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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新작] 건축가 정영한의 '9X9 주택'

  • 허성준 기자

  • 입력 : 2013.11.16 09:00

    건축가 정영한의 9X9 실험주택./김재경 사진작가
    건축가 정영한의 9X9 실험주택./김재경 사진작가
    최근 분양되는 아파트 평면을 보면 안방·자녀방·드레스룸·거실·주방·식당·화장실·창고 등으로 공간이 분리돼 있고, 기능도 확정적이다. 생활에 편리한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하지만, 각 공간을 정해진 기능에 맞게 쓰지 않으면 불편한 시스템이다.

    건축가 정영한(43)이 설계한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의 ‘9X9 실험주택’은 이런 공간 정의의 선택권을 사용자에게 돌려준 집이다. 벽으로 공간을 구분 짓고, 설비와 가구로 공간의 기능을 규정하는 건축 방식에 반기(反旗)를 든 것. 이 때문에 이 집은 기존의 주택 양식에 적응된 사람에겐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리둥절하기에 공간을 임의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집이다.
    주택 내부 평면 설명./스튜디오 아키홀릭 제공
    주택 내부 평면 설명./스튜디오 아키홀릭 제공
    정영한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하고 2002년 독립해 건축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아키홀릭’을 열었다. 올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복합건물 ‘체화의 풍경’으로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기획전시 ‘최소의 집’의 총괄 기획을 맡아 대중과 건축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2층짜리 집인 9X9 실험주택(연면적 93.23㎡)은 1층과 2층이 판이하다. 1층은 각각의 영역이 정의된 전형적인 주거 양식을 적용했지만, 2층은 영역을 정의할 수 있는 가구나 설비를 모두 숨긴 임의의 공간으로 설계돼 있다.
    주택 내부 전경. 내부에 정원과 같은 외부요소를 끌어들이고, 이를 유리로 처리해 창밖의 풍경과 내부의 경계가 흐려진다./김재경 사진작가
    주택 내부 전경. 내부에 정원과 같은 외부요소를 끌어들이고, 이를 유리로 처리해 창밖의 풍경과 내부의 경계가 흐려진다./김재경 사진작가
    실제 외부에 면한 계단을 이용해 2층 출입문을 열면 두 부부가 사는 집임에도, 백색 복도와 빈 공간, 유리 문안으로 흙이 깔린 정원이 보인다. 보통 집처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방도 없다.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단차가 달라지는데, 복도 끝에 침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정원 안에는 욕조가 미술품처럼 설치돼 있어 갤러리 느낌이 난다. 책상·식탁이나 싱크대, 가스레인지, 화장실 등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집의 4면, 가장자리를 둘러싼 무빙 월(moving wall)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퍼니처 코리도 방식이 적용된 내부 전경. 무빙월을 통해 공간 활용을 사용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김재경 사진작가
    퍼니처 코리도 방식이 적용된 내부 전경. 무빙월을 통해 공간 활용을 사용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김재경 사진작가
    서쪽 면의 무빙월을 열면 책과 컴퓨터가 놓인 긴 책상이 나오고, 북쪽의 무빙 월을 열면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등이 나온다. 동쪽 면엔 샤워실·화장실·세면대·옷장이 따로 배치돼 있다. 즉, 각 공간을 무빙 월을 필요에 따라 열어 사용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땐 닫아 다른 용도로 공간을 사용하는데 어색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정영한은 “대다수의 주택과 같이 가구 배치가 공간의 기능을 규정하는 상황을 뒤집었다”며 “모든 공간이 사용자의 임의에 따라 가변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 즉 복도에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는 설계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는 공간 사용의 가능성을 높여 궁극적으론 경직된 공간을 유연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1200X1200mm, 1800X1800m의 사각 창./김재경 사진작가
    1200X1200mm, 1800X1800m의 사각 창./김재경 사진작가
    또 이 주택은 각 공간의 경계뿐 아니라 집의 내·외부의 경계도 모호하다. 흙이 깔린 정원이 주택 내부에 들어와 있는데다, 이를 구획하는 벽을 유리로 처리해 상하좌우에 뚫린 1200X1200(mm), 1800X1800(mm) 크기의 창밖 풍경과 내부 정원이 겹치며 이상감을 일으킨다.

    정영한은 “집 내부에 정원과 같은 외부 공간을 들여오고, 정원을 이루는 유리벽과 창의 차경(借景)이 겹쳐지며 내·외부의 경계가 흐려진다”며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새로운 공간 관념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영한 건축가./스튜디오 아키홀릭
    정영한 건축가./스튜디오 아키홀릭

    9X9주택은 정영한의 첫 주택작품이지만, 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의 최종심까지 오를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집이다.

    강호원 홍익대학교 교수는 건축저널 공간(space)를 통해 “여러 레이어(layer·층)가 겹쳐진 공간 구성은 가장 안쪽 경계인 유리로 더 복잡하게 구성돼 기묘한 느낌이 든다”며 “제한된 규모 속에서 공간적인 풍부함을 얻으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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