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수출시대]① 사우디에 부는 병원진출 바람

입력 2013.10.28 16:34 | 수정 2013.10.28 16:54

한국의 병원들이 전략 수출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동의 오일달러와 신흥국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앞선 한국의 의료체계와 병원 사업 모델을 판매하는 것이다. GE와 필립스, 지멘스 같은 선진의료기기 업체들은 브랜드의 힘과 다양화한 사업영역을 바탕으로 신흥시장 공략에 나선지 이미 오래다. 한국은 일부 난치병 치료에서 미국 등 선진국을 앞섰고 의사들의 교육 수준도 어느 나라보다 높다. 세계적인 IT업체로 거듭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기술력과 이동통신사들의 노력도 조심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 병원이 앞선 사업모델과 기술을 바탕으로 따뜻한 인술을 펼칠 수 있는 전략상품으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왼쪽)이 지난달 22일 알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왕립병원장과 국내 첫 의료기술 수출 협약을 맺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한국의 병원 수출이 본격화 되고 있다. 해외 환자를 국내로 유치하는 사업에 이어, 국내 병원과 의료 시스템을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사우디아라비아왕국 보건부와 보건의료 협력에 관해 합의했다. 사우디는 북미와 유럽의 세계적인 병원과 기업이 눈독 들이는, 글로벌 헬스케어 신흥 시장 중에서도 핵심 국가다.

한국은 먼저 사우디의 3000개 모든 보건소와 약 80개 공공병원에 병원정보시스템(HIS)을 수출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기록과 처방전을 일일이 작성해 종이로 보관하던 것을 첨단 정보기술로 바꾸는 것이다.

이번 구축 사업은 삼성SDS, SK텔레콤과 분당 서울대병원 컨소시엄, 현대정보기술이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 대표단은 10월 말 한국을 방문해 이들을 평가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 병원의 의료기술과 시스템을 사우디 병원에 그대로 전수하는 ‘쌍둥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사우디 킹파드왕립병원에 삼성서울병원, 가천길병원, 서울대병원, 파미셀, 원자력병원 등이 5개 분야 의료기술을 수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삼성서울병원은 사우디 킹파드왕립병원에 2015년까지 뇌조직은행 시설과 장비를 구축하고 의료진 교육과 기술 이전을 하기로 계약했다. 가천길병원도 뇌융학과학원의 최첨단 장비와 운용 기술 등을 킹파드병원에 수출하기로 했다.

사우디 의사의 교육도 한국이 맡는다. 내년 3월부터 10년간 매년 100여명이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연대세브란스병원을 찾아 교육을 받기로 했다. 수업료는 의사 1인당 월 3000달러(320만원)이다.

이번 합의가 시행될 경우, 한국은 10년간 약 1조원 이상의 의료 수출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쏘나타 승용차 3만5000대나 갤럭시 스마트폰 156만대를 수출한 것과 같은 경제 효과다.

홍민철 한국의료수출협회 사무총장은 “한국에서 연수 받은 의사는 현지에서 진료하다가 어려운 환자를 한국에 보내올 것”이라며 병원 수출이 해외 환자 유치와 연관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구, 장비, 의약품 등도 익숙한 제품을 주로 쓰기 때문에 이번 계약을 물꼬로 한국 보건의료 산업에서 더 많은 수출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사우디를 잡기 위해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하고, 사우디 의료수출지원단을 구성하는 등의 노력해왔다. 의료 선진국처럼 단순히 제품을 팔러 온 것이 아니라, 국가간 파트너십을 만들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을 강조한 결과다.
중동지역 의료 수출과 환자 유치 현황. /조선DB
한국 의료는 위·간·자궁·대장·갑상선·유방·췌장 등 7개 분야 암의 5년 생존율이 미국보다 높은 게 장점이다. 간 이식 성공률도 96%에 이른다. 이외 성형·불임·한방·건강검진 등도 특화 분야다.

가격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다. 심장·관절 등의 수술비가 미국보다 3분의 1, 일본의 3분의 2 수준으로 저렴하다. 양성자 암 치료의 경우, 미국에서는 2~3억원이지만 한국에선 1억원 안팎이면 가능하다.

CT(컴퓨터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촬영)·수술로봇 다빈치 등 의료장비와 PACS(의료영상저장전송) 등 의료정보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검사 당일 결과를 확인하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가 잘 구축돼있다.

이 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90개 병·의원이 16개국에 진출했다. 중국 30개, 미국 23개, 베트남 9개, 몽골 7개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 성형·피부·치과 등 소규모 의원급이며, 교포가 많은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진출을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은 게 아쉬움으로 꼽힌다.

이경수 코리아메디컬홀딩스 부사장은 “한국 의료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북미와 유럽의 거대 병원그룹이나 기업이 가진 기술과 전략에 비하면 우위가 없다”면서도 “그나마 한국은 정부가 직접 협상을 위해 뛰는 게 강점”이라고 꼽았다.

정호원 보건복지부 의료수출지원과장은 “지난 10여년간 민간 병원들이 해외에 진출했지만 각종 시행착오로 어려움이 많았다”며 “새로운 산업 동력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중동 등 신흥 시장은 공공의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부간(G2G) 협의로 기회를 열어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요 산업별 국내·외 시장 비중. /보건복지부 제공
이처럼 한국 의료가 세계로 눈을 돌린 데에는 이미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경쟁이 과열됐기 때문이다. 특히 척추질환을 특화한 병원의 경우, 2006년 150개에서 2010년 235개로 57% 급증했다.

지난해 국내 대부분의 병원이 손실을 봤다.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의 매출이 지난해 1조원 이상일뿐, 5위 서울성모병원만 해도 6700억원에 그쳤다.

반면 세계 의료서비스 시장은 연간 8.3%씩 성장해, 2015년 3조8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가 많은 아시아 시장은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국내 보건산업은 세계 시장의 1.1% 불과하다. 정 과장은 “지금은 제대로 된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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