 있는 조사기관 '클락슨'의 신조선 가격지수를 보면, 2007년 말 184에서 2011년 말 139, 2012년 말 126까지 하락했다. 이는 같은 규모의 선박 한 척당 가격이 184원에서 126원까지 내려갔다는 의미이다.
작년 한때 133까지 반등했던 이 지수는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선박을 수주하고 제조하는 데 대개 2~3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한다면, 2012년 한창 낮은 가격일 때 수주한 물량들이 적어도 내년까지 조선소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원가 절감과 생산성 혁신 같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저가 수주를 만회하기 위한 '가격 재협상'도 일부 진행 중이다.
STX조선해양은 올 들어 채권단이 영국의 선박 발주사와 재협상에 나서 2012년 12월 저가에 수주했던 선박 14척의 건조 금액을 1200억원이나 상향 조정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조선업계가 글로벌 1등으로서 '달러박스' 역할을 하려면 지독한 원가 절감과 기술 개발 노력이 긴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