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 지상 19층 높이의 오피스텔 빌딩(총 302실)은 내년 5월 입주를 앞두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40년 전통을 가진 오래된 주유소 자리였다. 하지만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자 주유소를 폐업하고 오피스텔 건설로 방향을 돌렸다. 주유소 운영업체인 서울석유 강명진 전무는 "1000㎡(약 300평) 크기의 대형 주유소였는데도 월 1000만~1200만원 정도밖에 순이익을 내지 못했다"며 "갈수록 마진이 줄고 인건비 부담이 커져 분양이 잘되는 오피스텔을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구 등 전국 대도시의 도심 주유소들이 부동산 개발 쪽으로 속속 돌아서고 있다. 공급 과잉과 치열한 경쟁 속에 수익 구조가 나빠지자, 호텔이나 오피스텔, 상가·패스트푸드점, 모델하우스 등으로 변신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지로 떠오르는 주유소

주유소 부지 개발이 가장 활발한 곳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다. 영동대로에 인접한 대호주유소 자리에는 올해 초부터 15층 높이의 비즈니스호텔이 건설 중이다. 이곳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주유소는 지난 3월부터 병원 신축 공사에 들어갔다. 인근의 또 다른 주유소 부지에도 이미 새 건물이 완공돼 이달 중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대호주유소 운영업체인 대신EDI 관계자는 "서초동에서 운영 중인 주유소도 오피스텔 등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30년가량 영업한 서울 중구 중학동 주유소 부지 등을 재개발해 지은 오피스 빌딩 트윈트리 타워의 모습(왼쪽).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던 삼풍주유소는 2012년 상업용 빌딩으로 바뀌었다(가운데). SK네트웍스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인근 주유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40층짜리 주상복합‘S트레뉴’를 2009년 준공했다(오른쪽).

1969년 국내 최초의 현대식 주유소로 지어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청기와주유소도 지난 2011년 영업을 중단하고 2300㎡(약 700평) 부지 위에 호텔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현상은 지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구광역시 서부에 있는 2000㎡(약 600평) 규모의 한 주유소 부지에서는 올 연말 복합 의류 쇼핑몰 공사가 시작된다. 대구대 김형건 교수(경제학)는 "도심에서 외곽으로 주유소가 밀려나는 것은 일본 등에서 이미 나타난 현상"이라며 "국내에서도 서울뿐 아니라 광역시 등으로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사는 안되지만 투자 매력은 커

주유소 부지의 부동산 개발이 활기를 띠는 것은 공급 과잉 속에 주유소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들이 도심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부동산 개발 가치가 높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주유소 업계에 따르면 시장 규모와 수익성을 고려할 때 전국적으로 적정한 주유소 수는 7000~8000곳. 하지만 9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는 1만3000여곳에 달한다. 그 여파로 주유소가 경매로 나오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2003년 전국에서 41건에 불과하던 주유소 경매 건수는 올해는 9월 말까지 429건에 달했다.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경매 시장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같은 기간 108.2%에서 73.6%로 떨어졌다.

반면 주유소는 1980~90년대부터 도심 주요 상권과 교통 중심지에 자리 잡은 곳이 많아 입지 여건이 좋다. 도심에 이미 상가·빌딩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건축 부지로서 희소성도 있는 데다 일반적으로 부지가 660㎡ 이상으로 넓어 10층 이상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도 투자처로서 매력이다. 또 주유소가 대부분 상업용지에 있는 만큼 호텔·오피스텔 등으로 개발하는 데 별다른 규제 없이 쉽게 인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 SK네트웍스는 지난 2009년 서울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 인근의 주유소를 허물고 지상 36층짜리 주상복합 빌딩을 지어 상당한 분양 수익을 거뒀다.

도심에서 주유소 찾기 어려워

주유소 개발이 잇따르면서 서울 시내 주유소는 2010년 714개에서 올 9월 말 현재 649개로 급감했다. 문을 닫는 주유소가 늘면서 운전자들이 도심에서 차에 기름을 넣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청담동 주유소들이 잇따라 폐업한 영동대로는 코엑스 사거리에서 광진구 자양동까지 2.5㎞ 구간에 주유소가 한 곳도 없다.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성동구 금호동을 잇는 길이 약 3.5㎞ 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주유소 부지를 활용한 부동산 개발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투자자문업체 '저스트알' 김우희 대표는 "도심에 빌딩 공급이 늘면서 임대료가 낮아지고 상가 종류가 다양해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다만, 주유소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철거 비용과 토양 정화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