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財 북리뷰] 다윗과 골리앗

조선비즈
  • 전병근 기자
    입력 2014.01.20 09:20

    다윗과 골리앗
    말콤 글래드웰 지음|선대인 옮김|21세기북스|350쪽|1만7000원

    다윗은 내 어릴 적 영웅이었다. 작은 조약돌로 거구의 골리앗을 단번에 물리친 양치기 소년. 그 이야기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드라마였고, 읽을 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둘의 비대칭 대결의 장면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상상만 해도 경이로웠다. 교훈은 다분히 종교, 혹은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가장 낮은 자를 통해 세상의 강자도 응징한다는 신의 섭리,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앞세운 것처럼 그 때의 다윗과 골리앗의 결전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머리를 장식한다. 사실상 책의 전체를 통틀어 압권에 해당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치 007 영화가 시작될 때 다짜고짜 강렬하고도 아슬아슬한 전투 스릴러 씬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처럼, 저자 역시 수천년 전 전장에서 벌어진 저 극적인 대결의 장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마치 성능 좋은 ENG 카메라가 부감 촬영 기법을 구사하듯 치밀하게 훑어내린다. 초저속 슬로 모션으로.

    때는 기원전 11세기 후반. 이스라엘 왕국과 크레타섬 출신의 블레셋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중아 세펠라의 한 계곡에서 맞닥뜨린다. 당시 전쟁의 프로토콜이 그랬듯, 양측의 대표 장수가 나서서 승부를 가린다. 블레셋에서는 골리앗. 청동 투구에 전신 갑옷을 두른 키 210센티미터의 전문 병사다. 반대편에 선 다윗. 참전한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주러 와 있던 베들레헴의 양치기 소년이다.

    알다시피 승부는 다윗의 완승으로 끝난다. 소년은 돌 하나를 가죽 투석 주머니에 넣고 적의 이마를 향해 날렸고, 적중한 거인은 쓰러져 기절한다. 다윗은 단숨에 달려가 적의 칼로 그의 목을 친다. 상황 끝. 어이없는 패배요, 대단한 승리였다. 그 뒤로 ‘다윗과 골리앗’이란 말은 기적적인 승리를 뜻하는 은유가 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서부터 장면은 신화에서 다큐로 바뀐다.

    저자는 여느 사람들이 잘 몰랐던 학계의 연구 결과들을 풀어놓는다. 실은 골리앗이 말단비대증을 앓는 중보병이었고, 다윗은 잘 단련된 투석병이었다는 가설. 여기에 고대 전쟁사부터 현대 군사학을 아우르는 각종 이론과 분석까지 겹쳐진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결과, 저자가 내놓는 새로운 관전 평은 이렇다. 양자 대결의 구도는 겉보기와 달리 실은 ‘칼로 무장한 청동기 시대의 전사(골리앗)가 45구경 자동 권총을 가진 적(다윗)과 맞선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동원한 갖가지 고증에는 이견의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진위 여부보다(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놀라운 것은 그 밑에 깔린 치열한 상상력이다. 그런 고전적인 장면을 뒤집어 살펴보려 한 발상 말이다.

    저자는 두 가지 생각에서 이 세기의 대결에 ‘꽂혔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은 이런 식의 일방적 우위가 지배하는 충돌 속에서 탄생한다.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결연히 맞서는 행동이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둘째, 하지만 우리는 이런 충돌과 승패의 메커니즘을 종종 잘못 읽고 잘못 해석한다. 골리앗을 천하무적으로 보이게 했던 강점이 실은 치명적인 약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다윗과 골리앗 같은 역설과 착시의 사례가 다양하게 소개된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서부터 범죄를 퇴치하는 형사정책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우리의 완고한 통념에 흠집을 낸다. 관통하는 정신은 ‘크고 강하고 유력해 보이는, 또한 당연시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뒤집어 보기’다.

    지난 200년 동안 전쟁사를 봐도 그렇다.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 같은 대국의 승률이 실은 71.5%에 불과했다. 세 번 중 한 번꼴로 약소국이 이겼다. 더우기 약소국이 게릴라전으로 맞설 때는 약소국의 승률이 63.6%였다. 가까운 역사만 봐도 ‘약자’의 승리는 허다했다.

    1차대전 말 터키에 맞서 아랍의 반란을 이끌었던 T E 로렌스가 대표적이다. 정규전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 배두인족을 이끌고 대승을 거둔다. 이들에게는 전투 장비와 훈련과 기율에 있어서 열세였지만, 약자 특유의 기동성과 인내력, 지혜, 터키에 대한 지식, 무엇보다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대국을 차례로 물리쳤던 베트남의 게릴라전법이야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약자는 위태롭다. 구사하는 전략도 대개 어렵고 힘든 것들이다. 강자로서는 시도조차 꺼릴 것들이다. 하지만 약자의 필사적인 상황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약자의 절박한 입장은 강자의 구도를 과감히 벗어나게 하고, 대담한 시도를 감행하게 한다.

