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의 미래는 IT(정보기술)와의 융합에 있습니다. 화학합성 의약품과 단백질 의약품을 넘어 나노 칩이 새로운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몬세프 슬라우이(Moncef Slaoui·사진)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SK) 연구개발 및 백신 담당 회장은 최근 한국을 찾아 "그룹 차원에서 6개월간 싱크탱크를 운영한 결과 10~20년 뒤에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인체에 이식한 초소형 칩이 장기(臟器)에 전기신호를 보내 질병을 치료하는 '생체전자공학(Bioelectronics)'이 GSK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말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GSK는 2012년 46조원의 매출을 올린 세계 7위의 제약사다. 한 해 연구개발(R&D) 투자가 7조원에 이른다. 슬라우이 회장은 GSK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멤버이다. GSK는 1년 전 슬라우이 회장 주도로 글로벌 제약사로는 처음으로 생체전자공학 R&D 조직을 출범시켰다.
슬라우이 회장은 "천식 환자는 폐 근육이 수축해 있는데 여기에 칩을 심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전기신호를 보내면 치료가 가능하다"며 "소규모 임상시험이긴 하나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도 칩을 통해 비장에 전기신호를 보내면 기존 치료제 못지않은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나노 공학이나 데이터 기술에서 선도적인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GSK가 한국에 대규모 R&D 투자를 한다면 아마도 이 분야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생체전자공학 연구에서는 당연히 IT업계의 강자인 삼성전자, LG전자와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IT 대기업들과 공대 연구자들을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슬라우이 회장은 "기존 방식의 치료제에서는 '맞춤 의약(tailored medicine)'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천식환자 100만명을 위한 치료제를 개발했다면, 앞으로는 A형 유전자 천식환자 1만명, B형 2만명을 위한 약을 개발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만큼 R&D 조직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며 "외부에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슬라우이 회장은 7년 전 GSK의 새로운 연구센터 입지 평가차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GSK는 한국 대신 중국의 상하이를 선택했다. 그는 "해외에 R&D 투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언제나 인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