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1%대를 웃돌고 소비자물가는 정부 목표치의 하단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로만 보면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지만 서민·중산층 등 가계와 기업의 체감경기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지갑 열기를 주저하고 있고 기업 역시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얼어붙은 체감경기는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줄곧 증가세지만 실질 소비지출 증가율은 마이너스 상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질 GD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했고, 증가 폭이 줄었지만 3분기에도 4.2% 늘었다. 반면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에 따르면 실질 소비지출은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연속 감소했다. 소득이 늘어도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 전·월세값 급등·사교육 부담 등 고비용 구조가 원인…물가도 여전히 부담

경제 지표가 좋아져도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교육 등 국민 생활이 고비용 구조기 때문이다. 전·월세값은 매년 급등하고 사교육으로 가계 허리가 휘청거린다. 정부가 이러한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의 체감경기는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다.

국제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올해 보고서에서 "한국 중산층은 주택 대출금 상환과 사교육비에 매달 막대한 돈을 지출하고 있고, 이것이 가계 부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월세값 급등과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경제 지표가 좋아져도 가계와 기업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산한 남대문 시장의 모습.

물가 부담도 한몫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8%로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연속 1%대를 기록했던 물가 상승률이 더 낮아졌다. 유가 등 원자재가격 안정과 보육료 지원, 지난해 물가가 높았던 기저효과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이 낮았다고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가 낮은 수준인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주택·수도·전기및연료 지수는 113으로 전체 지수(107.9)를 크게 웃돌았다.

◆ 소득 2.5% 증가하는 사이 세금·부담금은 4.1% 증가

소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세금과 부담금 등 나가는 비용이 많아 실제 쓸 돈은 적다는 것도 체감 경기를 악화키는 요인이다.

통계청은 2분기(4~6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404만1000원으로 전년보다 2.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세금과 각종 부담금 증가율은 더 높았다. 2분기 가구당 소득세·재산세 등 조세 부담과 국민연금 등 연금 지출, 건강보험료·고용보험료·산재보험료 등 사회보장비를 포함한 비(非)소비 지출 증가율은 4.1%였다.

집값 하락 등 보유 자산 가치는 하락하는데 연간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이르고 있어 소득의 많은 부분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점도 소비 여력을 줄인다.

◆ 기업 경기 체감도 쌀쌀…투자 꺼려

국가 경제의 한 축인 기업도 경기 회복을 느끼기엔 장애물이 많다. 올해 3분기 설비투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설비투자는 분기별로 편차가 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경기 회복 쪽으로 시각이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업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시황 지수는 기준치인 100을 밑돌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초 제조업 5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분기 시황지수는 기준 100을 밑도는 93에 그쳤다. 이마저도 전기전자 부문을 제외한 시황 지수는 더 낮다. 4분기 경기 전망지수는 101로 조금 올랐지만 회복세를 느끼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하반기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이 존재하는 만큼, 많은 국민이 경기 회복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생활물가 안정과 부동산 시장 부양 등 경기 활성화 정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