    전쟁은 특수한 상황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반문이 나올 법하다. 저자는 전혀 다른 예를 줌인한다. 이번엔 예술이다. 다시 150년 전 프랑스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1860년대 파리가 세계 예술과 교양의 중심이었던 시기, 그 한가운데에 살롱이 있었다. 유럽을 통틀어 모든 화가들이 선망하는 최고 최상의 예술 전람회였다. 전통적 질서의 대변자이기도 했다. 수상작들은 대개 프랑스의 역사나 신화의 장면을 거대한 스케일로, 하지만 세밀하게 재현해 낸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서 외진 곳에 춥고 가난한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류로부터는 홀대 받았지만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관심사는 거대한 서사가 아닌 소소한 일상과 풍경이었다. 캔버스에는 붓질이 묻어났고 형체는 흐릿했다. 모범답안에서 벗어난 이들의 그림은 살롱에서 외면받거나 아래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랑곳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웠다. 자신들끼리 협동조합도 결성하고 독자적인 전시회도 열었다. ‘주류 따위의’ 여론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새로운 정체성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저 눈부신 ‘인상주의’ 작가들. 변두리 예술가들의 이름은 마네, 모네, 세잔이었다.

    저자는 “작은 연못의 큰 몰고기가 되는 것이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가 되는 것보다 더 나은 때와 장소가 있다”고 쓴다. 주변부의 아웃사이더라는 핸디캡이 장점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통계를 보더라도 아웃사이더들로부터 혁신가가 많이 나온다. 혁신가들의 특징은 개방성, 성실성과 더불어 비친화성으로 요약된다. 이들은 다수에 역행하는 일을 함으로써 사회적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성공한 기업가들 중에 난독증 경험자가 많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역경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어떤 것은 공식 학습 과정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른바 보상 학습이다. 절박한 필요에서 배운 것은 손쉽게 습득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유명 시인과 작가 같은 창조적 인물들 중에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사례가 많은 것도 같은 이치다. 영국 총리 중 67%가 16세 이전에 한쪽 부모를 잃었다. 미국 대통령도 역대 44명 중 12명이 젊었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오해는 마시길.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에는 장애가 필수라거나 가난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싸구려 위로를 건네자는 게 아니라고 저자는 곳곳에서 분명히 한다. 단지 어떤 부족과 결핍이 절망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 뿐더러, 오히려 뜻밖의 강점이나 미덕을 낳기도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더 높은 명성과 더 많은 부를 누리고 더 강한 기관에 속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유무형의 이점이 우리의 선택과 시야, 운신의 반경을 오히려 제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또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면 그만큼 좋은 교육을 받아 성공도 쉬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역시 어느 정도까지만 사실이다. 모름지기 지속가능한 성공은 힘든 역경을 통해 얻어진다. 이미 성공한 집안의 자녀는 역경이 무언지 모르고 자라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부자들은 자녀에게 역경을 이기고 성취하는 데 필요한 인격과 덕성을 길러주는 데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는다.

    돈과 행복이 그러한 것처럼 양육과의 관계도 직선적인 비례가 아니다. 오히려 뒤집힌 U자형에 가깝다. 돈은 어느 지점까지 양육을 쉽게 해 주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 오히려 어렵게 한다는 얘기다.

    범죄퇴치 같은 정책 구현이나 통치의 경우에도 힘의 우위만 믿고 나서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힘을 가진 사람은 늘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 이른바 정당성에 대한 염려다. 명령을 내리는 쪽은 사실은 명령을 받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의존하는 아주 취약한 구조에 놓여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양날의 교훈을 품고 있다. 우선 다윗 같은 약자를 응원한다. 약자는 절대적으로 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외견상 강자와 다른 강점을 지녔을 뿐이다. 더욱이 약자는 가진 것의 무게에서 자유롭다. 잃을 게 적기 때문에 상대가 설정한 규칙조차 비웃을 자유가 있다.

    동시에 골리앗 같은 강자에게는 겸허함과 경각심을 일깨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문을 닫아버리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가치 중 수많은 것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힘과 목적의식을 가진 양치기로부다 나온다”는 구절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저자의 필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던 터다. ‘1만 시간의 법칙’ ‘티핑 포인트’ ‘블링크’ 같은 시사 용어들이 모두 그의 전작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어찌 보면 자칫 진부할 수도 있을 교훈을, 지난 과거 역사와 오늘날 현실 속의 다양한 사례들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 스토리텔링의 구성력과 그것이 빚어내는 호소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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