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는 옷 입듯', 건축가가 제안하는 '최소의 집'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10.17 10:10

    현대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빌라 사보아’·‘유니테 다비타시옹’·‘롱샹성당’ 등 수많은 명(明) 건축물을 남긴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 중엔 다소 의아한 작품이 있다.

    그가 생을 마감한 프랑스 남부 해안의 시골 마을 ‘로크브륀느 카프 마르탱(Roquebrune-Cap-Martin)’에 있는 16㎡(4평) 남짓한 통나무 집이다. 정방형으로 평범하게 지어진 이 집은 내부 역시 두 개의 침대와 붙박이 옷장, 책상·의자가 전부다.

    백수(百壽)를 누린 그의 어머니의 집도 그랬다. 르코르뷔지에 스스로 ‘작은 집(UNE PETTE MAISON)’이라고 명명한 스위스 남서부 레만호 인근의 이 집 역시 60㎡(18평) 정도로 소박한 인상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애초 집 내부, 각 공간의 치수 계획을 부모가 살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미리 잡아 놓음으로써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집을 지었다.

    14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 거리의 창의물류갤러리 ‘낳이’. 최근 이곳에서 진행 중인 건축전 ‘최소의 집-당신만의 집을 상상합니다’에 가니 르코르뷔지에의 통나무 집과 그의 어머니를 위한 집이 떠오르는 건축 모형과 영상물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 ‘집짓기’하면 떠오르는 ‘그림 같은 집’은 없었다. 집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를 한칸짜리 텅 빈 방(정·방), 3㎥의 박스 안에 모든 생활 기능이 들어간 집(퍼펙트 박스), 모든 공간이 사용자의 필요에 변하는 집(6X6 주택) 등이 전시돼 있었다.
    건축가 김희준의 최소의 집 전시작 '정.방'/김용관 사진작가
    건축가 정영한(스튜디오아키홀릭), 임형남·노은주(가온 건축), 김희준(ANM)이 손을 잡고 기획한 이 건축전은 최근 몇 년 새 유행처럼 번진 집짓기 열풍에 대한 담담한 제안이다.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남의 눈을 의식한 과도한 집짓기를 지양하고, 무조건 싸게 짓는 싸구려 건축을 경계하자는 것. 다시 말해 집에 사는 사람의 ‘삶에 맞는 집’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건축 모델을 제안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건축가 김희준의 작품 ‘정·방(靜·房)’이다. 연면적 18㎡(5.4평), 높이 6m의 이 정방형 집은 ‘집이자 방’이다. 2.7mX2.7m의 방을 중심에 두고 네 면이 자연과 맞닿아 있지만, 화장실과 부엌 등 ‘있을 건 다 있는’ 집이다.

    김희준은 “방은 크기와 기능에 따라 구획된 공간이 아니라 주변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유기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도록 비워진 곳이란 개념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의 금산주택./박영채 사진작가
    부부 건축가로 잘 알려진 임형남·노은주는 ‘금산주택’을 소개하고 ‘최소의 집’ 전시 대안으로 ‘퍼펙트 박스’를 내놨다. 

    연면적 75.6㎡(22.9평)의 금산주택은 거주면적은 43㎡(13평)으로 줄이면서 대청마루는 26㎡(7.8평)으로 설계해 외부 환경을 자유롭게 즐기면서도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내·외부에 적절히 분산배치해 호평을 받은 집이다.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과 지난해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퍼펙트 박스는 3mX3mX3m의 작은 육면체 안에서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가온 건축의 설계가 잘 드러난다. 단순히 원룸처럼 보이지만 침실, 다용도 수납장, 주방, 화장실 등을 짜임새 있게 담았다.

    정영한은 최근작 ‘9X9 실험주택’을 소개하고, 내년 착공 예정인 ‘6X6 주택’을 전시 대안으로 내놨다. 두 작품은 거주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을 스스로 선택·규정할 수 있도록 각 공간의 기존 기능을 규정하지 않은 것이 핵심이다. 

    9X9 실험주택은 가구를 포함해 주택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수납’의 개념으로 감췄다. 일종의 ‘빌트 인(built-in)’의 개념을 확장한 것. 6X6 주택은 집 가운데에 통기구를 두고 주택에 필요한 각 기능을 동선에 따라 수납한 9X9 실험주택의 ‘업그레이드 버전(upgrade version)’이다. 공간과 공간 사이에 이동의 역할만 하던 복도를 주택의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사용함으로써 집 내부의 다른 여러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다.


    정영한의 주택 다이어그램./전시 제공
    정영한은 “전시 제목이 ‘최소의 집’이지만, 여기서 ‘최소’란 단어는 단순히 ‘작은 집(mini house)’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적정(適正) 공간에 대한 고민이 담긴 집을 전시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지난 10일 시작해 11월 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총괄 기획한 정영한은 이번에 소개된 작품 이외에도 총 30명의 건축가를 발굴해 ‘최소의 집’ 전시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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