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S씨는 작년 9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한 업체를 통해 증거금 없이 선물 거래가 가능한 일명 ‘미니선물’에 투자했다. 단 하루 동안 180만원가량의 수익을 낸 S씨는 미니선물 거래업체에 바로 출금을 요청했지만, 업체는 이른바 ‘잠수’(소식을 끊고 사라지는 것)를 탔다. S씨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미니선물 거래에 쓰던 프로그램(HTS)의 로그인도 차단했다. S씨는 보증금 명목으로 낸 돈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적힌 주소지를 가봤지만, 해당 업체와 전혀 상관 없는 업체가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S씨는 “미니선물 거래업체가 ‘먹튀’(돈을 먹고 도망가는 것)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당할 줄은 몰랐다”며 울분을 토했다.
◆ 소액투자자 유혹하는 미니선물
미니선물거래, 선물 대여계좌 등을 내세운 불법금융투자업체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2년부터 관련 업체들을 단속하고 있지만, 불법금융투자업체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니선물, 선물계좌대여 등을 내세워 성업 중인 불법금융투자업체를 매달 100여개 넘게 잡아내고 있지만, 감시망에 걸리는 불법업체 숫자가 좀처럼 줄고 있지 않다”며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니선물이란 거래소 시세정보를 무단으로 이용, 자체 매매시스템을 통해 국내 선물과 해외 선물 등에 대한 가상 매매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말한다. 미니선물이라고 불리는 것은 정상적으로 선물에 투자할 경우 미리 내야하는 증거금(현재 1500만원)이 필요하지 않고 1포인트당 거래승수의 기준이 없어 작은 돈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KOSPI200선물지수의 거래승수는 50만원이다. 이들 업체들은 약간의 보증금만 지불하면 선물에 투자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선물계좌대여업체도 소규모 금액으로 선물을 거래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유인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들 업체는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 KOSPI200 지수선물, EuroFX 선물 등에 투자하기 위한 증거금 1500만원 이상을 납입한 후 이 계좌를 통해 자체 HTS로 신청받은 투자자 매매주문을 실행해 투자자에게 수수료를 수취한다. 투자자는 1계약당 약 50만원의 증거금을 업체에 납입하고 선물거래를 한다.
금융당국에서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선물계좌 대여업체나 미니선물업체 등은 불법업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국내 선물(KOSPI200 선물), 해외 선물(EuroFX 선물) 등 파생상품 거래는 인가를 받은 증권사 및 선물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50만원 이하로 KOSPI200 선물 등에 투자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업체는 모두 불법업체라고 보면 된다고 금융당국은 말한다.
◆ 적은 돈으로 대박 노리는 투자자 겨냥
금융당국의 단속에도 불법 미니선물 거래나 선물계좌 대여가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증권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선물 거래의 경우 비용 부담이 커 개인 투자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를 겨냥한 업체들이 몇십만원 수준의 증거금과 낮은 수수료를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은다는 것이다.
선물이란 쉽게 말해 개별 주식이나 지수의 미래 시세를 맞추는데 돈을 거는 투자 상품이다. 개별 현물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투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무분별한 투기가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손실을 본 투자자가 결제일이 됐을 때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증권거래소에서는 선물 투자자로부터 일종의 보증금을 받는다. 선물 거래를 하려면 개시증거금으로 일단 1500만원을 내야 한다. 그리고 선물을 실제로 계약할 때 실제 선물 1계약 가격의 12%에 달하는 금액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코스피200지수선물 기준으로 선물 1계약의 가격이 보통 1억원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12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 셈이다. 게다가 선물 계약을 계속 유지하려면 계약금의 8%에 달하는 돈을 증거금으로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 기본 비용만 수천만원이 들다 보니 일반 투자자가 선뜻 다가가기가 힘든데, 이는 선물시장이 일반 투자자들의 투기판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벽이다.
불법금융투자업체들은 정상적인 선물 거래에 투자할 정도의 자금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을 겨냥한다.
50만원 이하의 소액 보증금만으로 선물에 투자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선물 매매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인투자자는 "선물에 투자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액으로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불법인줄 알면서도 종잣돈이 적다 보니까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수익금 받지 못하는 경우 허다
문제는 정상적인 선물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정작 선물 투자로 돈을 벌어도 수익금을 받기는 커녕 원금까지 떼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가령 A라는 투자자가 선물로 100만원을 벌었을 경우 정상적인 시장에서라면 A와 반대 방향으로 투자한 사람이 손실을 보고, A가 그만큼 돈을 버는 구조가 된다. 하지만 미니선물업체는 좀 다르다. 업체가 임의로 선물 계약을 체결하고 수익을 나눠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의 투자자가 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이들 업체들은 보통 손실이 난 투자자의 돈을 수익이 난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돌려막기’식 영업을 한다.
문제는 업체가 가지고 있는 돈보다 투자자들이 낸 수익이 많을 때 발생한다. 투자자들이 증거금 명목으로 입금했던 돈을 업체가 가로채 증발하는 경우가 생긴다. 먹튀는 온라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큰 길가에 불법 선물거래 영업장을 열었다가 하룻밤 사이에 투자금을 들고 달아나는 불법 미니선물 거래업체도 있다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불법 미니선물 거래업체가 고객이 수익을 못 내도록 HTS프로그램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자가 수익을 낼 때 프로그램을 다운시키거나,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자의 거래프로그램 접근을 차단한 후 수익금을 주지 않고 내쫓는다.
◆ 개인투자자 접근 너무 쉬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미니선물 업체 추천’을 검색해 ‘안전하고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업체와 전화 통화로 접촉을 시도했다.
통화 대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회사 직원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이 직원은 소속된 회사의 서비스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그는 “지난 2년간 별 문제가 없었고 업계에서 가입자 수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HTS와 흡사한 프로그램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선물 거래에 필요한 보증금으론 50만원을 제시했다. 가입을 망설이자 40만원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거래 수수료도 0.0020%에서 더 낮춰줄 수 있다고 가입을 종용했다. 전화 상담에서 HTS프로그램 설치 소개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상담 후 가입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자 10통이 넘는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담 과정에서는 친절하게 적은 보증금과 낮은 수수료율을 강조하다가 막상 수익이 나면 돌변하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라며 “불법업체를 통해 거래했을 경우 피해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